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는 질서의 따분함 깨는 힘..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22)]

박주용 교수 2022. 1. 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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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과학 - 엔트로피, 질서와 무질서(1)

[경향신문]

서로 다른 ‘계’가 만나는 순간
각 계가 부동의 정상상태 흔들면
‘질서’ 무너지고 ‘무질서’ 증가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지도 않았던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 직장을 따라 가족이 외국에서 몇년 동안 생활하게 되었었다. 알파벳 정도나 겨우 읽을 수 있던 어린아이가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동갑내기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 외국인으로서 처음 가던 날, 평생 한국이라는 계(시스템)에 익숙해졌던 몸과 마음이 외국이라는 계와 접촉하며 느꼈던 이질감(새로운 것이 주는 묘한 자극감도 함께 있던)은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서로 다른 두 계의 ‘접촉’을 생각할 때 또 기억나는 하나는 공교롭게도 당시 일요일마다 주독 미군방송인 AFN에서 상영하던 ‘3-2-1 콘택트(Contact)’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다양한 과학적 원리와 응용법을 소개하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이었는데, 주말 아침에 일어나 “셋-둘-하나 접촉! 모든 게 접촉으로부터 시작된다!”라는 가사의 시그널 노래를 들을 땐 오늘은 과연 어떠한 두 개의 개체가 만나 벌어지는 일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집중하곤 했다. 나의 손가락이 스위치에 닿는 순간 공간이 빛으로 가득차고, 너의 말이 나의 귀에 닿는 순간 너의 감정과 사상이 전달되고, 꿀벌이 날아와 꽃에 내려앉아야 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되니까.

왜 반드시 두 개의 계가 접촉해야만 새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걸까? 멀리 볼 것 없이 우리 자신의 몸을 한 번 바라보자. 기본적으로 호흡과 신진대사를 하며 살아 있는 한 우리의 몸은 단기적으로 볼 때 아무런 큰 변화를 겪지 않는데, 이렇게 ‘하던 대로 한다’ ‘있던 대로 계속 있는다’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정상상태(stationary state·엄밀한 물리학적 정의에서는 ‘영원한 시간’ 동안 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뜻하지만 현실에서 영원히 가능한 것은 없다)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상상태라고 해서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모든 것이 멈춰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상상태에서도 우리 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자연적·의식적 과정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몸을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는 열역학의 법칙을 따라 떠돌거나(액체의 경우) 진동하고(고체의 경우), 세포들은 끊임없이 분화하고 사멸하며, 두뇌는 쉴 새 없이 사고와 판단을 한다. 다만 눈에 보이는 큰 변화가 단시간에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정상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새로운 현상은 서로 이질적인 성질을 가진 계들이 만나는 경계에서 생기는 섭동(흔듦·perturbation)이 각 계의 정상상태에 충격을 가할 때 제대로 일어날 수 있다. 그 결과는 기존 정상상태의 완전한 파괴일 수도 있고, 아주 약간의 변이가 가미된 새로운 정상상태일 수도 있다. 많은 독자들도 매년 목격하는 일이겠지만 올해도 누군가는 2022년 1월1일 아침이 밝자 ‘행복한 임인년’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걸 보고 임인년은 음력설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을 것이다.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계에 양력이라는 외부계의 영향이 들어온 다음에 어정쩡하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일을 한국식 나이 세는 법을 외국인 친구들에게 설명할 때도 겪을 수 있다. 보통 ‘나이’를 ‘age’로 번역하는데 망설일 사람은 없겠지만 한국에서 말하는 ‘나이’는 내가 태어나 살았던 달력상 해의 개수이고 영어의 ‘age’는 실제로 살아온 햇수이기 때문에 비슷하지만 엄밀히 말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 줄 때 그 친구들이 짓던 미묘한 표정 변화에서 두 계가 충돌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론의 여지가 없이 확고한 정의를 갖고 있다고 믿어왔던 ‘나이’ ‘age’의 정의가 문화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접촉·맞닿음·섭동·충돌의 메커니즘과 영향력을 이해하기 위한 이러한 ‘경계의 과학’의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질서’(order)이다. 물리학에서 ‘질서가 있다’ 함은 우리가 그 계의 상태-조금 더 시각적인 면이 강조되는 형상(configuration)이라는 단어가 물리학에서 더 자주 쓰인다-를 잘 알고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던 것에 대한 반례를 인지하거나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은 곧 질서가 깨지면서 무질서가 증가하는 순간이다.

질서의 물리학적 의미: 예측과 통제

물리계가 외부 자극으로부터
변화하는 정도 뜻하는 ‘엔트로피’
보편적 ‘무질서’ 개념으로 통용
엔트로피 커질수록 통제 어려워
영속적인 정상상태 유지하거나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도 불가능
엔트로피는 무조건 증가할 뿐

