"광주 떠나라"..재난영화 현실판 보여준 '현대산업개발' 퇴출 위기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2. 1. 1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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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 모두 '손절 움직임'..운암 3단지 재건축조합, 컨소시엄 계약해지 요구
이용섭 광주시장 "참 나쁜 기업, 광주서 모든 사업 배제 적극 검토"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지난 11일 오후, 신축 중인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내린 광주 서구 화정동 HDC현대아이파크 공사 현장. 외벽에 '더 나은 삶에 대한 믿음 HDC'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현장 붕괴사고의 여파로 HDC현대산업개발(현산)가 지역 주택과 건설 시장에서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 불과 7개월 사이 광주에서만 두 번이나 일어난 붕괴사고의 주역인 현산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다.

두 개의 사고가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의 현실판을 방불케 하는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민간과 관가에서 동시에 메이저 건설사에 대한 기대가 '손절'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진 모습이다.

사고가 발생한 화정아이파크는 7개동 지하 4층~지상 39층 규모다. 아파트 705세대, 오피스텔 142세대 등 847세대 주상복합 건물이다. 1·2단지로 나뉘어 있는데, 사고가 일어난 건물은 2단지 201동이다. 광천종합버스터미널과 길 하나를 두고 있는 등 교통과 교육 여건이 좋아 광주에서는 비교적 비싼 평당 1600여만원대 분양가에도 전용면적에 따라 최고 108대 1, 평균 67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인기를 끌었다. 

현산은 국내 건설업계 시공능력 9위의 굴지의 건설사다. 현산은 현재 광주에서 서구 화정 아이파크 주상복합 건설 현장을 비롯해 계림동 아이파크, 학동 4구역 재개발, 운암 3단지 재건축 등 4곳에서 총 7948가구 공사를 진행 중이다. 

"현산 못 믿어"…분양자, 재시공·계약 해지 요구 봇물

그러나 현산은 지난해 6월,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학동 재개발 현장 참사에 이어 또다시 대형 사고의 당사자가 되면서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사고 여파로 '탈(脫)아이파크'가 분양자 사이에서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건설 대기업의 안전불감증이 낳은 참사를 연이어 낸 건설사의 시공 아파트에 입주 공포에다 아파트 브랜드 이미지 추락과 그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 우려 탓이다. 

사고가 난 화정아이파크를 계약을 했던 사람들은 불안하다면서 붕괴된 201동뿐 아니라 1·2단지 8개 동의 전면철거 후 재시공을 현산 측에 요구하고 있다. 분양자 중에는 분양취소소송 등을 검토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가 난 아파트는 주상복합으로 2020년 3월 착공해 올해 11월 입주 예정이었다. 

지난 11일 오후 3시 47분께 외벽이 무너져 내린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아이파크 201동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사고 후폭풍은 광주시내 다른 사업장으로 번지고 있다. 3월 초 착공을 앞뒀던 운암 3단지 재건축조합은 사고 다음날, 해당 단지 재건축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컨소시엄에 계약해지 의사를 밝히고, 현산과의 계약 취소를 위한 법률자문에 착수했다. 해당 사업은 3214가구 규모로 GS건설과 한화건설, 현대산업개발 등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합 측은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해 컨소시엄 계약 해지 여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조합 관계자는 "사고 여파를 감안하면 컨소시엄에서 스스로 빠지는 것이 가장 좋다"며 "현대산업개발을 배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고, 불안감도 높아 계약 해지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재건축 단지 쪽에서도 시공사 측 컨소시엄에서 현대산업개발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합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착공해 시공사 변경이 어려운 계림동 계림2구역 주택재개발조합(계림 아이파크SK뷰)은 안전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다. 계림2구역은 현산과 SK에코플랜트가 공동 시공한다. 이곳에선 브랜드 이름 '아이파크'를 빼자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조합 관계자는 "확정된 것은 없지만 조합원들 사이에서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졌다"며 "아이파크를 떼고 계림 SK뷰로 이름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은 맞다"고 했다.

시민단체 "사고 반복하는 현산, 광주서 퇴출하라"

광주지역 각계의 비난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학동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12일 성명을 통해 "이번 붕괴사고 역시 학동 참사 판박이"라며 "안전을 도외시한 현대산업개발을 지금 당장 광주에서 떠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와 참여자치21도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안전을 도외시한 현대산업개발을 지금 당장 광주에서 퇴출할 것"을 촉구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의 입장 또한 강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 시장은 13일 광주 서구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 현장 브리핑에서 "확실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공사가 재개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광주시가 추진하는 모든 사업에 대해 현대산업개발의 사업 참여를 배제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것"이라며 "시민 안전을 위해 HDC현산 퇴출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역사회에서 전방위적으로 배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현산은 건설시장 퇴출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다. 건설업계는 당분간 광주지역에서 '현대 아이파크' 브랜드로 새 정비사업을 수주하기는 사실상 어렵게 됐고, 기존 사업 역시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의 외면이 장기화하면 최악의 경우 주택시장과 건설시장에서 현대산업개발이 퇴출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산에 대한 여론 악화는 광주에서 빚은 건물붕괴 사고가 워낙 참혹했던 탓으로 보인다. 학동 붕괴참사 당시 해체 중이던 5층 건물이 힘없이 무너지면서 승강장의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버스 뒤편에 탔던 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이면에 숨어 있던 안전 관리 부실과 조폭이 개입한 재개발사업 비리 '복마전'도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39층 초고층 건물의 외벽 붕괴는 마치 재난을 소재로 하는 광주판 블록버스터를 연상케 했다. 신축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는 11일 오후 3시 48분쯤 공사 현장 39층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하던 중 23∼38층 외벽과 구조물이 마치 '벽지 뜯어지듯' 무너졌다. 사고로 현장 작업자 6명의 연락이 두절됐다가 13일 오전 1명이 발견돼 구조작업 진행 중이다. 두 사고 모두 재난영화의 공식처럼 끔찍한 장면을 연출, 시민들에게 재난에 대한 공포를 안겨줬다.  

지난해 6월 10일 오전, 학동4구역 사고 당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광주시청에서 "희생자 유가족 부상자 광주시민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전사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연합뉴스

공염불에 그친 '현산의 약속'도 일조

현산 측이 공허한 사과로 불신감을 높인 것도 퇴출 분위기에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동4구역 사고 당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광주시청에서 "희생자 유가족 부상자 광주시민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전사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불과 7개월 만에 '판박이' 붕괴 사고가 재연되면서 정 회장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는 지적을 수용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화정아이파크 사고 직후 유병규 대표이사는 12일 사고현장 인근에서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저희 HDC현대산업개발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피해를 입으신 실종자분들과 가족분들, 광주 시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현산이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고 무리하게 이윤만 좇아 시공하다가 일으킨 인재(人災)라며 분노했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또 그 건설사냐""현대산업개발이 짓는 광주 지역 건물에만 자꾸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뭐냐"는 글이 올라왔다. 여기에 "현대산업개발만은 피하고 싶다""아이파크는 걸러야 한다""주택사업에서 손떼라"는 등 격한 반응의 댓글이 달렸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12일 0시가 다 돼서야 대표이사가 광주에 도착했고, 이날 오전 10시 한 장짜리 사과문 발표가 전부였다"며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시민들에 참 나쁜 기업"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도 한 목소리로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인재를 유발한 책임을 지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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