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율 "K콘텐트 글로벌화, 치열하게 손님 맞을 준비할 것"
스크린에서는 못된 빌런으로, 브라운관에서는 꽤나 얄밉지만 현실적인 남편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영화 '경관의 피(이규만 감독)'와 카카오TV '며느라기'를 통해 동시에 인사하게 된 권율은 "배우로서는 기쁜 일이다"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상 인터뷰에 최적화 된 배우였던 것일까, 그 사이 입담이 더 무르익은 것일까. 권율은 '원래 이런 배우였나' 싶을 정도로 풍성하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들로 작품 속 캐릭터만큼 장외 홍보 메신저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경관의 피'에 대한 애정으로 라디오, 예능 등 홍보 최전선에서 굵직한 움직임까지 보인 그는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캐릭터다. 흙먼지 속 잡초가 아닌 온실 속의 잡초라 끌렸다"며 본인이 연기한 나영빈에게 반한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기도 했다.
권율은 이번 영화에서 상위 1%만 상대하는 범죄자 나영빈으로 분해 12kg 체중 감량과 화려한 의상을 소화하는 등 파격적인 비주얼 변신을 꾀했다. 새로운 대사 훈련법에도 도전하는 등 영화 개봉 전부터 그의 노력이 알려졌기에 완성된 영화 속 분량과 편집의 아쉬움은 관객들도 함께 느낀 지점이다. 새삼 그의 연기에 반한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나영빈을 더 보고 싶다'는 외침을 터뜨리게 만든다.
하지만 권율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도전을 할 수 있었다는 과정에 이미 만족한다. 기회가 된다면 디렉터스컷을 통해 추가 장면이 공개되길 바라는 마음은 있다"며 너스레 가득한 대인배의 면모를 보였다.
"개봉이 어려운 시기에 개봉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영광이다. 저 또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발걸음이 어느 시기에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보면 안전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다. 런 상황에서 '경관의 피'가 용기있게 개봉하고, 여러 분들께 보여드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개봉 첫 날에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일단 극장에 찾아와 주신 분들이 많아졌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그것이 '스파이더맨'을 통해서든 우리 영화를 통해서든 좋다. 또한 관객 분들이 오랜만에 나온 한국 영화를 어여삐 봐주시는 것 같고 관심 가져 주신 것 같아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1위, 2위 같은 순위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영화를 위해 열심히 한 시간들의 결과물을 들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정말로 끝까지, 마지막 한 분까지 감사의 마음 전달 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한국영화, 외화를 떠나서 극장과 영화에 조심스럽지만 많은 관객 분들의 발걸음 부탁드린다."
-'경관의 피'는 어떤 점에 끌렸나.
"첫번째는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계속 물고 물리는 관계성에 대해 '이거 어디서 어떻게 흘러가는거지? 진짜 박강윤(조진웅)이 나쁜 놈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느 순간 시나리오를 다 읽은 내 모습을 보면서 '무조건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영빈 캐릭터도 빌런의 한 축을 담당한다.
"영화가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처음 서로의 오해와 충돌 일으키는 꼭지점의 인물이 나영빈이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영빈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싶었고 무조건 하고 싶었다. 캐릭터 설정을 보면 본인이 재벌도 아닌데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굽힘이 없다. 법 위에 있는 캐릭터가 신선했다. 흙먼지 속 잡초가 아닌 온실 속의 잡초라 끌렸다."
-영화의 만족도는 어떤가.
"모든 배우들이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봤을 때 100%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작품적으로는 감히 말씀 드리자면, 나는 영화를 볼 때 굉장히 하나의 미덕을 보고 쫓아가는 스타일이다. 우리 영화가 갖고 있는 장점과 미덕도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 주관적인 의견, 시선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고, 내가 봤을 때도 단점이 보일 수 있지만, 우리 배우들 각자가 펼친 캐릭터적인 부분들의 연기, 케미, 분위기는 우리 영화가 꼽는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만족한다."
-분량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편집된 지점이 있다면.
