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번내시, 한 달 당번 후 휴가.. 임금의 '생활비서' 승전색 권력 막강

기자 2022. 1.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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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중 한 장면.

■ 박영규의 지식카페 - ⑤ 환관들의 직장생활Ⅰ

내시 대다수는 궁궐 밖에 있는 내시부로 출퇴근… 종2품인 ‘상선’ 2명, 환관의 ‘최고 벼슬’

35세 때까지 승진시험… 四書 읽고 강론해 우수한 성적 얻으면 ‘通’ 등급받고 특별 출근일수 혜택

궁궐의 직업세계를 거론하자면 궁녀와 함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환관이다. 환관은 궁궐 안에서 왕족의 시중을 든다고 해 흔히 내시(內侍)라고 부른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환관과 내시는 동일한 존재는 아니다.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환관과 내시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환관이라는 환자(宦者), 즉 남성을 상실한 남자로서 관직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내시는 환자가 아닌 일반 관리가 임명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와서는 모든 내시가 환관으로 채워졌다.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환관과 내시가 동일하게 취급됐다. 흔히 내시들도 궁녀처럼 항상 궁궐 안에 머물고, 내시들이 속한 관청도 궁궐 안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내시들이 속한 관청인 내시부는 궁궐 바깥에 설치돼 있었고, 대다수 내시는 내시부로 출퇴근을 했으며, 내시 중에서 당번인 자들만 궁궐에 들어와 근무를 섰다. 물론 근무 시간이 끝나면 내시부로 돌아가 신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시부는 지금의 서울 종로구 효자동, 즉 경복궁 옆에 있는 동네에 있었다. 하지만 내시들의 업무가 대부분 궁궐 안에서 이뤄졌기에 궁궐 안에도 사무실이 있었다. 그 사무실을 내반원이라고 했다. 내반원에 근무하는 내시들은 대부분 장번 내시였다. 장번 내시란 당번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내시를 말한다. 이들 장번 내시는 집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내반원에 한 달씩 머물며 생활하다가 한 번씩 휴가를 받아 집에 다녀오는 내시들이었다.

장번 내시를 맡은 사람은 스무 명 정도였다. 이들은 임금과 왕비, 세자, 왕대비 등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심부름을 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숫자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궁궐 사정에 따라 인원이 유동적이었다. 그들 장번 내시의 벼슬을 살펴보면, 장기, 장무, 승언색, 승전색 등이 있었다. 장기는 문서나 기록을 담당하는 내시고, 장무는 궁궐 안에서 오가는 일반적인 서류를 챙기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승언색은 세자의 비서로서 동궁(세자궁)의 심부름을 했고, 승전색은 왕이나 왕비의 생활 비서로서 명령을 받고 심부름을 하는 역할을 했다.

대개 사극에서 이들 내시에게 조정의 관원들이 반말하며 함부로 대하는 장면이 많은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일반 관원은 물론이고 조정의 대신들조차 내시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반말을 하지 않았다. 내시는 왕이나 왕비, 세자 등을 최측근에서 보필하는 존재였기에 오히려 신하들은 그들과 친밀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런 까닭에 내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내시 중에서 가장 힘 있는 자가 바로 장번 내시들이었다. 장번 내시 중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내시는 당연히 임금의 생활 비서인 대전의 승전색이었다. 승전색은 늘 임금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정승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막강한 권력자였다. 심지어 재상들이 승전색을 초청해 잔치를 열어주는 경우도 있었으니, 그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만하다. 그래서 승전색이 욕심이 많고 못된 사람이면 궁궐이 매우 어지러웠다. 연산군의 승전색이었던 김자원은 정승 부럽지 않을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고, 온갖 행패를 부리며 재물을 쌓았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다면 내시부에 속한 환관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며, 그들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경국대전’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내시부는 왕궁에서 음식물 감독, 명령 전달, 궁문 수직, 청소 등에 관한 직무를 맡는다. 인원은 모두 140명이며, 1년에 네 차례 정기적으로 임무를 조정하고 인사를 단행한다. 내시부 관원은 4품 이하는 문무 관리의 출근일수 규정에 따라 품계가 오르고, 3품 이상은 임금의 특별한 지시가 있어야 오른다. 하지만 환관의 숫자는 꼭 140명으로 한정돼 있던 것은 아니었다. 환관의 숫자는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다만 140명이 기준이었을 뿐이다. 또한 벼슬도 그냥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지만 내시들도 공부를 잘해야 출세를 할 수 있었다. 내시부의 환관들도 정기적으로 시험을 쳤다.

그렇다고 내시들이 늙어서까지 승진 시험을 쳤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진급 시험은 35살 때까지 이뤄지고, 그 이후엔 시험을 보지 않는다. 물론 시험 결과에 따라 진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면 좋지 않은 부서에서 낮은 벼슬에 머물러야 했다. 시험 성적은 통, 약, 조, 불 등 4등급으로 나눠지는데, 읽은 책을 강론해 우수한 성적을 얻으면 ‘통(通)’ 등급을 주고 특별 출근일수 둘을 더해준다. 그 아래 ‘약(略)’이면 특별 출근일수 하나를 더해준다. 그리고 평범한 성적인 ‘조(粗)’면 출근일수 반일을 더해준다. 하지만 성적이 나빠 ‘불통(不通)’이면 출근일수 셋을 감한다. 출근일수를 올려 준다는 것은 빨리 승진한다는 뜻이며 출근일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승진이 더뎌진다는 뜻이다. 물론 받는 녹봉도 달라진다.

