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끌이 대북 제재' 꺼낸 美, 제재완화 시도에 제동 걸었다

박현주 2022. 1. 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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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북 제재 시계’를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독자 제재에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추가 조치까지 촉구했다. 현 대북 제재 체제의 양대축인 독자 제재와 안보리 제재 카드를 동시에 꺼내든 것은 미국이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등 최근 미사일 개발 수준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증이다.
북한 탄도미사일 관련 신규 독자 제재에 대한 12일(현지시간) 미 재무부 트위터. 트위터 캡쳐.


美, 독자 제재 이어 유엔 제재도 제안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해 9월부터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반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해 유엔 차원의 제재를 제안한다”며 “이는 앞선 미 재무부와 국무부의 독자 제재에 이은 (추가) 조치”라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

재무부는 이날 약 반나절 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북한 국적자 6명과 러시아 국적자 1명 등 개인 7명과 러시아 기관 1곳을 제재 대상에 추가하는 독자 제재를 발표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이 요구한 '유엔 차원의 제재'는 이들 중 5명을 안보리 제재 명단에 추가로 올리는 것이다.

즉, 미국의 제안은 제재의 분야나 요소를 강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제재 대상 추가 지정은 북한의 불법적 행위를 주도하는 개인이나 기관을 명단에 올리는 것이다. 여기 이름이 올라가면 모든 유엔 회원국에 입국이 금지되고, 해외 모든 자산이 동결된다.

안보리 추가 제재 조치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그물망에 걸리는 대상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제재 이행 측면에서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북한 고위급을 명단에 올릴 경우 이들을 직접 제재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유엔 6개국을 대표해 북한 탄도미사일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유엔 웹 티비 캡쳐.


'명단 업데이트'도 중ㆍ러가 변수


미국이 이처럼 ‘쌍끌이 제재’를 꺼낸 데는 북한의 최근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재무부와 토머스-그린필드 대사 모두 제재 이유를 ‘지난해 9월 이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로 규정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했고, 10월에는 미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3월에도 있었지만, 빈도가 급속히 잦아진 건 9월부터였다. 이달까지 합치면 탄도미사일 발사만 5회다. 미국으로서는 속도와 기술 수준 모두 우려할 만 한 상황인 셈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안보리에서 제재 명단을 업데이트하는 데도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결정적이다. 별도의 결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만장일치나 합의(컨센서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적어도 ‘거부권’(veto)을 사용하지는 않아야 업데이트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추가 제재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중․러가 여기에 반대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이번에 미국이 독자 제재 대상에 올린 북한 국적자들의 활동 무대가 중국과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이런 시도는 최근 거세지는 중․러의 대북 제재 완화 요구에 제동을 거는 정치적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중․러는 2019년에 이어 지난해 10월에도 대북 제재를 일부 풀어달라는 결의안을 안보리에 제출했다.


'세컨더리 보이콧' 명시...중ㆍ러에 경고장


미국의 안보리 추가 조치 제안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셈이다. 이는 이날 발표한 독자제재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미 재무부는 ▶북한에서 핵ㆍ미사일 개발을 주도하는 기관인 국방과학원의 해외 거점 대표들을 노렸고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기관도 제재) 적용을 경고했다. 이번에 제재 대상에 오른 북한 국적자 6명(조명현ㆍ강철학ㆍ김송훈ㆍ오영호ㆍ변광철ㆍ심광석)은 모두 북한 국방과학원 소속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중국 다롄, 선양 등에 있는 지부의 대표 격이었다.

재무부는 이들이 미사일 개발에 쓰이는 철강 합금, 소프트웨어, 화학물질 등을 조달했다는 점을 제재 근거로 들었다. 의심 품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중국 회사로부터’ ‘러시아 회사로부터’ 조달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는 대북 제재의 뒷문을 열어주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직접적인 경고나 다름없다. 실제로 이날 제재 대상에는 러시아인 1명(로만 아나톨리비치 알라르)과 러시아 회사(PARSEK LLC) 1곳도 포함됐다.

미국 독자 제재의 힘은 세계 경제가 달러화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미국은 이날 제재 대상에도 ‘세컨더리 보이콧 주의’ 문구를 달았는데, 북한과 어떤 식으로든 잘못 얽혔다가는 달러화 거래는 아예 못하도록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미국이 양대 제재를 활용해 국제사회에 보내려는 메시지는 대북 관여와 별개로 북한의 의미 있는 행동변화 전까지 제재는 계속 유지될테니 충실히 이행하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2일(현지시간) 북한 탄도미사일 관련 미 재무부의 신규 독자 제재 후 업데이트된 특별지정제재대상(SDN)의 개인ㆍ기관별 정보. 미 재무부 홈페이지 캡쳐.


'제재 완화' 목소리에 선 긋기


한국 역시 이런 메시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가 앞장서 “대북 인센티브로 제재 완화를 고려할 수 있다”(지난해 9월 정의용 외교부 장관)고 주장하는 등 제재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최근 미국보다는 중ㆍ러와 비슷한 입장을 취해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 국면까지 겹쳐 한국 내에서 제재 완화가 종종 이슈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안보리 추가 조치를 요구한 데 대한 입장을 묻자 “한‧미는 긴밀한 수시소통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고만 답했다. 정부도 이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에 대한 즉답은 끝내 피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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