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 가라타니 고진 [이명원의 내 인생의 책 ⑤]
[경향신문]
생전에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그는 구조주의자야”라는 말을 종종 했다. 물론 이는 가라타니 비평의 ‘체계성’은 매력적이지만, 살아 숨 쉬는 인간생활의 복잡성을 종종 단순화할 수 있다는 비판을 내포한 말로 내게는 느껴졌다.
최근 들어 가라타니 고진은 교환양식 A, B, C, X 등의 도식을 자주 활용하는데, 세상이 이 4분면의 구도로 설명되는 것은 한없이 투명해 보이지만, 그랬을 때 행위자의 주체성이나 능동성은 휘발될 수도 있기에 역시 물음표는 필요하다.
현재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은 ‘도서출판b’를 통해 완역되어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읽은 것은 이 책이 민음사에서 막 번역되었을 때다. 나는 이 책을 전후 일본 민주주의가 패퇴하고 탈역사주의가 득세한 시기의 일본문학과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감각에서 읽었다. 이 책의 감각과 내가 속해 있는 한국문학의 지형이 동일한 것이지만, 이런 패턴들은 한국이나 일본이 아니더라도,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시대의 변전을 유용하게 설명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번역’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그가 인용하는 서구의 많은 저작들은 해당국 언어로 된 ‘원저’가 아니라 ‘일역판’들이다. 칸트나 마르크스를 논의할 때, 그는 일본어로 번역된 전집을 활용한다. 그 밖의 허다한 사상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번역의 축적과 사상의 온축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이런 지적 풍토는 존중할 만하다. 신뢰할 수 있는 번역 작업에 우리 학계는 어떤 보상체계를 갖고 있는가.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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