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쟤는 왜 맨날 저래?" 편견이 유능한 직원 망친다

임근호 입력 2022. 1. 13. 18:15 수정 2022. 1. 14.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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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패 신드롬
장 프랑수아 만초니
장 루이 바르수 지음
이아린 옮김 / 위즈덤하우스
440쪽│1만9000원
상사가 부하직원 평가하는데
빠르면 10분, 최대 6개월 천차만별
짧을수록 낙인 찍는 속도도 빨라
일방적 간섭보다는 격려·지원을
Getty Images Bank


직장 생활을 다룬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부장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작은 실수에도 크게 혼나고, 마음에 드는 직원에겐 조그만 성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항상 혼나기만 하는 직원은 어깨가 축 처져 있기 마련이다. 탐탁지 않은 부장은 더 성화를 부린다.

프랑스 최고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INSEAD) 교수를 거쳐 현재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학장으로 있는 장 프랑수아 만초니는 ‘직장의 일상’일 수 있는 이런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와 동료 장 루이 바르수는 상사의 낙인과 질책이 어떻게 유능한 직원도 실패하게 할 수 있는지 분석해 1998년 경영 잡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긴 글을 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잡지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글이 됐다. 둘은 2002년 이를 책으로 펴냈다. 2014년 《확신의 덫》으로 번역 출간된 이 책이 《필패 신드롬》으로 제목으로 재출간됐다.

정말 유능한 직원도 실패한 직원으로 전락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한 대기업에서 제조 관리자로 일했던 스티브란 인물의 사례를 소개한다. 그는 매우 정열적이고 의욕이 넘쳤다. 현장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고, 문제가 생기면 재빠르게 해결했다. 상사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아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새 제조 라인에 투입됐다.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상사 제프는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보고서를 요청했다. 제프는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점차 스티브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스티브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통제하려고 했고, 스티브는 의기소침해졌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시작은 우연일 수 있다. 작은 실수 혹은 행동, 태도가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그때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쉽게 꼬리표를 붙여버리면 악순환이 나타난다. 부하 직원의 행동 하나하나가 더 마음에 안 들어 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주관에 부합하는 정보만 인식하려는 확증편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상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인지적 편견에 빠져든다. 이런 편견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유능한 직원조차 무능한 직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꼬리표 붙이기는 진화의 산물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은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모든 정보를 다 취합해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일순간의 정보로 판단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평가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냐는 질문에 리더들의 대답은 10분에서 6개월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책은 “꼬리표를 붙이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능한 직원을 무능한 직원으로 낙인찍는 속도가 빨랐다”고 설명한다.

상사들은 “부하 직원이 일을 잘 못 하니 도와주려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업무를 맡기며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까지 세세하게 지시한다.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의견이 다르면 자신의 말이 옳다고 고집한다. 부모가 어린아이를 대하듯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부하 직원은 수동적으로 변하고, 일에 대한 의욕을 잃게 된다.

필패 신드롬은 고칠 수 있다. 처음부터 부하 직원의 의욕을 꺾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상사는 없고, 직장에서 형편없이 일하고 싶어 하는 직원도 없기 때문이다. 상사든 부하든 스스로 자신이 추측하고 확신하는 생각이 맞는지 의문을 던지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섣부른 확신, 성급한 결론, 일방적인 간섭이 아니라 상사와 부하가 서로를 격려하고 지원해줌으로써 더 나은 성과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선 주관적 판단 대신 객관적인 증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위 사례에서 제프는 “스티브가 보고서에 충분한 에너지를 쏟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대신 좋은 보고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스티브의 보고서에서 어떤 점이 부족한지를 설명해야 한다.

직장 생활에 관한 책이지만 누가 읽어도 배울 점이 있는 책이다. 필패 신드롬은 상사와 부하는 물론 교사와 학생, 코치와 선수 등 모든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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