"그것 또한 아주 없을 수는 없다.(웃음) 사실 편집된 지점들이 꽤 있다. 다만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을 놓고 봤을 때, 감독님께서는 최종 버전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셨을 것이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근데 (박)명훈이 형과 그 이야기는 했다. 원래는 나영빈과 명훈이 형이 연기한 차동철이 마주하는 신도 있었다. 그것도 꽤 격하게 찍었던 장면이라 '우리 그때 감정 참 좋았는데~'라면서 둘만 만족하고 공감할 촬영 때를 잠시 떠올리기는 했다.(웃음)"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나.
"내가 그 동안 날카롭고, 샤프하고, 예민해 보이는 악역들을 대부분 연기해왔다. 많지는 않아도 그런 필모그래피들이 쌓였는데, 나영빈이라는 인물은 캐릭터 설정부터 조금 달랐다. 박강윤(조진웅)이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죄와 맞서 싸우려는 신념 가진 사람과, 최민재(최우식)라는 합법적인 선 안에서 수사를 하려는 사람이 충돌하는 것에 있어서 두 인물을 무조건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지만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나와 나영빈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무게감이 있고, 퉁퉁한 느낌이 범접할 수 없는 나영빈과 조금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체중 증량을 결정한 후에는 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의 운동과 식사를 하면서 꾸준히 몸을 크게 만들었다. 식사는 한번에 많이 먹으면 밖으로 다 배출돼서 하루 6끼, 7끼를 나눠 먹었고, 아침 저녁 운동을 하면서 대사량도 올렸다. 먹기만 해서도 안되고 운동을 해야 원하는 몸을 갖출 수 있었다. 아예 알람을 맞춰두고 똑같은 양의 식사를 했다."
-원했던 몸이라 함은.
"감독님께서 너무 근육이 쪼개진 몸은 원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살만 찌는 것도 안됐다. '각이 지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몸을 만들어 달라'는 굉~장히 어려운 부탁을 하셨다. 하하. 그런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은 필수였고, 기름지거나 튀긴 음식은 피해야 했다. 그런 것들을 먹었으면 증량 자체는 쉬웠을 수도 있다. 근데 그러면 안됐다. 단시간 내 과도한 증량이나 감량은 건강 악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나에게도 괜찮은 도전이었다. 지금은 원래 몸무게로 다 돌아왔다."
-체중 증량 후 연기를 하는 느낌도 달라졌을까.
"확실히 달랐다. 촬영 때 78~79kg 정도 나갔는데 실제로 몸이 무거워지고 커지다 보니까 연기를 하면서도 바닥에 딱 붙는 느낌이 있더라. 이게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테너, 바리톤 분들이 본인 몸에 무게감을 싣고 노래하는 것처럼, 나도 연기가 무거워지고 거침없이 툭툭 밀고 가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덩치가 커지가 보니까 사람들은 자꾸 나를 보면서 '살 빠진 것 아니냐'고 하더라. 보여지는 얼굴은 덩치 때문에 조그마해 보인다고. 덩치도 생긴데다가 외투까지 입고 있으면 얼굴은 상대적으로 작게 보였던 것 같다. 비례적인 효과랄까? '너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라고 하면 '뭔 소리예요. 7kg 쪘는데'라고 답하는게 일상이었다. 그런 소소한 에피소드도 생겼다.(웃음)"
-맑고 선하고 하얀 이미지가 있는 얼굴인데 빌런을 연기했다. 어떤 지점에서 그런 매력이 보여진 것 같나.
"나도 궁금해서 이규만 감독님께 여쭤봤다. 캐릭터 준비를 하다가 '감독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내 화술과 발성에 스탠다드한 느낌들이 있는데 왜 나영빈 역에 캐스팅 하셨나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체중 증량, 새로운 대사 훈련법 등을 연습하면서 매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겨 감독님께 SOS를 쳤는데, '맑은 이미지에서 비균질적인 지점들이 보일 때 나영빈으로서 뒷목을 딱 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하시더라."
-새로운 대사 훈련법은 어떻게 진행했나.
