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도시풍경에 생명을 불어넣다' 건축가 정영한 (下)

효효 2022. 1. 1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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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114] 건축가 정영한의 첫 번째 실험주택은 경기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의 2층짜리 주택으로 연면적 93.23㎡인 '9×9'(2012)이다. 1층은 각각의 영역이 정의된 전형적인 주거 양식을 적용했다.

9×9 실험주택 / 사진제공= 김재경
2층은 영역을 정의할 수 있는 가구나 설비를 모두 숨긴 임의의 공간으로 설계돼 있다. 백색 복도와 빈 공간, 유리 문안으로 흙이 깔린 정원이 보인다.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단차가 달라지는데, 복도 끝에 침대가 놓여 있다. 책상·식탁이나 싱크대, 가스레인지, 화장실 등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들은 보이지 않는다. 집의 4면, 가장자리를 둘러싼 여닫이 유리벽(moving wall) 속에 감춰져 있다.

퍼니처 코리도(furniture corridor)로 명명한 이 설비는 최소 기능의 수납, 가구, 위생, 설비, 전기, 환기 및 냉난방 등을 최소 공간에 모으고 나머지 공간을 거주자가 정의할 수 있도록 만든 집이다. 최초 설계는 단층이었으나 두 세대 2층으로 바뀌었다.

9×9 실험주택 실내 / 사진제공= 김재경
이 주택은 내부 공간의 경계뿐 아니라 집의 내외부의 경계도 모호하다. 흙이 깔린 정원이 주택 내부에 들어와 있는 데다, 이를 구획하는 벽을 유리로 처리해 상하좌우에 뚫린 1200×1200, 1800×1800(㎜) 크기의 창밖 풍경과 내부 정원이 겹친다.

정영한의 내외부 경계 흐리기 건축 어휘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의 사나(SANAA·Sejima And Nishizawa And Associates) 건축사무소의 지향점과 그 맥을 같이 하는 듯 보인다.

세지마(Sejima Kazuyo·1956~)는 건물과 주변 환경의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한다. 유리를 많이 사용하며 내부와 외부 흐름을 부드럽게 생성해 내는 특징을 보인다. 니시자와(Nishizawa Ryue·1966~)는 환경과 지역 사회를 연결하는 관계성을 강조하는 열린 건축을 지향한다.

SANAA가 추구하는 투명함은 물리적 의미에서 빛의 투과에 따른 시각적 의미뿐 아니라 주변과 연계되고 소통하는 사회적 관계를 표현한다.

정영한은 SANAA의 경계 흐리기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오픈 플랜(수평면·plane)에서 원형을 가져왔다고 본다.

미시언(miesian) 건축의 순례지가 된 미국 시카고 인근 일리노이주의 판스워스 하우스(farnsworth house·1951)는 미스가 유럽을 떠나기 전 체코의 브르노에 설계한 투겐트하트(tugendhat) 하우스보다 더 추상화된 단독 주택이다. 스틸 프레임의 완전 글라스박스이다. 평면도는 개념적으로 지면에서 띄운 2개의 바닥 데크와 지붕 데크, 즉 3개의 수평면(plane)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영한이 제안한 '사용자에 의해 능동적으로 정의하는 공간'은 평면 중심의 미시언 건축의 오픈 플랜과는 방향을 달리한다. 좁은 대지에 지은 집은 공간을 최적화하기 위해 볼륨 중심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1932~ ) 작품은 대상들이 '형태와 볼륨'이 특징적이다. 한결같이 유명 작가들의 아이콘과 같은 인체를 살짝 비틀어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냈다.

`정, 은설` 실내 / 사진제공 = 윤준환
'다섯 그루 나무', '정, 은설'에서 보듯 건축가 정영한은 평면적이고 회화적이기도 한 도시 풍경에 놓인 장소성과 주변의 맥락을 해석, 자기만의 볼륨 있는 건축 언어로 만들어 가고 있다.
성북동 주택(twig house) 조감도 / 사진제공 = 정영한 아키텍츠
실험주택 세 번째에 해당하는 서울 성북동 주택은 고지대에 위치하여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 건물 내부는 나선형 계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높이와 크기의 공간들이 마치 잔가지처럼 외부로 뻗어나가 주변의 경관과 맞닿는다. 오래전 숲속에 자리 잡은 집은 동물들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화된 성채(城砦)이기도 하다. 현대 도시의 우울을 떨치고 개방성을 수용하면서 장소성과 주변 맥락과의 결합을 뛰어넘은, 주택 고유의 방어 기제도 잘 작동하는 건축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영한은 전시기획자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시작해 매년 두 차례씩 개최한 '최소의 집' 전시는 9회를 치렀고, 마지막 10회를 남겨두고 있으나 코로나 장기화로 결말을 보지 못하고 있다. 회마다 3명(팀)의 건축가가 참여했다. 그가 말하는 '최소의 집'은 작거나 싼 집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맞는 적정공간을 말한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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