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레인저가떴다]악명의 코재, 뷰 좋은 노고단, 작고 예쁜 연하천..'전지현 왕선배'의 로망 46km

신용석 객원기자 2022. 1.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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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리산 화대종주 ①
꿀맛 임걸령 물 마시고 반야낙조엔 황홀경..550계단선 '허걱'

[편집자주]머릿속이 복잡하거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산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자연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 병을 알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신기하게도 녹색 숲을 바라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농도가 15.8% 낮아진답니다. '감염재난' 시대, 이러한 자연의 치유 능력에 심신 기대보는 건 어떨까요. 산악 레인저 신용석 객원기자가 지리산, 설악산, 월출산, 태백산, 한라산 등 명산을 오르내리며 생생하게 적어 내린 답사기를 들려 드립니다. 계절마다 아름드리 옷을 갈아입는 국립공원 20여곳의 절경도 사진에 담습니다. 뉴스1 새 연재물 ['전지현 왕선배' 신용석 레인저가 떴다]는 매주 금요일 오전 9시에 독자와 만납니다.

지리산 눈꽃. 코재에서 노고단 방향 탐방로에 폭설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다.© 뉴스1

(서울=뉴스1) 신용석 객원기자 = 산을 좋아하는 우리 국민 대부분이 로망으로 여기는 지리산 종주. 1500m를 넘나드는 수십 개 고봉을 오르내리며 웅장하고 변화무쌍한 대자연과 자기 내면의 풍경을 체험하는 트레킹 길이다. 중간에 짧은 고행도 있겠지만 이 악물고 먼 길 끝에 당도하면 남다른 자부심과 성취감이 생기고 몇 년간 써먹을 무용담이 생긴다. ◇구례 화엄사에서 산청 대원사까지 '46㎞ 종주'

지리산 종주는 거리가 가장 짧은 성중 종주(성삼재-중산리/33.5㎞)를 많이 하지만 주능선 서쪽 끝에서 올라 동쪽 끝으로 내려서는 화대 종주(화엄사-대원사/46㎞)가 진정한 종주다. 더 '급이 높은' 종주는 지리산 서북쪽 끝 인월에서 올라와 정령치와 성삼재를 거쳐 코재에서 화대 종주 코스와 합류하는 태극 종주(63㎞)다.

화대 종주 시작점은 화엄사다. 도착 방법과 출발시간, 대피소 이용에 따라 산행계획은 천차만별. 휙 지나가는 뜀박질이 아닌 2박 3일 정도 넉넉한 시간을 갖고 지리산과 자신을 충분히 들여다보며 걷는 안전 산행을 권한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현재 코로나 사태로 대피소 이용은 중단돼 있다. 따라서 대피소를 이용하지 않고 하루 산행을 끊어 종주하는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① 화엄사-노고단-화개재-연하천-음정마을 24.8㎞ ② 음정마을-연하천-벽소령-세석-장터목-백무동 25㎞ ③ 백무동-장터목-천왕봉-대원사 21.2㎞.

◇화엄사-코재-노고단 7㎞ "체력, 있을 때 아껴라"

화대 종주는 화엄사 일주문 앞에서 다리를 건너 숲길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산행 시간이 충분하다면 화엄사에 들러 국보 각황전과 대웅전·보제루 등 고색창연한 전각을 감상하고 저 멀리 앞으로 가야 할 지리산 등줄기를 바라보며 정신 무장을 하면 좋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종주 능선이 구름 위에 떠 있다. 왼쪽 반야봉은 코앞에, 가운데 끝 천왕봉은 아득하다. © 뉴스1

화엄사계곡을 따라 오르는 숲길은 어둡고 바닥은 돌길이 많아 미끄럽다. 적설과 결빙이 있는 겨울철 등산은 초입부터 아이젠과 스틱 등의 안전 장비를 꼼꼼하게 착용해야 한다. 연기암 입구까지 약 30분 짧은 오르막이지만 등에 땀이 촉촉하다. 땀이 흐르기 전에 겉옷을 벗어 배낭에 결박한다. 겨울철 산행에서는 겉옷을 벗고 입으며 체온 유지를 하는 게 중요하다. 땀 뻘뻘 흘리다가 잠시 쉬는 사이에 그 땀이 얼음장이 되면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다.

연기암 입구까지는 지리산의 가장자리다. 이제부터는 중심으로 들어선다. 숲은 더 거칠고 등산로 경사도 서서히 높아진다. 한 시간쯤 가면 악명 높은 코재 오르막이 나온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심한 곳이다. 이 코스에서 산행 리더들은 체력을 비축하라고 강조한다. 코재를 빨리 오르려고 힘을 써버리면 다음 일정에 지장이 많기 때문이다. 코재 정상에 오르면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넓은 길을 만난다. 20분쯤 더 가면 노고단대피소에 이른다. 지리산 종주 길에서 대피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장거리 트레킹에서는 충분히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간식과 식수를 보충하며 다음 구간을 준비해야 한다.

약 10분간 돌계단을 올라 노고단 고개에 서면 비로소 지리산 고지대 전체가 시야에 확 들어온다. "아니 반야봉이 저렇게 가깝고, 천왕봉은 저렇게 멀단 말인가?" 이런 말이 나올 만큼 종주 능선의 원근감이 뚜렷하다. 노고단 정상은 과거에 황무지처럼 훼손됐던 곳을 복원한 장소라 예약제로 운영한다. 사전 예약해야 하지만 성수기를 제외하면 현장 예약도 가능하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맞는 찬란한 일출도, 만복대 방향으로 떨어지는 처연한 일몰도, 하얀 구름이 산자락과 섬진강을 덮고 일렁이는 모습도 장관이다. 구름 위 꽃밭으로 불리는 고산초원의 풍경도 이색적이다.

