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명품 줄서기, 이해 안된다고요?

최지영 2022. 1. 1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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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경제에디터

지난해 말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의 ‘오픈 런’ 현상을 특별히 조명했다. 백화점이 문을 열기 한참 전인, 새벽 5시부터 명품을 사겠다고 줄을 서는 한국의 명품 구매 열기가 외신의 눈에는 꽤나 신기해 보인 듯하다.

줄 선 이들 대부분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어난 밀레니얼·Z세대)다. 블룸버그 통신은 “2030세대는 주택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집값을 지불할 수 없을 것이라고 느끼며 지금을 즐길 수 있는 것에 돈을 쓰고 있다”며 문 정부의 집값 폭등을 원인으로 소환하기도 했다.

「 소비·마케팅 화두 부상 MZ세대
올해 트렌드 전망서도 메인 테마
명품 플렉스, 과잉 소비에 우려?
윗세대 잣대로만 판단하진 말자

지난 5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명품 매장 앞에 고객들이 줄 서서 입장하길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MZ세대는 명품이나 플렉스 같은 단어로 언론에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뉴시스]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컴퍼니 조사 결과 세계 개인명품(패션·잡화·보석 등)시장의 MZ세대 비중은 2019년 44%에서 지난해 무려 63%로 늘었다. 2025년이 되면 10명중 7명의 고객이 MZ세대일 거라고 한다.

한국에선 이런 현상이 유달리 극한으로 드러난다. 블룸버그까지 오픈런을 신기하다며 보도한 이유일 것이다. 명품 열풍뿐 아니라 폐쇄적 기업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지난해 국내 사회 변화·트렌드를 꿰뚫었던 화두는 단연 MZ세대였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한국 사회와 언론·전문가가 MZ세대 행태에 많은 분석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분명히 있다. “명품을 사려고 새벽에 줄을 서는 MZ의 행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관심을 보여야 하나” 내지는 “우리 사회가 MZ세대의 다른 면보다 과도한 소비, 지나친 이기주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다. 중앙일보가 쓰는 기사에도 이런 댓글이 많이 달린다.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른 시간 백화점 앞에서 긴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을 외신이 주목했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시내의 한 백화점을 찾은 시민들이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뉴시스


필자도 사실 요즘 들어 이런 우려를 많이 하게 된 사람 중 하나다. 이런 와중에 MZ세대를 소비자로 접하는 여러 기업 관계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Q : MZ에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중요하지 않나요.
A : “‘가성비만 따지다간 우리는 평생 좋은 거 못해보고 인생 끝난다’는 말을 하는 MZ세대들이 많아요. 이들에겐 가성비란 생필품에서나 추구하는 겁니다. 한정된 벌이지만, 남들이 좋다는 것보단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늦기 전에 몰아서 돈을 쓰고 싶다는 가심비는 이들에겐 물러설 수 없는 가치에요.”

Q : 버는 것에 비해 지나친 플렉스(소비를 과시함) 아닌가요.
A : “이들의 행태를 다른 세대의 가치관을 넣어 판단할 순 없어요. 이들은 부모들이 외환·금융위기로 회사에서 잘리고 집안이 어려움을 겪는 걸 직접 봤고 경험했어요. 직장에서의 개인주의, 철저하게 자기 실속만 챙기는 모습엔 다 이유가 있는 거죠. 돈을 버는 것에 집착하고, 이를 또 한꺼번에 지르는 데는 성장 배경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Q : MZ세대는 왜 중고에 거부감이 없나요.
A : “MZ세대는 게임 아이템 거래에 익숙해요. 잠깐 누리다가 다시 명품을 파는 것도 ‘소유’보다는 ‘경험’에 익숙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뭐든지 남이 쓰던 물건을 사서 쓰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그것도 내가 부여한 나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해요. 유니클로나 자라 같은 대량생산 패스트패션을 중고로 사지는 않죠.”
결론적으로 MZ세대의 행동엔 다 이유가 있으며, 이를 꼭 과거 세대의 시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MZ의 생각과 움직임은 분명히 시장 전체, 특히 다른 세대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명품·패션업체뿐 아니라 삼성·LG전자 같은 대형 가전회사까지 이들의 취향과 행태를 분석하는 이유다.

올 한해를 내다본다는 많은 트렌드 전망서도 그래서 MZ라는 단어를 꼭 찍어 말하지 않아도 MZ세대의 행태를 올해의 주된 흐름으로 본다.

“사회가 개개인, 나노 단위로 조각난다”, “대도시에 살면서도 시골을 지향하는 러스틱(Rustic) 라이프” (김난도 교수등 『트렌드 코리아 2022』)나 “쓰레기를 주우며 산책하는 플로깅(plogging), 명품 브랜드가 제품을 수선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리페어” (이노션 인사이트 그룹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2』) 같은 키워드가 그렇다.

돈 쓰는 것을 SNS에 자랑하는 MZ세대, 소비하는 동물인 MZ세대와 환경에 관심을 보이는 MZ세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아니다.

올 한해는 그래서 필자부터 편견을 버리고 MZ세대의 행동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대열에 합류해보려 한다. MZ세대를 분석한 책 몇 권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보겠다.

최지영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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