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탄압 희생자 유가족들, 고르바초프 상대 소송

김민수 기자 2022. 1.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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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옛 소련의 리투아니아 독립 정부 탄압으로 사망한 고인의 유족들이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90)가 군사 작전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3일 소련군은 리투아니아의 언론사와 국방부, 경찰 시설 등을 점령했고, 수천 명의 리투아니아 국민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수도 빌뉴스 국회의사당과 텔레비전 타워를 요새화하며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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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31년 전 '피의 일요일' 사망자 유족들
'피의 일요일'은 1991년 1월13일 소련군 유혈 진압으로 리투아니아 민간인 14명 사망한 사건
1991년 8월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자신을 전복하기 위한 보수파의 쿠데타 실패 이후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모습 2022.01.14/news1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31년 전 옛 소련의 리투아니아 독립 정부 탄압으로 사망한 고인의 유족들이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90)가 군사 작전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소련군 유혈 진압으로 사망한 유족들 6명은 성명을 통해 "이번 소송은 소련 최고위층인 고르바초프에게 1.13 학살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당시 대통령(고르바초프)이 군을 통제하고 있었음에도 군대의 계획적인 범죄를 막지 않았으며, (민간인이) 처형되는 동안 이런 국제적인 범죄를 저지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했다"라고 밝혔다.

앞서 리투아니아 법원은 2019년 드미트리 야죠프 전 소련 국방장관을 전쟁 범죄 및 반인륜 범죄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했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거부당했다.

1991년 1월13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소련군 탱크가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는 방송국을 향해 이동 중이다. 이날 소련군의 진압으로 리투아니아인 14명이 사망했고, 700명 이상이 다쳤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이날을 '피의 일요일'이라 부르며 매년 기억하고 있다. 2022.01.14/news1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한편 1월13일은 리투아니아 국민이 '피의 일요일'로 기억하는 날이다.

리투아니아는 1990년 3월 최초로 소련에 독립을 선언한 국가였다. 그러나 1991년 1월 11일부터 사흘 간 소련군이 리투아니아 민족주의자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13일 소련군은 리투아니아의 언론사와 국방부, 경찰 시설 등을 점령했고, 수천 명의 리투아니아 국민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수도 빌뉴스 국회의사당과 텔레비전 타워를 요새화하며 저항했다.

소련군 특수부대는 당시 탱크를 동원해 텔레비전 타워를 공격했으며, 비무장 민간인에게 총을 쐈다. 이 과정에서 14명이 사망했고, 700명 이상이 다쳤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게 됐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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