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선업 '빅2' 전략 무산..대우조선 다시 홀로서기

박종오 2022. 1. 1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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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현대중-대우조선 M&A 불허

대우조선 대출 만기 이미 연장
인수 무산에도 당장 영향 없어
경기 좋아 3~4년치 일감 확보
외자 수혈없이 버틸지가 관건
'저가 수주' 경쟁 과열도 우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대형 컨테이너선. 현대중공업 제공

유럽연합(EU)이 13일(현지시각)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퇴짜를 놓으며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당장 대우조선해양 민영화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우조선은 앞으로 국책은행 관리 아래 홀로서기를 하며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 국내 조선업계 재편도 차질을 빚게 됐다. ‘빅3’ 조선사를 ‘빅2’로 합쳐 국내 기업 간 과당 경쟁을 막겠다는 정부 전략이 무산된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에 미칠 파장도 관심사다. 일단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시장의 공통된 평가다.

대우조선해양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대우조선의 대출 만기 연장 등 조처를 해놓은 상태다. 당장 두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해 말 대우조선해양에 내준 대출 약 2조원의 만기를 올해 말까지 연장했다. 인수가 무산돼도 대우조선해양에 긴급한 정부 자금 지원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의미다. 당초 현대중공업 쪽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뒤 1조5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수혈하려 했다.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를 결정했던 2019년 당시 불황을 겪던 조선업 경기도 최근 반등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잔고는 지난해 말 기준 237억달러(28조원·116척)로, 3∼4년치 일감을 확보해둔 상태다. 전방 산업인 해운업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신규 수주액이 2020년에 견줘 2배가량 늘어난 109억달러에 달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선박 건조 등을 통해 실제로 벌어들인 현금은 지난해 1∼9월 4600억원 가량으로, 2020년 1∼9월 2800억원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현대중공업그룹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며 조선업 중간지주회사(한국조선해양)를 신설하고 그 아래에 그룹 내 조선사를 몰아놓는 지배구조 개편을 이미 마쳤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조선 업황이 과거보다 개선된 것은 맞으나 대우조선해양이 외부 자본 수혈 없이 최소 3∼5년 독자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신용평가 회사의 한 조선업 담당자도 “업황이 올라가는 초입 단계인 것은 맞지만, 수주 산업 특성상 최근 선가(뱃값) 인상이 실제 실적에 반영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채권단이 사준 영구채(만기가 없는 채권)가 회사의 자기 자본으로 잡혀있는 등 겉으로 드러난 재무 수치보다 실제 상황이 더 안 좋다고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향후 조선 업황이나 원자재 가격 급등락 등 대외 환경 변화에 따라 정부의 추가 지원 필요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현대중공업 쪽도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불발로 국내 조선사 간 저가 수주 경쟁 등 ‘치킨 게임’이 다시 벌어질 수 있어서다.

더 큰 난제는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 찾기다. 유럽연합이 성장 전망이 밝은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시장 독점 우려를 콕 짚어 기업 결합에 반대한 만큼 삼성중공업 같은 기존 대형 조선사들은 아예 새로운 인수 후보로 나설 수 없다. 다른 대기업 입장에서도 대우조선해양 인수의 유인이 크지 않다. 조선업이 주목할만 한 성장 산업이 아닌 데다, 현재 업황이 과거 같은 호황도 아니어서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2008년 한화그룹이 인수를 추진했으나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매각과 민영화가 무산된 바 있다. 이후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부실로 인해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대출과 출자 전환(대출을 주식으로 전환) 등으로 지원한 금액 만도 7조1천억원에 이른다. 외환위기 직후 20년 넘게 대우조선해양을 떠안고 혈세 지원 등 비판을 받아온 정부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한겨레>에 “그동안 유럽연합의 인수 심사가 계속 진행됐던 만큼 인수 불발을 염두에 두고 다른 후보군 등을 접촉할 수는 없었다”면서 “앞으로 조선업 경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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