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녹은 물이 빙하 붕괴 늦추는 역설 발견
빙하 녹은 물의 빙붕 붕괴 가속화 가설 뒤집어
"남극 '운명의 날' 빙하 시계 늦춰질 수 있어"
극지연·서울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논문
남극 빙하의 연쇄 붕괴를 촉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운명의 날’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역설적으로 빙하의 붕괴 속도를 늦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남극 빙붕(남극 대륙과 이어져 바다에 떠 있는 수백미터 두께의 얼음덩어리)의 자기 방어 기작(음의 피드백·되먹임)을 처음 밝혀낸 것으로, 기후변화 연구에 새로운 분석틀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극지연구소와 서울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13일 “서남극 지역에서 빙하가 녹은 물(용빙수)이 빙하가 바다에 빠지는 것을 막고 있는 빙붕의 붕괴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기존 가설과 달리 오히려 늦추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이날(한국시각)치에 실렸다.
남극 연안 대륙붕 해역의 심층으로는 어는 점보다 수온이 높은 따뜻한 바닷물(환남극 심층수)이 흘러들어온다. 이 환남극 심층수는 빙붕의 아래쪽을 녹여 빙붕을 빠르게 녹인다고 알려져 있다. 보통 빙붕은 빙하가 바다에 빠지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용빙수가 빙붕 하부와 주변 해양의 순환을 도와 남극해 밖의 환남극 심층수를 빙하 아래로 더 많이 끌어들여 빙붕 붕괴를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빙하 붕괴를 촉발할 것으로 추정해왔다.
연구팀은 지난 2020년 1∼2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고 서남극(남극 대륙 서쪽) ‘스웨이트빙하’ 인근에서 용빙수 상태와 빙붕 붕괴 현상을 관찰·분석했다. 스웨이트빙하는 남극에서 가장 빠르게 녹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의 이 빙하가 모두 녹으면 지구 평균 해수면이 65㎝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웨이트빙하는 다른 빙하들이 연쇄적으로 녹아내리는 것을 막는 코르크마개와 같은 구실을 한다. 남극의 모든 빙하가 바다에 빠지면 지구 해수면이 5.8m 상승할 것으로 예측돼 스웨이트빙하는 ‘운명의 날’ 빙하로 불리기도 한다.
연구팀은 스웨이트빙하와 파인아일래드빙붕 인근 바다에서 지름 40㎞의 소용돌이를 추적한 결과 기존 가설과 다른 현상을 발견했다. 소용돌이는 용빙수가 흘러들어 생긴 것으로 반시계방향의 움직임이 뚜렷했다. 또 소용돌이가 돌 때 차가운 용빙수가 안쪽으로 모여들어 바깥에서 온 따뜻한 물(환남극 심층수)이 이곳을 통과할 때 열을 빼앗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 공동 교신저자인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소용돌이 방향에 따라 경계면이 아래와 위로 볼록해지는데, 반시계방향이면 아래가 볼록해진다. 이럴 경우 저층의 따뜻한 해수 두께가 얇아지게 돼 열 수송량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수심 400∼700m에서 바닷물의 열용량이 12% 감소한 것을 발견했다. 이는 빙붕 하부가 녹는 속도도 그만큼 늦춰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 교수는 “환남극 심층수 유입으로 빙붕 하부 용융률이 급증하며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한 기존 학설을 뒤집는 연구 결과다. 예상과 달리 서남극 빙붕의 붕괴와 그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 기존 예측보다 느리게 진행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다”라고 말했다. 논문 제1저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극지연구소에서 연수연구원을 지낸 윤승태 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조교수이다.
공동 교신저자인 이원상 극지연구소 빙하환경연구본부장은 “지구는 ’자기방어 능력’으로 지구온난화에 저항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남극은 빠르게 녹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해수면 상승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빙하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웨이트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 연구팀은 스웨이트빙하 자체에 대한 현장 탐사를 위해 지난 12일 뉴질랜드에서 아라온호를 타고 출항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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