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K반도체 지속 성장을 위한 세 가지 화살

남은영 세종대 경영학부 조교수 입력 2022. 1. 14. 06:10 수정 2022. 1. 1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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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미·중 기술 패권 경쟁발 반도체 공급망 재편 대응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달러(약 20조4100억원)를 들여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 진출한 지 25년 만에 미국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 뒤에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있다.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을 첨단산업 글로벌 공급망(GVC)에서 디커플링(decoupling·격리)시키겠다는 포석에서 비롯됐다.

그러면 삼성은 ‘중국 배제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치 않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해외 투자로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운영 중이다. 반도체는 미⋅중 기술 패권 갈등이 두드러지는 분야인 데다 한국이 선도국이어서 그 갈등의 영향을 비켜갈 수 없다. 한국 산업 주력인 K반도체의 생존 전략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반도체 공급망의 출발점은 1947년 미국의 벨랩이다. 1980년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은 필요한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는 그룹(IBM·HP·AT&T)과 종합반도체 회사 진영(인텔·마이크론·AMD) 양축으로 발전하게 된다. 해외로 공급망이 확장된 건 1961년 페어차일드가 홍콩에 일부 패키징 공장을 세우면서다. 이후 일본이 1980년대 반도체에서 약진하며 미국은 위기감을 갖는다. 가트너(옛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1986년 세계 반도체 매출 상위 10대 기업 중 6개 사가 일본 기업이고, 1~3위를 NEC,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기업이 차지했다. 1971년만 해도 미국이 7개 사, 일본이 3개 사였는데 크게 역전된 것이다. 특히 반도체 수요처인 전자 산업에서 도시바, 소니 등 일본 기업들이 반도체 생산 역량까지 갖추면서 일본은 자체 수요 반도체를 자국 내에서 생산하기에 이른다.

그래픽=손민균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한 엔고 유도를 비롯, 일본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 슈퍼 301조 같은 무역 보복까지 동원하면서 일본의 굴복을 받아낸다. 이즈음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산업에 진입하면서 새로운 생산 기지로 부각된다. 일본 압박이 만든 풍선효과가 작용한 측면이 적지 않다. 이를 통해 한국과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에서 1~3위를 차지하는 승리를 거둔다. 또 시스템 반도체 가치사슬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은 시스템 반도체 설계, 한국과 대만은 파운드리로 반도체 공급망이 짜이게 된다.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본격 편입하게 되는 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외국 반도체 공장 유치에 속도를 내면서다. 시설부터 첨단 반도체 공장까지 중국으로 잇따라 진출했다. ‘세계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은 반도체 수요 대국으로 부상했다. 이 같은 반도체 공급망에 큰 변화가 오게 된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은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 정책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 필요성뿐 아니라 아시아의 실질임금 상승 영향도 컸다. 반도체 제조 능력의 75%와 주요 재료 공급 업체들이 잦은 지진과 지정학적 긴장에 크게 노출된 중국과 동아시아에 집중된 현실도 작용했다.

미국의 리쇼어링은 중국으로 하여금 반도체 독자 생산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중국이 2014년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CICF) 조성과 ‘국가 반도체 산업 발전 추진 요강’ 및 2015년 ‘제조 2025′ 등을 통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낸 배경이다. 반도체 조립, 패키징, 테스트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200억달러(약 24조원) 규모의 국가 주도 자본을 이용해 해외 반도체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시도하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하게 된다. 칭화유니의 마이크론 인수 시도 등이 좌절을 겪은 게 대표적이다. 미국은 중국 내에서 첨단 반도체가 생산되고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핵심 장비나 부품의 반입을 막는 제재도 지속하고 있다. 다만 범용 반도체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과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첨단 반도체의 진입을 차단하는 투트랙으로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에 불만을 표시하는 미국 업체가 많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 미국의 일본 반도체 제재에 미국 기업들이 일제히 지지를 보낸 것과는 상반된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 확대에 인재 양성 강화와 종전과는 다른 방식의 반도체 개발 시도로 대응하고 있다. 자금 지원과 해외 기술 이전 중심의 반도체 굴기 전략이 미국 제재 등으로 차질을 빚자 변화를 준 것이다. 중국은 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까지 40%로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 2020년 자급률은 15.9%에 머문 상태다. 중국 국무원이 2020년 반도체 관련 학과를 1급 학과로 격상시키기로 한 건 중국 반도체 전략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동시에 첨단 미세공정의 핵심 장비인 네덜란드 ASML의 EUV(극자외선) 장비의 중국 반입을 가로막는 미국의 제재 탓에 7㎚ 이하급 공정이 불가능해지자 DUV(심자외선) 공정을 활용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두고 갈등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어느 노선을 택할지가 아니라, 양국에 대한 접근,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어떤 방향성을 가질지 고민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를 최종 선정했다고 지난해 11월 23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김기남(오른쪽)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우선 미국 반도체 공급망에 편입하는 것을 K반도체 산업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생산시설을 확충할 때 중국 시안공장 진출 때처럼 한국의 관련 중소·중견기업과 동반 진출하는 게 필요하다. 또 미국의 기술동맹에 참여하면서도 중국 시장을 잃지 않는 실용적인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 일본의 RS테크놀로지스는 중국에서 한 세대 전 기술을 이용한 웨이퍼 생산을 확대하고 중국의 보조금까지 챙기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미국과 기술동맹을 견고히 가져가는 일본이지만, 중국에서 실익을 챙기는 일본 기업의 사례는 한국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실제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20%에서 2019년 60%로 급증할 만큼 거대 시장을 갖고 있다. 더욱이 중국이 새로운 기술 표준을 모색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각기 다른 표준을 가지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한국이 중국과 디커플링돼 있다면 미래의 큰 시장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된다. 최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이 낸 ‘미·중 기술경쟁’ 보고서는 미국반도체협회를 인용해 중국이 향후 10년간 글로벌 반도체 신규 생산 능력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으로 K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한국 정부는 반도체 클러스터 육성책에 힘을 실어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팹리스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파운드리 중심의 생태계 조성도 시급하다. 이 세 가지 화살을 동시에 제대로 쏠 수 있을 때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K반도체의 경쟁력이 유지·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남은영 세종대 경영학부 조교수 중국 중산대 MBA, 런민대 재정정책 박사, 전 국립부경대 기술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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