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피부에 대한 열망은 백인 선망? 포스트식민 시대 '미백' 탐구서

선명수 기자 2022. 1.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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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6년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킨 태국의 현지 화장품업체 ‘서울 시크릿’의 미백 화장품 광고의 한 장면. 태국 유명 배우가 등장한 이 광고엔 “피부 관리를 중단하면 그동안 하얀 피부를 위해 투자한 모든 것이 허사가 될거야. 새로운 스타들이 내 자리를 꿰차고 나는 밀려날 거야”라는 내레이션 이어지며 얼굴이 검게 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어 “이기려면 하얘져야 한다”는 광고 문구가 등장한다. 이 광고가 공개되자 거센 비판이 일었고, 업체는 광고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냈다. 유튜브 캡처


미백
박소정 지음 | 컬처룩 | 360쪽 | 2만4000원

최근 넷플릭스가 제작한 한국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솔로지옥>이 때아닌 인종주의 논란을 촉발했다. 한 출연자의 피부에 대해 다른 출연자들이 “완전 하얗다” “순백의 느낌”이라고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해외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피부색에 대한 언급이 수차례 나온 것을 두고 불편함을 토로했고, 여기에 한국 누리꾼들이 흰 피부는 한국 미의 기준이자 출연자의 사적 취향이라고 반박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하얗고 맑은 피부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완고한 미적 기준이었다. 백옥, 도자기, 뽀얗다 못해 ‘우윳빛깔’로까지 표현되는 흰 피부에 대한 찬사는 수도 없다. 우리 일상에도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흰 피부에서 비롯함을 암시하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화장품은 ‘화이트닝’ ‘브라이트닝’ 등 미백 기능을 강조하고,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선 ‘백옥주사’ ‘백설공주 주사’와 같은 미백 시술이 이뤄진다. 대중매체 속 인물들은 각종 조명과 촬영 장비, 화장술로 완벽하게 구현된 결점 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뽀얀 피부는 이른바 ‘부티 나는’ 무노동의 계급적 표상이자 도시의 세련됨을 상징하는 지표였다.

이런 획일화된 미백 열망은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여겨졌다. 그저 표피의 문제이거나,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미적 기준 정도로 간주된 것이다. 단일민족 신화를 벼려온 한국 사회에서 피부색이 갖는 함의와 그 무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K팝, K드라마, K뷰티 등 ‘K콘텐츠’가 세계로 확산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의 수용자들과 만나며 충돌이 발생했다. 아이돌 스타의 사진을 하얗게 보정하는 관행이 국내외 팬덤 간 ‘화이트워싱’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계급과 젠더, 세대, 지역 갈등 등의 현안에 비해 부차적으로 여겨졌던 인종 문제는 이렇듯 ‘한국인의 자부심’이 된 한류라는, 예기치 못했던 영역에서 터져 나왔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질문과 마주한다. 한국인의 미백에 대한 오랜 열망은 해외 한류 소비자들이 지적한 대로 백인에 대한 선망 혹은 모방의 발로일까. 미디어 연구자 박소정의 책 <미백>은 포스트식민 시대 ‘미백’에 대한 탐구를 통해 피부색의 문화정치학을 재구성한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유색인의 미백 문화에 백인에 대한 뿌리 깊고 유구한 선망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미백의 이유를 백인에 대한 선망으로만 손쉽게 설명하는 식민주의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색인의 미백 문화, 식민주의로만 해석할 수 없고
초국적 자본주의 욕망에 의해 이뤄지는 것만도 아니다

K팝 아이돌의 화이트·옐로우 워싱 논쟁 속
‘하얀 피부≠백인’ 재배치 되는 관념에 주목하며 묻는다
새롭게 추동되는 제국주의적 욕망과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1958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2면 하단 광고
1956년12월23일자 경향신문 3면 하단 광고
1959년 9월11일자 동아일보 4단 하단 광고


한국에서 미백 제품이 광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50년대 중반이다. 1958년 한 일간지에 실린 화장품 광고는 당시의 미백 레토릭이 ‘흑백 변신’의 이미지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은 얼굴이 눈송이처럼 희고 아름다워집니다!” 이런 문구와 함께 얼굴의 절반은 검고, 나머지 절반은 하얀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도 당시 광고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이미지다. 어떤 광고들에선 당시 한국인들이 상상했던 열대지역 원주민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미백 화장품을 통해 몸이 반만 하얗게 변해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렇게 “원시성에 대한 표백”을 약속하는 당시의 광고에는 인종주의와 식민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저자는 이런 미백 이미지가 한국에서만 특수하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식민주의와 함께 “흼에 제국의 선진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영토화 과정이 반복되어 오면서 재현의 관습이 되었”고, “검음을 지워냄으로써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것들을 지우고 선진적인 무언가를 획득하리라는 환상”이 판매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에서 식민화의 경험은 피부색에 기반을 둔 계급 질서를 촉발했다. 이는 비단 백인과 유색인의 권력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색인 사이에서도 피부색이 더 희고 어두운지에 따라 서열화가 이뤄졌다. 한국은 서구에 의한 직접적인 식민 지배 경험은 없지만, 그럼에도 일본 식민 통치의 간접적인 영향 속에서 피부색에 대한 식민주의적 감각을 내재화해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한국은 아시아 내 ‘명예 백인’으로서의 일본을 통해서든, 일본 식민주의의 도피처로서든 서구의 영향 속에 놓여 있었고, 서구에 대한 선망과 함께 근대사회로 이행했다는 것이다.

