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사망해도 대부분 집행유예, 중대재해법 이후에도 '솜망치'일까

허진무·이효상 기자 2022. 1. 1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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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통계로 본 '아파트 건설현장 사고' 처벌

[경향신문]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사건 판결문들을 13일 경향신문이 살펴본 결과 노동자가 사망해도 ‘집행유예’ 판결이 다수였다. 산안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2017년 10월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해체 작업 중이던 타워크레인이 붕괴해 노동자 3명이 64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다른 노동자 1명은 두개골 골절, 1명은 찰과상을 입었다.

타워크레인 업체 대표 A씨는 사고 넉 달 전인 6월 안전점검 결과 타워크레인 설비 일부가 파손돼 보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작업팀장 B씨는 사고 당일 병원 진료를 이유로 작업현장에 없었다. 의정부지법은 지난해 8월 A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 B씨에게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2018년 3월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구조물 용접 작업 중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노동자 3명이 전신 화상을 입어 숨졌다. 다른 노동자 2명도 화상을 입었고 인근 주민도 대피하다 넘어져 다쳤다. 하청업체 운영자 C씨는 건설기술자격이 없는 D씨를 현장소장으로 채용하고서 다른 사람을 소장이라고 신고했다. D씨는 현장에 소방설비나 대피로를 설치하지 않았다.

용접을 맡은 일용직 노동자 E씨도 덮개나 방화포를 설치하지 않았다. C씨와 D씨는 이전에도 산안법 위반 전력이 있었다. 인천지법은 2019년 1월 C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D씨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E씨에게 금고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3명이 숨졌지만 책임자들에게는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건설업체에는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대검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산안법 위반 피의자 1168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4명(0.34%)에 그쳤다. 검찰이 사법처리한 피의자 9916명 가운데 구속 기소는 2명(0.02%)이었다. 약식기소(6811명·68.68%)가 대부분이었고, 불구속 기소 853명(8.60%), 기소유예 688명(6.93%) 순이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월~2019년 6월 산안법 위반 사건의 1심 판결 6144건 가운데 35건(0.57%)만이 징역·금고 등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에 넘겨진 180건 가운데 1건꼴이다.

낮은 양형기준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 기본 양형기준’에 따르면, 사업주가 안전보건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권고 형량은 징역 1년~2년6개월이다. 집행유예가 가능한 형량(징역 3년 이하)이다. 그나마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의 지탄에 따라 지난해 3월 기준을 상향한 것이다. 이전까지 권고 형량은 징역 6개월~1년6개월에 그쳤다.

허진무·이효상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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