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온라인 커뮤니티 전성시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2022. 1.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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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과거 대선에서는 직능단체가 주최하는 간담회나 토론이 매우 중요했다. 얼굴을 맞대고 각각의 요구를 전달할 수도 있고, 단체의 유효 표수로 업계의 불편함을 개선할 기회로 삼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이 직능단체라는 단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직능단체가 직업과 직능, 직위별로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라면 지금은 그 이익을 대변할 의견 집단이 온라인 커뮤니티로 대체된 듯싶다. 주식·경제 채널 ‘삼프로 TV’나 게임 관련 온라인 채널에 주요 대선 후보들이 방문한 이유 역시 비슷하다. 대중과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런 특성화된 온라인 채널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활동과 반응이다. 대선 후보들은 그동안 취향이나 취미 공동체로만 여겨지던 온라인 커뮤니티를 방문하고, 거기에서 민의의 추세를 짐작하며 바로 그 온라인 커뮤니티 담론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만약, 지금 우리의 2030세대를 지칭한다면 그 수식어는 마땅히 커뮤니티가 되어야 한다. ‘88만원세대’ ‘N포세대’ 등 결핍어로 세대를 규정할 게 아니라 그들의 의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곳, 그 영향력 정도로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어울려 밈과 짤, 짧은 동영상을 생산해내며 말 그대로 그 세대의 존재감을 돋보이는 매개체가 되었다.

애덤 매케이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사진)은 그런 점에서 달라진 미디어 환경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매우 흥미롭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6개월 후 ‘혜성’과 충돌하게 될지도 모를 지구 종말론에 바탕하고 있다. 그렇다고 <멜랑콜리아>처럼 종말과 우울의 관계를 존재론적이며 미학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겟돈>처럼 철 지난 미국식 가족주의나 영웅주의로 억지 행복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발견한 대학교수와 박사 과정생은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를 행정가들에게 고지하려 애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미국 대통령에게 알려, 어떻게 해서든 그 위협을 제거해, 지구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 인사들은 충돌 여부가 아니라 그 시기에 더 관심이 많다. 만약, 혜성이 6개월 이후에 온다면 그건 그저 ‘잠재적 중대 사건’에 불과하다. 중간선거가 3주 후인데, 거기서 잘못되면 어차피 망하는 거니까. 임기를 지속하느냐 마느냐가 지구가 멸망하느냐보다 더 시급하다.

정치적 이익에 따라 혜성은 위험한 게 되었다가 어마어마한 기회로 돌변하기도 하고 섹시한 이벤트로 뒤바뀌기도 한다. 사실이나 진실, 확률과 관련 없는 메시지들이 온갖 세상을 뒤엎고 이 메시지를 두고 사람들은 서로 싸운다. 물론, 이 혼란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올라타는 게 바로 미디어, 언론이다. 심각한 뉴스일수록 코믹하고 섹시하게 다뤄야 한다고 믿는 뉴스 진행자들은 신뢰도와 청취율을 맞바꾼다.

누군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위험을 경고하지만 누군가는 그걸 미러링해서 올려다보지 말라며 선전한다. 여기서 사라지는 것은 다름 아닌 진실과 시간이다. 진실을 돈의 가치로만 판단하는 기업의 세 치 혀도 문제다. 정치, 언론, 기업의 세 바퀴가 굴러가면서 지구는 점차 멸망에서 도피할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아깝게 놓치고 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와 현실은 매우 닮아 있고 또 다르기도 하다. 닮은 점은 언론이 진실보다는 그것의 호도에 관심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점은, 어느새 고전적인 미디어 플랫폼이 대단한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검찰, 언론 같은 고전적 기득권보다 특성화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네티즌 수사대가 더 신뢰받는다. 레거시 미디어가 다루는 주요한 의제들도 뉴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생산성에 상당히 기대고 있다. 고전적 언론 미디어들보다 뉴미디어 채널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대표적 세대성이나 이익이 더 크게 조명된다. 그러는 사이, 직능단체장이나 10대 그룹 CEO와의 만남과 대화보다는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와의 접촉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문제는 그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의사가 얼마나 대표성을 띠느냐다. 물론 다양한 의견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다양한 의견을 경유해도 결국 도달해야 하는 것은 하나의 진실 아닐까? 목소리가 작으면 소외되는 우울한 일반론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적용되는 듯싶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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