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탄압 희생자 유가족들, 고르바초프 상대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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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옛 소련의 리투아니아 독립 정부 탄압으로 사망한 고인의 유족들이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90)가 군사 작전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3일 소련군은 리투아니아의 언론사와 국방부, 경찰 시설 등을 점령했고, 수천 명의 리투아니아 국민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수도 빌뉴스 국회의사당과 텔레비전 타워를 요새화하며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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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은 1991년 1월13일 소련군 유혈 진압으로 리투아니아 민간인 14명 사망한 사건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31년 전 옛 소련의 리투아니아 독립 정부 탄압으로 사망한 고인의 유족들이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90)가 군사 작전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소련군 유혈 진압으로 사망한 유족들 6명은 성명을 통해 "이번 소송은 소련 최고위층인 고르바초프에게 1.13 학살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당시 대통령(고르바초프)이 군을 통제하고 있었음에도 군대의 계획적인 범죄를 막지 않았으며, (민간인이) 처형되는 동안 이런 국제적인 범죄를 저지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했다"라고 밝혔다.
앞서 리투아니아 법원은 2019년 드미트리 야죠프 전 소련 국방장관을 전쟁 범죄 및 반인륜 범죄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했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거부당했다.

한편 1월13일은 리투아니아 국민이 '피의 일요일'로 기억하는 날이다.
리투아니아는 1990년 3월 최초로 소련에 독립을 선언한 국가였다. 그러나 1991년 1월 11일부터 사흘 간 소련군이 리투아니아 민족주의자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13일 소련군은 리투아니아의 언론사와 국방부, 경찰 시설 등을 점령했고, 수천 명의 리투아니아 국민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수도 빌뉴스 국회의사당과 텔레비전 타워를 요새화하며 저항했다.
소련군 특수부대는 당시 탱크를 동원해 텔레비전 타워를 공격했으며, 비무장 민간인에게 총을 쐈다. 이 과정에서 14명이 사망했고, 700명 이상이 다쳤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게 됐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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