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표소송 논란..결국 '전문성'이 관건

조해영 2022. 1. 14. 07: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표소송 개시 결정 권한 쥐게 되는 수탁위
복지부 입김 불가피.."전문성 부족" 지적도
"책임투자·수익률 모두 신경 쓸 수 있어야"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위원회 회의를 가보면 안다. 외부 전문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얹고 떠나버리는 분위기다. 이들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겠는가.”(국민연금 전문위원회 관계자)

결국은 다시 ‘전문성’ 논란으로 귀결된다. 국민연금이 최근 유명무실했던 주주대표소송 절차를 정비하는 작업에 나서면서 경영계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대표소송의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가 전문성과 독립성이 충분히 갖춰진 조직인지가 도마에 올랐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전례 없는 수탁자활동 나설까…소송 개시절차 정비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논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현행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에 규정돼 있는 수탁자책임 활동의 하나인 ‘대표소송’의 개시 결정 권한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위로 바꾸는 것이다. 개정안은 다음 회의에서 재논의될 예정이다.

현재 수탁자지침은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상장주식에 대해 기업이 이사 등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추궁 등을 게을리하는 경우 이사 등의 책임을 추궁할 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표소송은 의결권 행사, 비공개 대화, 비공개·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강력한 수준의 수탁자활동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이 진행했던 가장 높은 단계의 수탁자활동은 지난 2018년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공개서한을 발송한 것 정도다.

특히 이번에 국민연금이 추진하는 수탁자지침 개정안이 통과되면 2020년 상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다중대표소송도 수탁위 결정으로 개시가 가능해진다. 국민연금이 직접 투자하는 기업뿐 아니라 이들의 자회사 이사 등도 대표소송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지금껏 한 번도 진행한 적 없는 대표소송 절차 정비에 나서면서 경영계는 물론 국민연금 안팎의 눈은 결정권을 쥐게 될 수탁위에 쏠리고 있다. 문제는 수탁위가 지난 2020년 출범 이후 꾸준히 전문성과 독립성 논란에 시달려 온 조직이라는 점이다. 정부 산하 거대 연기금의 소송전을 결정하는 주체로 수탁위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수탁위는 경영자 단체, 근로자 단체, 지역가입자 단체에서 추천한 1명씩 총 3명이 상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경영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에서 추천한 2명씩 총 6명이 일부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국민연금 전문가 타이틀이긴 하지만, 인적 구성에서 기금운용본부와 직접적인 접점은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탁위의 전문성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인적 구성이다. 국민연금에는 수탁위 외에도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와 투자정책전문위원회가 있는데, 이들 위원회는 수탁위와 동일하게 9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 가운데 외부 전문가가 3명씩 포함돼 있다.

“복지부 입김 불가피…전문성 강화 필요”

반면 수탁위는 9명 모두가 경영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 중 한 곳의 추천을 받아 일하고 있어 전문성 이전에 자신을 추천해준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다. 수탁위가 본격적으로 대표소송 여부를 논의할 때 동수로 구성된 각 단체 대표 위원들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논의가 공회전할 가능성도 나온다.

복지부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도 문제다. 상근 전문위원들이 복지부 소속이고 복지부가 수탁위에 간사 역할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회의 분위기 흐름에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대표소송 결정 개시 권한이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위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정부 의견에 좌지우지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조만간 있을 수탁위의 인적구성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수탁위를 포함한 전문위원회 3곳은 상근 전문위원 3곳이 돌아가며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수탁위원장은 현재 근로자 단체 추천인 원종현 위원장에서 지역가입자 단체 추천인 신왕건 위원장으로 바뀔 예정이다.

경영자 단체 추천 외부 위원도 교체될 전망이다. 기존에 활동하던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가 한국항공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조만간 위원직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경영자 단체에서 대표소송을 염두에 두고 강경한 입장을 가진 위원을 후임으로 추천한다면 수탁위가 그야말로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내·외부에선 대표소송을 수탁위에 맡기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수탁위 구성에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단순히 책임투자 관점뿐 아니라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 등을 고려한 결정을 위해서 기금운용본부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연금 전문위원회 관계자는 “수탁위가 전권을 쥐게 되면서 기업들은 수탁위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낄 수 있다”며 “기금운용본부 인원이 수탁위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수탁위 구성원 숫자를 늘리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추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해영 (hycho@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