반야봉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이 아름답고 숙연하다. 지리산은 곧 어두워지고 정적에 묻힌다.© 뉴스1

◇노고단-삼도봉-연하천 10.5㎞ "멧돼지·반달곰 주의"

노고단 고개에서 능선의 끝 천왕봉을 바라보며 한 걸음 내디디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종주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고개를 내려서면 금방 숲 터널이고 컴컴한 숲길을 빠져나오면 햇볕 가득한 능선길이다. 나무뿌리를 파헤친 멧돼지 흔적이 여전한 돼지령에 반달가슴곰 주의 플래카드가 있다.

멧돼지든 반달가슴곰이든 사람 냄새와 소리를 먼저 인지하고 피하지만 정해진 탐방로를 벗어난 으슥한 샛길에서는 자칫 마주칠 확률이 있다. 만약 마주쳤다면 눈을 응시한 상태에서 서서히 뒷걸음질로 간격을 벌리며 시야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래도 다가온다면 팔과 스틱을 높이 쳐들고 자기 몸의 크기를 과시해야 한다. 만에 하나 더 다가와 피할 수가 없다면 배낭을 멘 상태에서 등을 보호하고 팔로 목덜미를 감싸며 엎드려야 한다. 반달가슴곰을 방사한 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곰이 사람을 공격한 사례는 한 건도 없지만 항상 주의하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

피아골로 빠지는 삼거리를 지나면 곧 임걸령이다. 임걸년이라는 산적의 이름을 붙였다. 지리산을 많이 다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임걸령 샘물이 가장 달다고 한다. 이후 긴 오르막과 짧은 오르막 끝에 노루목에 도착한다. 왜 노루목인가? 여러 설이 있지만 필자는 노루의 긴 목처럼 이곳의 통로가 좁고 길어서라 추측한다.

여기서 1㎞ 비켜난 곳에 지리산 '권력 2위'인 반야봉(1732m)이 있다. 시간이 충분하고 체력이 된다면 당연히 다녀와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음을 기약하는 편이 좋다. 30분쯤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느라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반야봉은 지리산의 중앙에 위치해 둘러싸인 조망이 일품이다. 여기서 보는 '반야 낙조'는 지리십경의 하나일 만큼 황홀하다. 반야봉 주변 구상나무가 기후변화로 쇠퇴하고 있어 안타깝지만, 숲 안쪽 그늘 쪽에는 아직 생생한 개체가 많다. 이를 보고 있자면 인간이 자연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변화, 코로나도 마찬가지다.

노루목에서 내려가 산허리를 돌면 곧 삼도봉(1499m)이다. 과거에 날라리봉이라 했으나 경남·전남·전북의 경계점이라 해서 점잖게 삼도봉이라 개명했다고 한다. 삼도가 만나는 포인트에 삼각뿔 모양 상징물이 설치돼 있다. 어느 시인이 "지리산에 무슨 경상도, 전라도가 있느냐, 여기서 얼싸안고 몸을 섞는다"는 시를 썼다.

연하천에 다가서며 쓰러진 구상나무 밑을 통과하는 사람들. 원시적인 자연에 심취하고 각자 내면을 들여다 보는 순례길. © 뉴스1

삼도봉에서 내려가는 길엔 지리산에서 가장 긴 550계단이 등장한다. '이 무슨 지리한 계단이냐!'며 사람들의 원망도 대단하다. 그러나 만일 이 계단이 없었다면 사람들 발길에 마구 패어나간 이 길이 폭포처럼 급한 계곡이 됐을 것이다. 이 계단 끝에 화개재가 있다. 과거 남원 산내 사람들과 하동의 화개 사람들 간 물물교류가 있던 곳이다. 즉, 화개장터의 원조다. 이곳에서 소금을 팔지 못한 보부상이 뱀사골로 내려가다 소금을 물에 빠트린 웅덩이를 간장소라 부른다.

화개재에서 토끼봉(1534m)까지는 30분쯤 기나긴 오르막이다. 토끼가 아닌 거북이처럼 올라야 한다. 화엄사에서 13㎞ 이상을 왔으니 체력이 떨어질 때가 됐다. 토끼봉을 지나면 "연하천대피소가 이리 멀단 말인가"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늑한 숲속 빈터에 자리한 '작고 예쁜' 연하천 대피소(1440m)에 닿았다. 종주를 자주 하는 사람들은 규모가 큰 대피소보다 연하천이나 치밭목처럼 소형 대피소를 선호한다. 그만큼 조용하고 운치가 있다. 과거에 코를 막고 들어가던 화장실도, 옆 사람과 딱 붙어 칼잠을 자던 좁은 침상도 이제는 민원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시설이 개선됐다.

연하(煙霞)란 '안개와 노을이 멋진 선경'을, 천(泉)은 샘을 의미한다. 이 일대는 물이 많아 안개가 자욱하거나 주목과 같은 습지식물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 날로 건조하고 뜨거워지는 기후변화시대에 이런 습지는 온도변화에 취약한 야생동식물들이 마지막까지 버티는 피난처가 되고, 생태계 복원의 씨앗 터가 된다. 지리산의 또 다른 역할이다. <계속>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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