미백에 대한 욕망은 이후에도 계속되지만, 광고 등에 나타난 이 욕망의 표현 양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외국인의 이미지 대신 당대 톱스타였던 황신혜가 등장한 1980년대 한 광고는 “하얗고 싶다 하얗고 싶다!”라는 아주 직설적 광고 문구를 사용한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이 시기의 피부색 변신 이미지는 서구 등 ‘한국 바깥’의 존재를 향하지 않으며,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그 자체로 표현된다.

오늘날 가장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미백 이미지는 디지털을 경유한다. ‘뽀샤시’라는 말을 탄생시킨 디지털카메라의 보급과 포토샵 기술, ‘얼짱 사진’의 유행을 지나 이제 필터로 얼굴을 보정해주는 스마트폰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앱)이 유통된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카메라 필터 앱 ‘스노우’가 이름부터 ‘눈’을 뜻한다는 것은 여전히 미백이 핵심적인 미적 지향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미백에 대한 인식과 실천은 시대와 함께 변화해왔다. 전후 화장품 소비자에게 미백이 곧 ‘백인의 피부색’으로 상상됐다면, 디지털 이미지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미백은 카메라 필터 앱에서 체현되는 더 아름다운 ‘자기 자신’이다.


인종주의는 백인의 얼굴을 보편의 얼굴로 삼는다. 그래서 아시아, 특히 한국의 발달한 뷰티 및 성형 산업을 ‘서구인이 되고 싶은 아시아인의 병리적 욕망’으로 거칠게 해석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이런 식의 해석과 인종주의에 대한 민감도 차이가 맞붙어 충돌을 일으킨 사례가 <솔로지옥>의 피부색 논란일 것이다. 비슷한 논란은 K팝 아이돌 스타에 대한 ‘화이트워싱/옐로워싱’ 논쟁에서도 드러났다. ‘화이트워싱’은 원래 할리우드에서 비백인 역할을 백인 배우로 대체해 유색인을 지워버리는 행위를 의미했다. 하지만 K팝 팬덤에선 ‘홈마스터(고화질의 아이돌 사진을 찍어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팬)’로 불리는 국내 팬들이 아이돌 멤버의 피부를 하얗게 보정하는 관행을 비판하는 말로 쓰인다. 주로 해외 팬들이 이런 식의 보정을 비판하며 다시 어둡게 아이돌의 피부색을 재보정하는데, 국내 팬들은 이를 다시 ‘옐로워싱’이라고 비판하며 “아시아인이라고 해서 다 노란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한국 팬의 백인 선망을 비판하는 해외 팬덤, 미백을 화이트워싱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서구중심주의라고 맞서는 한국 팬덤이 맞붙으며 어느 쪽이 더 인종주의적인가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이런 논박 속에 인종과 시각성에 대한 관념이 재배치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 팬들의 반박 속엔 “하얀 피부를 백인의 신체에만 귀속시키려는 시각 자체에 대한 경계”가 나타난다. 저자는 “아이돌 스타의 미백 이미지는 자연적으로든 조형적으로든 ‘아시아인도 하얀 피부를 가질 수 있다’는 미학적 선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한국 사회에서 미백은 식민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코드를 넘어 단순히 획일화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와 방식으로 경험돼왔다. 책은 한국 사회 미백 담론 분석에서 더 나아가 초국적 자본주의의 욕망에 의해 이뤄지는 ‘미백의 재영토화’를 경계한다. 이제 한국식 미백은 미디어 산업과 맞물려 ‘K뷰티’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한류 콘텐츠가 됐다. 동남아시아 소비자들의 한국 미백 화장품 선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일부 국가에선 (실제로 한국 기업과 관련성이 없지만) 미백 상품이 ‘서울’이라는 브랜드명과 함께 유통되기도 한다. 아시아권에서 K뷰티는 기존의 서구적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이상적 미의 모델이 됐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 내 미의 위계가 생기기도 하고, 피부색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재생산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미백이 드러내는 제국적 성격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미백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다양한 직업군과의 인터뷰, 미백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송 현장부터 동남아시아 K뷰티의 현장까지 종횡무진하며 우리가 의문시하지 않았던 미의 규범, ‘미백’을 둘러싼 다층적 욕망과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보인다. 미백은 단순히 한 개인의 미적 취향과 욕구를 넘어 계급적 욕망을 내포하기도 하고, 여러 겹의 문화정치적 함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K열풍’이란 이름으로 한류가 어느 때보다 힘을 받고 있는 지금, 우리 안에 새롭게 추동되는 제국주의적 욕망, 그리고 인종주의를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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