질서와 무질서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 일상생활에서 친숙한 ‘질서 있는 모습’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지하철 문이 열리는 공간을 피해 옆으로 가지런히 줄 선 승객들, 각종 물건들이 제자리에 놓인 방, 책들이 듀이분류법에 따라 정확히 서가에 꽂혀 있는 도서관의 모습 등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질서가 있는 계의 특징은 그 안에 있는 개체(승객, 물건, 책 등)들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잘 알 수 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그 계의 행위를 우리가 잘 통제하고(유사시 승객 유도), 필요에 따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물건이나 책을 쉽게 발견)는 뜻이다. 무질서한 계는 반대로 통제와 활용을 잘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해를 바탕으로(과학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해 보여도 그 시작점은 언제나 일상이다!) ‘질서’를 과학적인 양으로 정의하는 역사적 과정은 ‘활력’ ‘힘찬 움직임’이라는 일상적인 해석으로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½mv²과 같은 에너지의 공식을 만들어낸 과정과 매우 흡사했다. 실제 1865년 독일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ph Clausius·1822~1888)는 일부러 에너지와 비슷한 느낌이 나도록 영어 접두사 ‘en-’에 변화·전환을 뜻하는 그리스어 ‘τροπη(trope)’를 붙여 물리계가 외부의 자극으로 변화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엔트로피’라는 말을 제시하였다. 클라우지우스가 처음 이 개념을 제안했을 때는 열과 온도에 따른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는 물리학 분야인 열역학(thermodynamics)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후에 사회나 경제와 같은 다양한 계의 질서를 계산할 때도 사용되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엔트로피는 어떻게 계산하는가? 엔트로피를 계산하는 법을 알기 위해 위에서 잠시 소개한 지하철역 승객들의 예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먼저 승객은 1번부터 10번까지 열 명이 있고, 문이 열리는 플랫폼 앞에는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정방형으로 25개 있다고 가정하자. 질서 있는 승객들은 문을 막지 않기 위해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서 있을 것이고(그림 1), 무질서한 승객들은 자기 자리를 마구잡이로 골라 서 있을 것이다(그림 2). 이 두 가지 상반된 성질을 갖는 승객들이 자기 자리를 잡아 서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자.

질서 있는 1번 승객은 10개 자리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2번 승객은 남아 있는 9개 자리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이렇게 마지막 10번 승객까지 따져보면 이들의 경우의 수는 ‘10×9×8×7×6×5×4×3×2×1=3628800’이 된다. 즉 ‘질서 있는’ 승객들은 총 362만8800개에 달하는 형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에 반해 질서 없는 1번 승객은 25개 자리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2번 승객은 나머지 24개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이렇게 따지다보면 이들은 무려 ‘25×24×23×22×21×20×19×18×17×16=11861676288000’개에 달하는 형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알려주는 바는 무질서한 계는 질서 있는 계보다 더 많은 가능한 형상의 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확립한 것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1844~1906)으로서 그는 총 형상의 개수 W의 로그값인 logW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볼츠만 상수’ k를 곱한 값인 S=klogW를 엔트로피로 정의하였다. 여기에서 편의상 k를 1이라고 하고, 로그의 밑을 10으로 가정하면(엔트로피의 크기를 따질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래와 같이 되어서, 질서 없는 승객들이 두 배 정도 더 무질서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질서 있는 승객들의 엔트로피 S1=log103268800=6.56

-질서 없는 승객들의 엔트로피 S2=log1011861676288000=13.07

왜 가능한 형상의 수가 큰 것이 반드시 더 무질서한 것일까? 형상의 수가 커질수록 순간순간 그 계가 정확히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에 예측하기 어려워지고(‘럭비공 튀는 방향’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그에 따라 그 계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이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지하철 승객의 예에서도 무질서한 승객들의 경우에 열차 문이 열린 다음 누가 어디에서 부딪히고 엉켜 넘어져 사고가 날지 알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고 정도가 심각하면 열차 운행 중단이나 역의 폐쇄처럼 지하철이 온전히 작동하는 정상상태가 무너지는 파국(catastrophe)의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게 된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숙명

하지만 전 우주가 파국을 맞는
최대의 엔트로피로 접어드는 건
아주 머나먼 일이니 안심하시길

이렇게 계들이 만나 접촉하는 경계 현상으로 인해 무질서(엔트로피)가 증가하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저러한 혼란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엔트로피가 줄어들거나 최소한 더 늘어나지 않는 안정적인 영속적인 정상상태를 쟁취하는 것이 가능한지 묻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열물리학의 대답은 단호히 ‘아니오’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계의 엔트로피는 자체적으로 감소할 수 없으며, 다른 계와 접촉시켜 인위적으로 엔트로피를 줄이면 접촉된 다른 계의 엔트로피가 그 이상으로 증가하게 되기 때문에 우주의 총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무엇을 해도 무질서도는 증가하는 이 법칙을 근거로 아주 먼 미래를 내다보면 언젠가는 전 우주가 최대의 엔트로피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무질서가 극대화되었으므로 우주의 어떠한 존재가 와도 아무것을 할 수 없는 극도의 불능상태를 ‘열 죽음’(heat death)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볼츠만이 노년에 스스로 명을 달리하자 열 죽음을 최초로 예견하고 슬픔에 빠져 그랬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볼츠만은 이미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같은 물리학자라면 전 우주의 열 죽음은 까마득히 먼 날의 일이라는 계산을 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도는 걸까? 최근에 나온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서도 천문학자들이 혜성이 지구로 날아들어 세상이 멸망하는 확률을 생각하듯 어떠한 전문 분야에서든 소름 끼치는 종말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잊지는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필자마저도 경계에서의 접촉으로부터 질서와 무질서를 지나 파국과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면서 위축되고 있는 기분이 드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 열 죽음이 올 확률은 0에 가깝고, 현재 알려진 바로는 100년 내로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제일 높은 천체는 2095년에 지구에 근접하는 7m 지름의 2010 RF12 소행성이기 때문에(충돌 확률이 불과 5%), 전 우주나 세계의 파국적인 결말에 대한 두려움은 떨치고 경계에서 일어나는 재미있고 안전하고 신기한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다음번에.

▶박주용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물리학에 기반한 융합 데이터 과학 전문가로서 노트르담대학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너-파버 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카이스트 포스트AI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시간이 생긴다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박주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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