내시의 공부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四書)를 위주로 하는데, 이 책 중 하나를 골라 세 곳을 강론해 ‘통’을 맞으면 품계를 올려주고 공부도 면제해준다. 사서 외에도 ‘소학’이나 ‘삼강행실’에서 세 곳을 강론해 다섯 부분을 통을 맞으면 역시 품계를 올려주고 공부도 면제해준다. 환관에게는 종9품에서 종2품까지의 벼슬이 주어지고, 그 숫자는 59명이다. 종2품인 상선(尙膳)은 2명인데, 환관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벼슬이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 환관에게도 정2품 벼슬이 내려지기도 했고, 심지어 종1품 벼슬을 받은 인물도 있었다. 각 품의 관원 숫자도 때에 따라 달랐기에 평균 60명 정도의 환관이 관직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이 60명을 제외한 나머지 환관들은 벼슬이 없는 예비 관원이다. 예비 관원의 수는 약 80명이고, 이들은 관직이 빌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대기하는 동안 이들은 관원들의 업무를 보조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 내시부 관원들에게 주어지는 소임은 어떠한가? 우선 내시부의 우두머리인 상선의 소임을 보자. 상선은 임금의 수라를 책임지는데, 상선이 둘인 까닭은 업무를 분담하고 서로 돌아가면서 번을 서기 위함이다. 상선 중 한 명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여 수라간을 지휘해 임금 및 중전, 대비 등의 수라를 챙기는 일을 한다. 두 명의 상선 중에서 선참 한 명은 내시부사의 임무를 겸임한다. 내시부사는 내시부 전체를 관할하고 통솔하는 내시부의 수장이다.

정3품인 상온(尙온)과 상다(尙茶)는 궁궐에서 소용되는 술과 차를 맡은 관원이고, 종3품인 상약(尙藥)은 말 그대로 약을 담당하고 있으며, 내의원의 일과 연계돼 있다. 정4품인 상전은 임금의 명령을 승정원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직책인데, 흔히 대전 승전색이라고 한다. 대개 대전 환관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종4품인 상책(尙冊)은 3명인데, 매를 기르는 응방을 관리하는 직이 하나 있고, 나머지 두 명은 대전 섭리라고 해서 임금에게 필요한 문서나 책 등을 찾아오는 역할을 한다. 또 주방이나 주연장 등의 관리도 이들이 맡는다. 소주방의 상궁들은 모두 대전 섭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왕비전의 명령을 전달하는 중궁의 승전색 역할도 역시 이들이 한다. 정5품인 상호(尙弧)는 4명인데, 그 소임은 각각 다르다. 1명은 대전의 응방이나 궁방에 배치되고, 나머지는 왕비전 주방 담당, 태조와 신의왕후 한 씨의 신위를 모셔놓은 사당인 문소전 섭리, 세자궁의 장번 내시 등의 임무가 주어진다. 종5품 상탕은 4명인데, 대전의 창고를 관리하는 상고 1인, 등과 촛불을 관리하는 등촉방 다인 1인, 궁궐에 딸린 농토를 관리하는 감농(監農) 1인, 세자궁의 문서를 관리하는 섭리 1인 등으로 구분된다. 정6품 상세 4명은 대전에 소용되는 그릇을 관리하는 대전 장기, 화약방이나 왕비전 등촉방의 끼니를 담당하는 진지, 세자궁 주방, 빈궁의 섭리 등으로 구분됐다. 종6품인 상촉 4명은 대전과 왕비전 등의 문을 지키는 문차비, 세자궁의 등촉방, 왕비전의 주연 등 잡일을 주관하는 장무 등으로 구분됐다.

그 외에 정7품 상훤은 세자궁의 문차비나 각 궁의 섭리, 문차비 등을 맡았으며, 종7품 상설은 궁궐 내의 각종 건축물의 보수나 증축을 담당하고, 정8품 상제, 종8품 상문, 정9품 상경, 종9품 상원 등은 궁궐 내부의 공원을 관리하고, 문차비의 명령을 받아 각 궁의 문을 지키는 등 잡다한 일이나 노비들을 부리는 일을 맡았다.

■ 용어설명

승전색(承傳色) : 집에서 출퇴근하지 않고 내반원에 머무는 ‘장번 내시’ 가운데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내시를 뜻한다. 임금의 ‘생활 비서’인 승전색은 늘 임금을 모시고 있었기에 웬만한 정승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왕에게 잘보이려는 재상들이 승전색을 초청해 잔치를 열어주는 경우도 많았고, 연산군의 승전색이었던 김자원처럼 갖은 행패를 부리며 재물을 탐한 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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