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전기료 인상 정치화..시점은 논란, 탈원전 탓은 오진
"탈원전 본격화때 한전 적자폭 급증"..해당시기 원전 발전비중 되레 늘어
“졸속으로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으로 발생한 한국전력의 적자와 부채의 책임을 회피하고 전기료 인상의 짐을 고스란히 국민께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정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3일 오는 4월로 예고된 전기요금 인상을 전면 백지화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며 한전의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을 탈원전 탓이라고 단정했다.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쪽에서 당연시하는 이런 주장은 그러나 사실과 다르다.
탈원전 정책따른 발전비중 감소는 아직 시작도 안돼
문재인 정부가 내건 탈원전에 따른 원자력 발전 비중 감소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원전의 발전량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부터 계속 감소해 2018년 13만3505기가와트시(GWh)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2019년에는 14만5910GWh, 2020년에는 16만184GWh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에 따라 원자력 발전 비중도 2018년 22.5%에서 2019년 24.9%, 2020년 27.8%로 높아졌다. 원자력 발전설비도 2017년 2만2529메가와트(㎿)에서 월성 1호기 가동중단으로 2018년 2만1850㎿로 감소했으나, 2019년 신고리 3호기가 준공되면서 2만3250㎿로 늘어난 상태다. 게다가 원전 이용률도 2018년 65.9%에서 2019년 70.6%, 2020년 75.3%로 증가했다. 이처럼 원전의 발전량은 물론 발전 비중까지 늘었는데도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을 탈원전과 연결짓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윤 후보는 이후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 답변에서 국제 발전연료 가격 상승도 적자의 한 원인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한전의 적자폭이 갑자기 늘 때는 본격적인 탈원전 정책이 추진된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던 해다. 그래서 국제 에너지원의 원자재 가격뿐만이 아니고 탈원전 정책이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보고 있다”며 탈원전 영향에 방점을 찍었다. 한전의 영업이익이 2017년 4조9532억원의 흑자를 낸 뒤 2018년과 2019년에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은 맞다. 하지만 윤 후보가 “본격적인 탈원전 정책이 추진된” 해라고 지목한 2019년의 원전 설비와 발전량·발전 비중은 모두 전년도에 비해 증가했다.
윤 후보는 한전이 4월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달 28일에 페이스북에 “공과금을 인상해야 하는데 굳이 대선 전에 올리지 않고, 대선이 끝나자마자 올리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며 정부를 비판했다. 13일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공약하면서도 정부와 한국전력의 결정을 “정치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비판은 무리가 아니다.
올해 전기요금은 발전연료비 상승을 반영한 연료비 연동제를 적용하면 1월부터 ㎾h당 3원 올라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한전에 연료비 연동제 적용을 유보시켜 요금을 동결한 뒤 4월부터 요금을 올리도록 했다. 4월부터 이뤄지는 요금 인상은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적용되는 2022년 기준연료비를 인상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2022년 기준연료비는 계산 시점 직전 1년간인 2020년 12월~2021년 11월 평균 연료비로 산정됐다. 이 기간에 발전용 유연탄 가격이 20.6%, 천연가스 가격이 20.7%, 벙커시유 가격이 31.2% 상승한 것을 반영한 것이다.
발전연료비 상승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려는 연료비 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2022년 기준연료비는 1월부터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4월부터 적용하기로 한 것은 3월 치러지는 대선을 고려한 것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요금조정 시장·독립기구 맡겨야…‘연료비 연동제’ 논란차단에 적절
정부가 국민이 예민해 하는 전기요금을 조정하면서 정치적 여파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지난 20년 동안 이뤄진 전기요금 조정 실적을 살펴보면 대선이나 총선, 지방선거 등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가 3개월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전기요금이 인상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02년 6월13일 지방선거 10여일 전과 2004년 4월15일 총선거 한 달 보름 전 인하된 경우만 있을 뿐이다. 전기요금 조정에 대한 정치적 개입은 전기요금 조정 결정을 시장이나 독립적인 기구에 맡기지 않고는 거듭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요금 조정에 뒤따르는 정치적 결정에 대한 논란도 걷어갈 수 있는 제도다. 전기요금이 연료비 변동에 따라 주기적으로 조정되는 시스템이 정착되면 정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이날 질의 답변에서 “(전기요금을) 지속적으로 산업에 충격을 주지 않는 그런 범위 내에서 가격 조정해 나가야 하는데 가만히 놔뒀다가 적자폭 키워서 대선 직후에 갑자기 올리겠다고 하는 건 과학과 상식에 기반한 전력 공급과 가격 조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기요금을 갑자기 큰 폭으로 조정해 산업에 충격을 주는 일은 연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정착되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윤 후보는 정작 연료비 연동제에 대해서는 모순된 입장을 드러냈다.
윤 후보는 이날 “연료비 연동제를 적용해 원가 인상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것도 일단 보류해야 한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한전의 적자 폭을 키우지 않는 지속적 요금 조정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무리하게 인상하면 국민에게 큰 타격을 준다”며 ‘전기요금 인상 계획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모순되는 지점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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