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반란 곁에서

한겨레 2022. 1. 1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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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이라는 단어를 쓸 때면 손끝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성매매가 아닌 성노동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이어질 문장들은 사라지고 납작한 메시지만 수신된다.

460페이지에 달하는 <반란의 매춘부> 는 영국에 거주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성노동자인 몰리 스미스와 주노 맥이 집필한 책이다.

반성매매론/성노동론 , 불법화/합법화 , 강제/자발 , 폭력/노동을 횡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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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한겨레Book] 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반란의 매춘부
성노동자 권리를 위한 투쟁
몰리 스미스·주노 맥 지음, 이명훈 옮김 l 오월의봄(2022)

성노동이라는 단어를 쓸 때면 손끝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 성매매를 둘러싼 긴장과 대립을 간접 경험하며 생긴 반응이다. 성매매가 아닌 성노동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이어질 문장들은 사라지고 납작한 메시지만 수신된다. ‘당신은 성매매가 얼마나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지 인정하지 않는군요. 어떻게 성을 사고파는 일을 노동이라 표현하죠? 그 현장이 얼마나 참혹한지 몰라서 하는 말인가요? ’나는 금기가 된 단어를 사용하는 일보다, 그 금기로 인해 더 많은 논의가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두려워하기로 했다.

“나도 성노동하고 싶다”고 말하던 남성이 있었다. 그에게 성노동은 섹스를 즐기며 간편하게 돈을 버는 일석이조의 유희였다. 성노동은 강간을 합리화하는 일이므로 모든 여성의 인권을 떨어뜨린다고 분개하는 페미니스트도 있었다. 문란한, 허영심으로 가득 찬, 주체성이라곤 없는, 여성 인권을 떨어뜨리는 이들. 여러 갈래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했다. 성매매를 처단하라. 국가 권력에 기댄 이 말은 정작 현실에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놓인 주변화된 위치와 위협은 건드리지 않았다.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로 성노동자들은 음지로 밀려났다. 강간이나 살해를 당해도, 경찰에게 피해를 당해도 호소하지 못했다.

460페이지에 달하는 <반란의 매춘부>는 영국에 거주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성노동자인 몰리 스미스와 주노 맥이 집필한 책이다. 여느 ‘좋은 ’ 책이 그렇듯, 이 책은 이분법을 거부한다. 반성매매론/성노동론 , 불법화/합법화 , 강제/자발 , 폭력/노동을 횡단한다. 역자의 말처럼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양극단 사이에 있다.” 저자들은 성산업이 심각하게 성차별적인 토대 위에서 굴러가며, 폭력적이고 착취가 만연한 현장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자원이 무엇인지 세분화해서 질문한다. 성노동자를 향한 낙인을 없애는 것을 넘어 빈곤, 이주, 인종, 성소수자 등 구체적인 물적 토대를 질문하고 함께 나아가자고 말한다.

나는 역사적, 세계적, 구조적으로 형성된 성산업 시스템에 놀라는 한편, 성노동자의 투쟁 역사를 읽으며 몸을 떨었다. 성노동자는 중세 유럽에서부터 공권력에 맞서 파업과 시위를 통해 노동권을 주장했으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성노동자들이 상호 부조, 소득 공유, 공동 육아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의 운명을 공유했다. 그뿐만 아니라 HIV/AIDS, 성소수자 운동, 슬럿워크(강간 당하지 않으려면 헤프게 입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경찰관의 발언으로 인해 2011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시위), 성교육, 동의 구하기 운동 등에 참여해왔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구해 줄 대상이 아니라, 이미 페미니즘의 우산 안에서 함께 운동해온 동료였다.

우리는 저자들이 지적하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오늘 밤이나 내일,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성판매자들에게 또다시 위험이 닥치리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은 많은 사람에게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남아 있다.” 긴급한 문장 앞에서 ‘책임 ’은 어떻게 가능할까. 금기는 살아 숨 쉬는 이들의 존재를 고립시킨다. 우리에게는 제대로 알 책임이 있다. 이분법 사이 무수한 소음 속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래된 반란의 곁에서.

집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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