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메르켈은 노력했다'

김이경 2022. 1. 14.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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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경의 여여한 독서]
〈메르켈 리더십〉
케이티 마튼 지음, 윤철희 옮김
모비딕북스 펴냄
ⓒ한서원 그림

새해 첫날이면 새 공책 맨 앞에 한 줄 다짐을 적는다. 무얼 적을까 생각하노라면 복잡한 머릿속이 가지런해지며 가장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이 떠오른다. 열심히 살아보자는 마음도 더불어 일어난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나름의 해(年)맞이 의식으로 해오고 있다. 하나 그것도 요 몇 년 새 시들해졌다. 어영부영 살다가 전해의 다짐을 되풀이하는 게 한심해서다. 된 사람이라면 그럴수록 심기일전하련만 나는 나이 핑계를 대다가 작년엔 아예 그만둬버렸다. 내 그릇 내가 아는데 뭐 그리 애를 쓰나, 대충 살자, 했다.

그런데 지난 세밑에 〈메르켈 리더십〉이란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정치인도 아니고 리더도 아니지만 앙겔라 메르켈이란 한 성실한 삶을 보고 나니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살아 있는 한 무슨 일인가를 하는 게 인간이므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한 도리다 싶었다. 메르켈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정치가 육상 같은 기록경기라면 앙겔라 메르켈은 역사에 남을 대기록 보유자다. 독일 역사상 최연소 장관이자 최초의 여성 총리이며, 통일 독일(통독)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이고, 헬무트 콜 전 총리와 똑같이 16년을 집권한 최장수 총리다. 그리고 퇴임 직전까지 75%가 넘는 놀라운 지지를 받으며 (콜과 달리) 명예롭게 퇴진한 최초의 총리이기도 하다. 이처럼 승승장구한 비결이 뭘까?

헝가리 출신 미국 언론인 케이티 마튼이 4년간 총리 집무실을 드나들며 주변인들을 취재하고 세계 각국의 정치인, 관료, 학자 백수십 명을 인터뷰해서 쓴 책에는 그렇게 알아낸 여러 비결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뛰어난 지적 능력,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력, 강한 체력과 그만큼 강한 권력의지 등등. 운이 좋기도 했다. 정계 입문 1년 만인 36세에 장관이 된 건 ‘앙겔라 메르켈’이어서가 아니라 ‘동독 출신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헬무트 콜이 이끄는 첫 통독 정부의 구색용 ‘트로피’였다. 그는 이 사실을, 자신이 장식용 트로피라는 걸 부인하지 않았는데 내 보기엔 이게 첫째가는 비결 같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

그는 타인을 분석하듯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했고 해결해야 할 과제에 집중했다. 그래서 상처 입은 자존심을 내세우는 대신 능력 있는 정치인이 될 방도를 모색했다. 사실 그에겐 성공의 자질만큼이나 많은 실패의 요소들이 있었다. 변변한 연줄도 없는 동독 물리학자 출신의 이혼 경력이 있는 동거녀였고, 무대 체질도 아니었으며, 대중 연설에도 젬병이었다. 정치인 특히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그의 편은 아니었다. 으름장을 놓는 남자들 앞에선 몸이 굳었고, 감정을 숨기는 데도 서툴렀다. 장관이 되어 처음 나선 해외 순방에서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관료와 언론의 태도에 눈물을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자신의 단점을 교정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했다. 모욕을 당하고 울던 여성 장관은 얼마 안 돼 조용히 눈동자를 굴리거나 엄지손톱을 만지는 것으로 감정 표현을 대신하는 냉정한 정치인으로 변했다. 처음 총리가 됐을 때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나는 카리스마가 없어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지 못해요” 하고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는 에피소드가 보여주듯,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을 청하고 기꺼이 배웠다. 타인의 인정보다 자신의 판단을 믿는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태도였다.

우직한 경청으로 시대의 요구에 답하다

케이티 마튼 이전에 평전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를 쓴 독일 언론인 슈테판 코리넬리우스는 메르켈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하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라고 평했다. 철야 협상으로 남성들을 압도하던 남다른 그의 체력조차 타고난 것만은 아니었다. 어릴 적 그는 발달장애가 있어서 자주 넘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에겐 “깜짝 기쁨보다 삶을 구성하고 대혼란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했고, 이것은 훗날 누구보다 철저히 준비해서 상대를 압도하는 정치인 앙겔라 메르켈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는 웅변으로 대중의 마음을 훔치는 대신 우직한 경청으로 시대의 요구에 답했고, 실수를 인정하고 새롭게 배우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원자력을 당연시했던 그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을 추진하는 환경주의자로 변한 것이나, 팔레스타인 난민 소녀와 대화한 뒤 백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전대미문의 환대 정치를 펼친 것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그는 또한 깃발보다 실질적 결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자였는데, 이는 여성의 관점에서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페미니스트라는 ‘타이틀’은 멀리하다가 퇴임 직전에야 비로소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한 데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능력 있는 정치인이라 해도 독일 국민이 아니었다면 세기의 지도자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독일인들은 메르켈이 남편과 사귈 때 그가 유부남이었는지 아닌지(마튼 등 영미권 저자들과 달리 독일 기자 코르넬리우스는 이 점은 언급조차 안 한다) 문제 삼지 않았으며, SNS 소통은 시도조차 않는 그의 과묵함을 아꼈다. 덕분에 그는 민족·성별·인종 따위를 내세워 갈등을 조장하는 낡은 차별주의자들에 맞서 이 부박한 시대에 통 큰 정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앙겔라 메르켈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자신의 역사를 자랑이 아니라 교훈으로 삼은 성숙한 민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민(民)이 이루는 것이고, 정치인은 메르켈이 그랬듯 딱 한 발짝 앞에서 걷는 사람이므로. 끝으로 아직 새해 다짐을 정하지 않은 이가 있다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보기를. “역사에서 어떻게 평가받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앙겔라 메르켈은 이렇게 답했다. ‘그는 노력했다(She tried).’”

김이경(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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