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나이 "미·중 문제, '신냉전' 프레임부터 버려라"
美, 역사적 사례에 빗대는 '관성' 버려야 강조
미·중 갈등 해결책 핵심은 '협력적 경쟁'
13일 최종현학술원은 작년 12월 초 미국 워싱턴 DC에서 ‘환태평양 대화(Trans-Pacific Dialogue)’ 포럼에서 기조 연설자로 나선 나이 교수의 강연을 유튜브로 공개했다. 나이 교수는 ‘중국의 도전과 역사의 교훈’이란 주제로 약 30분간 강연했다. 다만 전제조건을 달았다. 그는 “나는 애초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지 않지만, 그럴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얘기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강연을 하는 데 앞서 강연에 더 적절한 제목이 있다고 전했다. ‘정책 입안자를 찾는 세 개의 역사적 함정’인데, 이는 이탈리아 루이지 피란델로의 희곡 ‘작가를 찾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에서 착안한 것이다.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이 중국 문제를 다루면서 지나치게 역사에 의존하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나이 교수는 그들이 미·중 관계를 해석하면서, 흔히 가지고 들어오는 역사적 사례 세 가지가 왜 함정인지를 요목조목 지적했다.
美가 빠진 투키디데스·신냉전·몽유병자 함정
역사적 사례 세 가지는 △투키디데스 함정 △신냉전 함정 △몽유병자의 함정이다. 우선 투키디데스 함정은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은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단 가설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관계에서 나온 이론으로 패권국 미국과 신흥 강대국 중국 역시 전쟁에 가까운 부딪힘이 있을 수밖에 없단 시각으로 이어진다. 나이 교수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오면서 패권이 영국으로 미국으로 넘어갔을 때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을 방관했다는 ‘킨들버그의 함정’도 주지해야 한다”며 무조건 미·중이 첨예하게 맞붙는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냉전의 함정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미국과 소련이 극단으로 치닫는 군비경쟁을 했을 때처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았다. 당시엔 대결 무대가 오직 군사 한곳뿐이었지만, 지금 미·중은 경제와 기후 등으로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나이 교수는 “신냉전도 게으른 사고방식”이라며 “과거 미·소엔 상호의존이 하나도 없이 군사 체스판에서만 체스를 뒀으나, 지금은 경제, 기후 체스판이 있고 해당 게임들엔 상호의존도 있다”라고 짚었다.
몽유병자의 함정은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독일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경솔한 결정”을 말한다. 1914년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죽인 사건이 있고 나서, 독일은 오스트리아의 전쟁을 독려했고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됐다. 세간에선 이를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큰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단 근거로 사용하고 있으나, 나이 교수는 이 또한 함정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미·중을 역사적 모델 안에 집어넣는 시도로는 현 갈등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역사로부터 배울 교훈이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나이 교수는 “역사적 교훈은 외로 단순한데, 미래가 단 하나라는 게 아니란 것”이라며 “좋은 전략이란 다양한 시나리오를 넣고 계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갈등 해결 핵심은 ‘협력적 경쟁’
나이 교수는 본인이 생각하는 미·중 갈등 해결책의 핵심은 ‘협력적 경쟁’일 수 있다며, 케빈 러드 전 호주총리의 과거 발언을 소개했다. 러드 전 총리는 “체제 변동이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등 방식으로 중국을 이길 방도는 없다. 관리된 경쟁이나 협력적 경쟁이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다”라고 한 바 있다.
나이 교수는 아울러 바람직한 미·중 관계를 만들기 위한 미국의 성공전략 8개를 전하며 강연을 마쳤다. △소프트파워를 제공하는 민주제도 유지 △기술 우위 유지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 △이민자에 대한 개방을 포함한 문호 개방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한 군 체제 개편 △일본, 호주, 대한민국 등을 포함한 동맹체제 강화 △쿼드(QUAD) 등이 추구하는 방향인 인도와의 관계 강화 △미국이 설립한 국제기구들에 대한 참여 강화 보완 △가능한 경우 중국과의 협력 등이다.
고준혁 (kotae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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