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이 아닌, 관찰을 관찰하는 사회학

최원형 2022. 1. 14.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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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이론' 루만의 1992년 저작
근대사회 보기 위한 논문 5편
'관찰의 관찰'이 이루는 네트워크
체계 다루기 위한 새로운 인식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빌레펠트대 누리집 갈무리

근대의 관찰들
니클라스 루만 지음, 김건우 옮김 l 문학동네 l 2만2000원

<근대의 관찰들>은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이 1990~1991년 사이 강연했던 몇 개의 주제들을 글로 다듬어 1992년에 펴낸 책이다. 전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회적 체계들>(1984)에서 ‘체계이론’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나름의 사회학을 ‘일반이론’으로 정립한 루만은 자신의 작업을 집성한 후기 대작 <사회의 사회>(1997)를 펴냈는데, 이 책은 그 중간에 위치한 작업이다. 이 시기 그는 <사회의 경제>(1988), <사회의 학문>(1990), <사회의 법>(1993) 등 구체적인 현상을 깊이 관찰하는 저작들을 펴냈는데, <근대의 관찰들>을 우리말로 옮긴 사회학자 김건우는 “당시 루만은 이론적인 추상성의 강도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 시점, 그렇게 구체적인 현상을 깊게 관찰할 수 있는 수준에 있었다”고 말한다.

루만이 <근대의 관찰들>에서 보여주는 것은 “복잡한 근대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과는 ‘다른 종류의 인식’을 획득하기 위한 작업”(옮긴이)이라 할 수 있다. 책은 ‘근대사회의 근대적인 것’, ‘유럽적 합리성’, ‘근대사회의 고유가치로서의 우연성’, ‘미래의 기술’, ‘무지의 생태학’ 등 다섯 편의 논문을 통해 근대사회, 합리성, 우연성, 시간, 인식, 무지 등의 주제들을 다양하게 다룬다. 각 편은 독립적이지만, 한결같이 근대사회를 기술하기 위한 전통적 인식의 한계 지점과 이를 넘어서기 위한 ‘체계이론’으로서 사회학적인 방법을 논하고 있다. 말하자면 “체계이론을 통해 근대사회를 ‘재기술’하려는 시도”로, 옮긴이는 “체계이론의 이론적으로 일반적인 층위뿐 아니라 근대사회의 기능적 질서의 구조적인 풍부함과 그 다양한 의미론을 다층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평한다.

이른바 ‘포스트모던’ 선언에 대한 일침으로 서문을 시작한다. 수많은 기능들의 분화가 누적되면서 근대사회는 정점도 중심도 없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성에 노출됐는데, 이전까지 ‘무엇’을 묻는 데에 주로 기대왔던 서구의 지적 전통을 따라서는 근대사회를 관통하는 특징이 무엇인지 잡아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상대주의, 역사주의, 다원주의 등 ‘메타서사의 불가능성’만을 앞세우는 포스트모던 담론은 단지 “모든 것이 다 된다”고 말하는 데 그치는, 매우 게으른 접근일 뿐이다. 루만은 “사회 안에는 사회에 대한 구속력 있는 어떠한 재현도 없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지만, 그것은 체계의 자기관찰과 자기기술 형식의 성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다 되는 게 아니라 “되는 것만 된다.” 이때 왜,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되는지 질문하는 관찰자의 작업이야말로 사회학의 출발점이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적 인식은 세계를 범주들로 나누고 이로부터 존재의 문제를 해명하는 데 매달려왔다. 그러나 존재의 명료성을 획득하려는 이런 시도는 항상 분할하고자 하는 주체의 위치는 과연 어디에 있느냐는 역설에 대한 물음을 수반했고, 수많은 기능적 분화들이 누적된 근대사회에서 그 한계는 더욱 뚜렷해졌다. 이에 대해 루만은 ‘구유럽적’ 합리성 전통으로부터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인식 방법을 찾아냈다. 구별을 실행하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결정되고 어떻게 선택되는지 등 관찰의 작동 자체에 주목한 것이다. “구별은 어떤 한 면을 지칭하기 위해서 어떤 구별을 실행하는 모든 방식의 작동을 말한다.” 모든 관찰은 하나의 구별에 따라 한 면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표시되지 않은 다른 한 면을 야기한다. 이때 구별 자신의 작동은 표시되지 않은 채 남게 되는 역설 자체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관찰의 대상이 아닌 그 작동 자체를 시야에 넣는다면, 관찰 또한 관찰(이차 등급 관찰)되며 그 결과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재귀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체계에 대한 ‘기능적 분석’이 가능해진다. 이런 인식의 전환으로부터, 하나의 중심이나 위계적인 체계에 기대지 않아도 근대사회를 복수로 관찰하면서도 이를 이론화할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진다.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 40년 동안 손으로 쓴 9000여장의 메모들. 빌레펠트대 누리집 갈무리

루만 체계이론의 핵심은 사회체계와 환경을 구분하는 데 있다. 체계는 환경으로부터 ‘작동상’ 배제되며, 환경 안에서 관찰하면서 포함된다. 커뮤니케이션 작동을 통해 환경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생성하는 체계의 통일성, 곧 ‘차이의 통일성’을 포착하려는 것이 루만의 체계이론이다. 이 때문에 체계이론은 진보·보수 같은 이념적 지향이나 가치판단 등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것으로 보이곤 한다. ‘주체 없는 구조’를 앞세우는 ‘사회공학’이 아니냐거나, “비판하지 않고 기술만 한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옮긴이는 해설에서 이에 대해 충분한 지면을 할애했다. “(그들이 말하는 비판은) 근대의 ‘비판’이 아니니 루만의 체계이론은 보수적이라고 평면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옮긴이는 “사회를 비판한다고 해서 사회 바깥에 또다른 사회를 구축할 수 없다”며, 비판 역시 비판되는 체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근대사회에 대한 루만의 기능적 분석에 따를 때, 되레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비판 그 자체가 아니라 근대사회가 그런 비판적인 자기기술이나 자기부정을 다시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역동성, 곧 ‘해체와 재조합능력의 증가’라고 말한다. “비판에 대해서 중요한 것은 비판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비판의 기능적 등가물을 사회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산출해내는지, 그런 비판의 기능을 자기대체적인 질서의 요소로 삼을 수 있는가에 있다.”(옮긴이)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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