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축으로 통상 재편..美 주도 'IPEF 태풍'도 몰려온다

세종=양철민 기자 2022. 1. 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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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통상 판이 바뀐다]
<상> 급변하는 다자주의..미중 '갈등의 핵' 인도태평양
中·日 위주 경제블록 영향력 커지자 美 다자협력으로 반격
단순 무역 넘어 디지털·에너지 등 공급망 새판짜기 활발
바이든 지지율 하락땐 강경책 가능성..韓 전략적 선택 중요
[서울경제]

“글로벌 통상 질서가 마치 냉전 시대처럼 외교·안보 이슈를 축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 외교·통상 전문가는 기자와 만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공급망 사태는 단순 물류 차질을 넘어 외교·안보 이슈와 관련이 깊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통상과 기술 영역으로까지 확대되면서 가격 경쟁력보다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글로벌 공급망이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 자리한 인도태평양 지역이다. 인도태평양은 최근 몇 년 새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잇따라 발효되며 통상 새판 짜기가 한창이다. 여기에 중국은 지난해 9월 CPTPP 가입을 신청하며 앞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발을 뺀 미국의 빈자리까지 차지하겠다는 방침이다. CPTPP는 상품 시장 개방률이 RCEP 대비 10%포인트가량 높은 95% 수준으로, 지난해 기준 글로벌 GDP의 17.8%를 차지하는 중국이 가입할 경우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도 칼을 꺼내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중국과의 ‘양자 대결’을 선호했던 미국은 이제 다자 협력을 기반으로 중국을 옥죄고 있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라는 용어를 처음 언급한 후 인도태평양 지역의 통상 새판 짜기에 본격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이다. 한국 통상이 자칫 역대급 파고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5일(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보리스 존슨(화면 왼쪽)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오른쪽) 호주 총리와 국가 안보 구상에 관한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외교·통상 업계에 따르면 앞서 미국이 공개한 IPEF 관련 골조는 △무역 원활화 △공급망 안정화 △디지털경제 △탈탄소 청정에너지 △인프라 협력 △노동 기준 확립 등으로, 사실상 중국을 겨냥했다.

우선 무역 활성화의 경우 중국의 불법 보조금이나 통상 보복 등으로 자유무역 기조가 예전 같지 않은 가운데 이를 복원하려는 움직임과 관련이 깊다. 실제 미국은 중국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힘을 빼놓으며 유럽연합(EU) 등 개별 국가와 통상조약을 맺거나 미국·캐나다·멕시코가 참여한 ‘USMCA’ 같은 경제 블록을 창설하는 방식으로 무역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공급망 안정화 또한 최근 요소수 사태로 어려움을 겪은 한국과 1년 넘게 지속된 무역 분쟁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호주 등 중국의 ‘일방적 무역 행태’에 피해를 입은 국가로서는 환영할 이슈다.

디지털경제는 미국의 미래 핵심 먹거리다. 중국은 구글·페이스북 등의 자국 내 사용을 막으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6세대(6G) 이동통신 등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미국의 정보통신기술(ICT)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으로 대표되는 미국이 주변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로 대표되는 중국의 디지털 굴기를 억누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탈탄소 청정에너지 추진 또한 석탄발전의 비중이 높고 오는 2030년에나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중국에 상당한 위협이 된다. 인프라 협력 부문은 육상과 해상에 ‘21세기판 실크로드’를 깔겠다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되며 노동 기준 확립은 사실상 중국 신장 지역의 인권 탄압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더욱 노골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의 신장 지역 인권 탄압을 이유로 신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위구르족 강제노동금지법’에 서명한 바 있다. 미중 양국의 통상 패권 다툼 상황에서 한국이 IPEF에 가입할 경우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IPEF 가입을 요청할 경우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국제통상학회장을 지낸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IPEF는 자유무역협정(FTA)과 달리 여러 이슈를 다양하게 다루는 협력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미국이 가입 요청을 한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으며 중국 측에도 관련 설명을 잘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IPEF는 FTA와 같이 시장 개방이 뒤따르는 협정이 아닌 일종의 협력체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가입 시 부담이 덜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이 같은 다자 기반의 통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이전의 트럼프 행정부가 양자 통상에 기반한 압박으로 중국의 기세를 꺾어놓았기 때문으로, 미국의 중국 견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향후 지지율 회복을 위해 대중 강경책을 잇따라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은 한국 통상의 불안 요소로 꼽힌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IPEF가 어떤 수준으로 나올지 두고봐야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의 가입 요청 시 거부하기 힘들다”며 “민주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민주당이 지지율 상승을 위해 미중 대립 격화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한국의 통상 환경이 불안정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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