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을 견디고 고향을 되찾은 유대인'은 발명되었다 [책과 삶]

문학수 선임기자 입력 2022. 1. 14. 11:00 수정 2022. 1. 1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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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김승완 옮김 | 사월의책 | 670쪽 | 3만4000원

숄렘 알레이헴(1859~1916)이라는 작가가 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유럽 중·동부에 퍼져 살았던 유대인들의 언어인 이디시어(Yiddish)로 소설을 썼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평생 살지는 못했다. 차르의 핍박이 극심했던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거의 뉴욕에서 살았다. 남긴 작품은 책으로 40권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 이는 뮤지컬과 영화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 <우유배달부 토비에와 그의 딸들>(1964)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져 ‘대박’이 났다. 1971년 영화로도 제작돼 세계적으로 히트했다. 제목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다.

문화는 이른바 ‘유대주의’를 강화해온 강력한 수단이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도 ‘박해받는 유대인, 떠도는 유대인’이라는 서사로 감동을 준다. 유대인들의 음악으로 알려진 ‘클레츠머’(Klezmer)의 애잔한 선율이 감동을 배가시킴은 물론이다. 유대인들을 둘러싼 이런 이미지는 오래전부터 형성돼왔고, 그 창조자들이 꼭 유대인이었던 것만도 아니다. 예컨대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는 오페라 <나부코>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고도 불리는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를 삽입했다. “2000년 유랑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옛 고향땅을 되찾은 민족”이라는 서사와 이미지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단단해졌다.

그러나 이 책은 묻는다. “유대 민족(Jewish Nation)이 수천년간 존속해온 것이 사실인가?”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심지어 국립 텔아비브대학의 교수인 저자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이스라엘인들은 신화를 무리하게 구성했다. 유대 민족은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을 때부터 항상 존재해왔으며, 자신들이야말로 직접적이고 배타적인 후손이라는 것을 사실로 확신한다.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했으며, 신이 약속한 땅을 정복해 정착했다고 믿는다. 이후 장엄한 다윗과 솔로몬 왕국을 탄생시켰고 (…) 2000년 동안 이방인들 틈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들과 통합되거나 동화되는 것을 끝내 피했다고 믿는다.”

유대민족이 정말 수천년 존속했나’
모세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서사
역사적 근거 찾기 어려운 ‘허구’
신앙으로 뭉친 ‘종교 공동체’일뿐

이스라엘 국립대 역사 교수의 고백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나라가 아니다’

이른바 ‘민족’(Nation)은 라틴어 ‘natio’(낳다, 배태하다)에서 왔다. “고대 로마에서는 이방인 집단을” 가리켰다. 중세 때는 “먼 곳에서 온 학생 집단을 지칭”했으며, “근대 여명기 잉글랜드에서는 귀족 계층을” 가리켰다. ‘민족주의’는 18세기 말에 등장해 특정 민족의 장구함과 영속성을 돋을새김했다. ‘민족’을 상상해 국가를 성립시켰으며, “19세기 이후 많은 역사가들이 이 일에 참여”했다. 그러나 민족의 자명함을 의심한 학자들도 있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그들의 비판과 반론이 거세진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이란) 상상된 공동체”라고 했으며, 어니스트 겔너는 “사람들의 신념과 충성과 연대가 만들어낸 가공물”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도 두 학자의 연장선에 서 있다. 그는 “앤더슨과 겔너가 없었더라면, 내가 과연 내 정체성의 뿌리에 대해 질문할 생각이 들었을지, 겹겹이 쌓아올린 기억의 층으로부터 나 자신을 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지 의심스럽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유대인’ ‘유대 민족’ ‘유대인의 나라’ 등을 만들어낸 역사의 허구를 파헤치면서, 신화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해온 유대 민족주의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드러내 보인다.


그에 따르면 ‘출애굽’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원전 13세기에) 이집트에서 탈출해온 사람들의 스토리”는 가짜라는 것이다. “모세가 40년간 광야를 유랑하며 이끌었던 전사 60만명”이라는 신화는 “도무지 불가능한 얘기”이며, “그 시기에 (대규모) 인구 이동을 보여주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된 바 없다”는 것이다. “유랑 끝에 가나안에 도착해 그 땅을 정복”했다는 신화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여전히 이집트가 지배하던 땅이었으며, “기원전 12~10세기 이집트인들이 서서히 물러나면서” “토착 주민들이 이스라엘왕국과 유다왕국이라는 두 개의 작은 지역 왕국”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신화’를 논파한다.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렸다는 “영광의 왕국”을 허물고, “로마인들이 유대전쟁이 끝난 후 주민 전체를 강제 추방”했다는 ‘바빌론 유수’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러면 세계에 흩어져 살아온 유대인들은 누구인가. 저자는 다만 ‘개종’의 결과라고 못 박는다. 히브리인들의 유대교는 지중해 근처의 여러 신앙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후 중근동, 북아프리카와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유대인’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굳이 유대인을 정의하자면, 프랑스의 사학자 마르크 블로크가 말했듯이 “지중해 연안, 튀르크-하자르, 슬라브 등 각지를 기원으로 하여 하나로 합쳐진 종교 집단”이라는 것이다. 흔히 ‘아슈케나지 유대인’으로 불리는 동유럽 유대인들은 “주로 튀르크인과 슬라브인들”이며, “세계에 흩어져 사는 ‘단일한 유대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나라’로 부르는 것은 거짓이라고 강조한다. 종교공동체를 종족공동체로 탈바꿈시켜, “민주주의보다는 민족주의를 정체(政體)”로 삼는 희귀한 나라가 오늘날의 이스라엘이라고 비판한다.

책은 이미 알려진 사실들도 서술하고 있지만 세부가 꼼꼼하고 객관적이다. 무엇보다 학자적 진정성에 감동받게 된다. 저자는 “나는 이 책을 쓰지 않고는 이스라엘에서 계속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2008년 히브리어로 처음 출판된 책의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유대인은 언제, 어떻게 발명됐는가’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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