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꿈에 정국과 송강이 나온다면?

한겨레 2022. 1. 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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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
게티이미지뱅크
자각몽은 숙면에 치명적일 게 뻔하다. 생각해보라. 자각몽 비슷한 걸 꾸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피곤했던가.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꿈을 많이 꾼 날에는 그게 아무리 평범한 꿈이어도 수면의 질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넷플릭스 같은 꿈 꿔본 적 있으신지. 시리즈로 꾸게 되는 꿈 말이다. 환상적인 타이밍에 딱 끊겨서 다시 잤더니 드라마처럼 다음 장면이 펼쳐지는 꿈. 나는 제법 꿔봤다. 배우 송강이랑 애틋하게 마주 보다가 화장실 가느라 끊겨서 억울할 뻔했는데, 2탄에서 다시 그와 가까워지더니… 흐음. 그뿐인가. 방탄소년단 정국 꿈도 시리즈물이었다. 그의 손을 잡은 상태로 잠에서 후다닥 깼을 때 내가 뭘 했던가. 죽어라 다시 잤다. 천만다행히 속편이 있었고, 우린 타투숍에 같이 갔다.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서.

송강호 아닌 송강, 김종국도 아닌 전정국. 벌어진 입은 다물자. 나도 안다. 난리 날 캐스팅인 거. 알면서도 양파 같은 시리즈물이 욕심난다. 까도 까도 끝없는, 한국판 아라비안나이트로다가. 짜릿하다. 슈퍼스타와 ‘꽁냥꽁냥’해서만은 아니다. 통제감이랄까, 영화감독이 된 기분이다. 알다시피 꿈이라는 건 원래 맘대로 되지 않는다. 시리즈로 꾸는 꿈은 예외다. 꿈의 속성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다. 취향과 의지가 반영되는 희소한 꿈이다.

자각몽이라도 꾼단 말인가. 영화 <인셉션>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처럼? 예리한 질문이다. 절반은 틀리고, 절반은 맞다고 답하련다. 자각몽은 꿈이 꿈이라는 걸 스스로 자각하면서 꾸는 꿈이다. 자각몽을 꾸면 꿈속 배경이나 상황을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다. 원한다면 하늘로 솟구칠 수도, 못내 그리운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다. 나는 때때로 자각몽 비슷한 걸 꾸지만, ‘통제’나 ‘조종’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시리즈물이 늘 가능하지도 않다. 그건 그저 ‘운빨’이다.(2탄이 불가능할 때가 더 많다)

다만 골몰하는 주제가 꿈에 나오는데, 그게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가 꽤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제목이 고민이면 제목이, 알고리즘이 고민이면 알고리즘이, 새로 론칭한 플랫폼이 고민이면 그와 관련한 경우의 수가 꿈에 나온다. 나는 그게 꿈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다. 노트 격인 허공에 글자와 숫자가 출몰한다. 물론 이게 전부일 리 없다. 몰린 일정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날도, 사특한 동창을 불러내 주먹질하는 날도 있다.

“사기꾼아, 좋게 말할 때 내 돈 내놔라!”

피곤하다. 왜 안 그렇겠나. 이렇게 쓰고 보니 나조차 잠을 잤는지 말았는지 헷갈리는데. 내게 불면증이 없었다면 그게 불가사의할 지경이다. 어떤 독자는 지금 하는 얘기도 잠 못 잔 인간의 횡설수설로 여길지 모른다. 괜찮다. 뭐든 괜찮으니까, 꿈을 꾸고 난 이튿날로 돌아가 보자. 동이 튼다. 비몽사몽 일어난다. 휴대전화 메모장을 켠다. 전날 꿈을 기록한다. 비논리적이고 불가해한 내용투성이다. 하긴 맨정신에도 어려운데, 어찌 신묘한 실마리를 꿈에서 건져 올리랴.

애석하게도 내가 리처드 파인먼은 아니다. 폴 매카트니도 아니다. 그들이 보통 사람은 아니잖나. 나는 보통 사람이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꿈속에서 미적분과 수식을 풀었고,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꿈속에서 들은 선율로 ‘예스터데이’를 작곡했다. 면역학자 장쯔원(체웬 창)이 땅콩 알레르기를 치료할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꿈속이었다. 아아, 이런 천재적인 영감이 나에게도 허락되면 좋으련만. 하느님, 영험한 문제 해결 능력 같은 건 좀 나눠주십시오. 아니면 꿀잠이라도 주시든가요.

마음속에서 오기가 치민다. 좋아, 자각몽 비슷한 거 말고 진짜 자각몽을 꿔보자. 혹시 또 모르잖아? 자각몽을 연습하다 보면 아인슈타인이 될지. “몇달이고 몇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99번 틀리고, 100번째에야 비로소 옳은 답을 찾는다.” 그러니 기왕 꾸는 거 제대로 꿔보는 거다. 어떻게? 헤어밴드가 있단다. 뇌파를 분석해 렘수면 구간에서 자각몽을 유도하는 엘이디(LED) 빛을 쏴주는 기기다. 가격은 20만~60만원선. ㄹ한테 선물로 좀 사줘 보는 건 어떠냐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왜, 얼마나 더 못 주무시게? 됐네요. 잠이나 더 주무세요.”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팩폭을 날리다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자각몽은 숙면에 치명적일 게 뻔하다. 생각해보라. 자각몽 비슷한 걸 꾸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피곤했던가.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꿈을 많이 꾼 날에는 그게 아무리 평범한 꿈이어도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각몽을 꾸면서 하늘을 막 날아다니고, 밤새 문제를 풀고, 이런저런 사람을 만난다? 방대한 대서사시를 쓰는 것만큼 기가 빨릴 수밖에.

포기하려니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자각몽에 능숙해지면 악몽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모험물도 좋고, 코미디물은 더 좋지만, 공포물은 곤란하다. 아무리 송강이나 정국과 함께라도 말이다. 공포물에 출연해 그게 꿈인 줄도 모르면서 그들 앞에서 오들오들 떨거나 소리를 꽥꽥 지르게 된다면 뭐랄까, 모양이 좀 빠진다. 혹시 악몽 탈출하는 법 아시는 분 공유해주시라. 기프티콘 드릴게요.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1 자각몽은 수면장애가 있으면 권하지 않는다. 깨어 있을 때와 거의 비슷하게 기억하고 사고하게 되면서 숙면이 요원해진다. ★★☆☆☆
2 자연스러운 자각몽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서구인의 55%가 평생 1회는 자각몽을 꾸고, 4명 중 1명은 한달에 한번꼴로 꾼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3 가위에 눌렸을 때는 ‘메롱’하기. 아이유가 전수한 팁이다. 다만, ‘이건 꿈이니 메롱을 하자’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함정. ★★★★☆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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