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 선사한 세 번의 기적

한겨레 입력 2022. 1. 14. 05:07 수정 2022. 1. 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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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라는 공간은 제게 세 번의 기적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책방이란 존재는 제게 영혼의 쉼터같이 느껴졌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검색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중고 책방과 도매상 등에 수소문해야 했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왔다가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책방을 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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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 책방 소리소문

책방이라는 공간은 제게 세 번의 기적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첫번째는 초등학교 시절 전학을 가며 환경이 송두리째 바뀌던, 혼란스럽고 외로울 때였습니다. 유일하게 벗이 되어주었던 책방이 있었습니다. 하굣길에 매일 책방 구석에 앉아 책을 탐독했는데 무뚝뚝한 책방 주인아저씨가 어느 날 제가 늘 철퍼덕 앉던 자리에 의자를 놓아주셨어요. 어렸지만 주인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이 강렬하게 전해져왔습니다. 그때부터였어요. 책방이란 존재는 제게 영혼의 쉼터같이 느껴졌습니다.

두번째는 어릴 적 꿈대로 서점에서 일하던 10년 전입니다. 서점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 중 하나인 절판된 책을 찾아 드릴 때였어요.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검색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중고 책방과 도매상 등에 수소문해야 했죠. 어느 날 한 단골손님이 절판된 책을 구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달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죠. 포기할까 하다가 마지막으로 에스엔에스에 사연을 올렸습니다. 몇 시간 뒤에 마음이 아름다워서 책을 주고 싶다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지금의 아내였죠. 그렇게 저희는 만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책방에서 일하는 것 말고는 삶의 의미가 별로 없던 저에게 아내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습니다.

세번째는 ‘소리소문’을 만들면서였습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왔다가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책방을 차렸습니다. 늘 독립을 꿈꿨지만 용기를 못 내다가, 어쩐지 이 공간이라면 지금 이 시기라면 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막막했던 건 음료나 굿즈, 납품 등에 기대지 않는 오로지 책만 파는 서점으로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말렸지만 해보고 싶었습니다. 오로지 책으로 말하는 공간, 책이 존중받는 공간, 그럼에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책방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서점을 운영했지만 차츰 서점의 큐레이션을 믿고 진정성을 알아주는 분들이 늘어갔습니다. “이곳에 오면 영감을 받아요” “사고 싶은 책을 추리느라 혼났어요” 같은 말들을 들을 때면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온라인서점이 잠식하고 있는 시대에 섬에서도 아주 외진 시골 마을의 작은 책방에 찾아와 책으로 위로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기적과 같습니다. 이제는 이런 기적을 다른 분들과, 특히 아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끈질기게 하다 보면 언젠가 기적과 같은 일들이 생긴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서점에서 위로받았던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기적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글·사진 정도선 책방 소리소문 대표

책방 소리소문
제주시 한경면 저지동길 8-31
instagram.com/sorisomoo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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