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들 쓰십시다"

한겨레 2022. 1. 1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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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자서전 쓰는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했다.

다른 이유로는 자서전을 쓰면서 위안과 격려를 받았으면 해서다.

자서전은 단 한 권이면 된다는 편견이 있었다.

정신의 위대한 스승이 삶의 마지막 대목을 앞두고 온 힘을 다해 써낸 자서전이 호사가의 주목을 받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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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의 인문산책][한겨레Book] 이권우의 인문산책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이소호 에세이
이소호 지음 l 창비(2021)

평소 자서전 쓰는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했다. 일반인은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쓰는 게 아니라 지어야 한다 (작문)는 강박증이 있어서다. 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일과 깨달은 바를 주제로 삼으면 글 쓰는 게 어렵지 않다. 다른 이유로는 자서전을 쓰면서 위안과 격려를 받았으면 해서다. 삶의 이랑과 고랑을 다 거쳐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닌가. 후회하고 반성하고 고백하다 보면 저절로 상처를 치유하게 마련이다. 글쓰기는 우리의 영혼을 단단하게 해준다.

자서전은 단 한 권이면 된다는 편견이 있었다. 정신의 위대한 스승이 삶의 마지막 대목을 앞두고 온 힘을 다해 써낸 자서전이 호사가의 주목을 받잖는가. 그러다 이 편견이 깨진 적이 있다. 진회숙의 <우리 기쁜 젊은 날> 이나 제이디(J. 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 를 보면서 ‘중간 자서전’ 이라는 개념을 떠올려 보았다. 막바지에 쓴 단 한 권의 자서전이 아니라, 삶의 매듭을 지을 적마다 자서전을 써 보자는 거다. 확정된 자서전은 아니니 중간이라는 말을 붙이고, 맨 마지막에 이것들을 묶어 덧붙이거나 덜어내어 최종판 자서전을 내 보자는 거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늘 자서전을 쓰면서 살게 될 터다.

이소호의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는 30 대 초반의 시인이 쓴 자서전이다. 읽다 보면 그 솔직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살 터울인 동생한테 “넌 너무 입이 싸”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의 삶을 다 까발린다. 아버지의 선택은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금세 눈치챌 정도로 삶을 박복하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어 안타깝다. 동생과는 늘 죽고 살기로 싸운다. 우울증을 극심하게 겪었다는 얘기도 서슴없이 한다.

10대 시절의 고립감이 글을 쓰게 했다. 일기를 쓰다가 시를 쓰게 되었고, 아이돌 팬클럽이나 라디오 방송에 글을 보내면서 문명을 날렸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등단은 했으나 청탁이 없었고 시집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정말 좋은 시를 쓰고 싶”은, 그리하여 “나는, 이제야 내가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고 선언한다. 공자가 말한 불혹의 경지에 앞당겨 이르렀다.

자서전의 형식이 특이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스스로 ‘라스트 아날로거’ 라 말하나,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답게 비선형적으로 구성했다. 형식적 완성미를 지나치게 따질 필요 없이 자유롭게 쓰면 된다는 점에서 모범이 될 법하다는 말이다. 성적표나 가정통신문을 가려 뽑아 모아놓은 것이나, 성경의 어투에 빗대어 아버지 삶을 정리한 대목이나, 백과사전 항목 설명 방식으로 요약한 어머니의 인생,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나열하고 각주 형식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적은 대목은 기발하기까지 했다. 그래, 자서전을 꼭 시간순으로 쓸 필요는 없지, 중요한 것은 내 삶을 마음껏 드러내면 되는 거야, 라는 자신감을 준다.

왜 젊은 시인은 이런 유의 글을 썼을까? 감추고 덮어두고 싶은 나이이지 않은가. “내가 문학하는 방법은 내가 나를 고갈시키면서 쓰는 것” 이고, “저도 쓰면서 아파요. 그런데 쓰지 않으면 더 아파서 자꾸 써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이 구절을, 모든 글은 삶의 고백이며 자기 치유를 위해 글을 쓰는 셈이라고 ‘번안’ 해 이해했다. 그러니, 이제 “자서전들 쓰십시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첫 구절을 쓰면, 내 삶이 그 대미를 장식하게 해 줄 테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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