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솔직한 사죄" 가이후 일본 전 총리 별세(상보)

박병진 기자 2022. 1. 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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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사죄한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가 지난 9일 별세한 사실이 14일 알려졌다.

가이후 전 총리는 1989년 8월부터 1991년 11월까지 2년3개월가량 일본 총리를 지냈으며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가해 행위에 관해 사과하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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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선언비에 헌화..자위대 첫 해외 파견도
가이후 도시키 전 일본 총리가 지난 9일 별세했다. (NHK 갈무리) © 뉴스1

(서울=뉴스1) 박병진 기자 =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사죄한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가 지난 9일 별세한 사실이 14일 알려졌다. 향년 91세.

가이후 전 총리는 1989년 8월부터 1991년 11월까지 2년3개월가량 일본 총리를 지냈으며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가해 행위에 관해 사과하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90년 5월24일 일본을 방문 중인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 "과거의 한시기,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일본)의 행위에 의해 믿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신 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한다"며 구체적인 내용의 사과 표명을 했다.

1991년 1월에는 방한해 3·1운동 발상지인 종로2가 파고다공원을 방문, 3·1 독립선언기념비에 헌화하고 묵념을 올리기도 했다.

일본 공영 NHK방송에 따르면 1931년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나 1960년 29세의 나이로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처음으로 중의원이 된 가이후 전 총리는 1989년 제76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

물방울무늬 넥타이가 트레이드마크였던 가이후 전 총리는 깨끗한 이미지로 국민의 지지를 모아 1990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을 승리로 이끌고 재선됐다.

그러나 다음해인 1991년 정치개혁을 위해 소선거구제 도입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당내 반발로 퇴진했다. 재임 기간은 818일.

1994년 자민당을 탈당해 자유개혁연합을 거쳐 신진당을 창당해 초대 대표가 됐다.

신진당이 해산하고 자유당·보수당·보수신당 최고 고문을 맡은 그는 2003년 자민당에 복당해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 현역 최다인 16선 달성의 기염을 토했다.

이후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의사 출신의 전 의원인 민주당의 오카모토 미쓰노리에게 패배하고 정계 은퇴했다. 가이후 전 총리의 의원 생활은 49년에 달했다.

일본 언론들은 1991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미국 주도 다국적군에게 총 130억달러의 자금을 제공하고 해상자위대를 페르시아만에 파견한 것을 가이후 전 총리의 최대 업적으로 꼽았다. 이는 자위대 창설 이래 첫 해외 임무였다고 NHK 등이 전했다.

pb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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