"가장 어렵고 고민이 많은 부분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화술과 발성은 좀 딱 떨어지는 딕션이다. 하지만 나영빈에게 어울리려면 대사를 좀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뱉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뱉는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나영빈이 처한 상황들을 시뮬레이션 하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그 과정에 상상하고 몰입하면서, 시나리오에 있는 실제 대사가 아닌, 내가 나영빈이라는 사람에 대해 파악한대로 막 대사를 뱉는 연습을 많이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영빈의 말, 욕이 될 수도 있고 신조어가 될 수도 있는 말들을 일단 막 터트리는 작업을 한 한달정도 했다. 그 후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들을 나영빈처럼 입에 붙여 나갔다. 이걸 '어떻게 느꼈다'고 표현하고 말씀 드려야 할지 잘 설명이 안 될 만큼 어느새 나영빈화 돼 나오는 지점들이 있었다. 나에게도 새로운 훈련법, 접근법이었기 때문에 어떤 만족보다는 그 새로움이 느껴졌다는 부분들이 영화를 보면서도 와 닿아 좋았다."
"믿었다. 진웅 선배는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마음껏 들어오라'고 열어주는 스타일이라 저 역시 선배를 믿고, '이 정도로 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달렸다. 진웅 선배 역시 저에게 스토리의 원동력이 되는 나영빈 캐릭터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면서 처음부터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평소 친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나영빈으로서, 배우 권율로서 선배에게도 새로운 모습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잘해냈다고 생각하나.
"최선은 다했다.(웃음) 내가 현장에서 진웅이 형한테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영화를 보면 핸드폰을 때려 부수는 장면이 있지 않나. 순간적으로 감정이 올라와 치고 또 치고 세게 치다가 손가락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피가 뚝뚝 흐르는데 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계속 연기를 했다. 나는 진웅이 형이 그 상황을 알면 '넌 바보같이 왜 그렇게 하냐'고 화를 낼 줄 알았다. 평소라면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땐 온전히 나를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걱정해주더라. '아, 이 형도 진짜 작품과 연기에 있어서는 언제나 진심이구나' 싶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고 살짝 찢어진 정도였다."
-캐릭터 성격과 설정 등으로 인해 예민해지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내가 촬영장에서 캐릭터간 심각한 대립신이 있을 땐 상대 배우들과 조금은 거리를 두는 편이다. 실제 성격이 예민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을 타거나 대화로 분위기를 깨지 않고 있다가 촬영하는 순간 집중해서 터뜨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중요한 신 촬영이 있는 날에는 일부러 상대 배우들과 대면하지 않으려고 하고 밥도 따로 먹으려고 했다. 그렇게 해도 배우 분들이 '쟤 유별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해해 주면서 격려하고 응원해 준다."
-'경관의 피'에서는 범죄자, '며느라기2'에서는 현실적 남편으로 상반된 캐릭터를 동시에 선보이게 됐다.
"배우로서는 기쁘다. 다양한 얼굴을 한꺼번에 보여 드릴 수 있으니까. 사실 '경관의 피'는 '며느라기' 시즌1을 찍기 전에 촬영을 진행한 작품인데 어쩌다보니 시즌2와 함께 공개되게 됐다. 저에게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다는 것을 봐 주셨으면 싶다. 시즌2에서는 남편이 좀 착해질 예정이기도 하다. 하하."
-브라운관, 스크린, OTT 할 것 없이 활발이 활동 중이다. K콘텐트에 대한 글로벌 관심도 높아진 시기다.
"일단 이런 날이 올 줄을 몰랐다. 어렸을 때, 대학교 1학년이었던 20살 때였는데, 벌써 21년 전이다. 한번은 어떤 선배에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할리우드 진출이 꿈'이라고 하시더라. 그땐 '아, 이 선배와 거리를 멀리 해야겠다. 사기꾼인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근데 이제는 반대로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누군가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할만한 시대가 왔다. 하하."
-직접 연기하고 보여지는 배우 입장에서도 남다르게 느끼는 감정이나 기대가 있을 것 같다.
"할리우드 진출을 떠나 우리 콘텐트 자체로 그들에게 보여질 수 있다는 시대 아닌가. 신기하고 놀랍고 진짜 꿈같다. 나 역시 당장의 해외 진출, 해외 콘텐트를 목표로 설정값을 두는 것이 아니라, K콘텐트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전세계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좋은 배우, 좋은 연기를 보여 줄 수 있게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기해야 할 때 아닌가 싶다. '많은 분들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더 많이 집중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왜 올림픽을 할 때도 온 나라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하듯이, 올림픽처럼 K콘텐트에 집중이 많이 되고 있는 만큼, '글로벌 관객을 맞을 준비를 따듯하고 치열하게 해야겠다'는 마음들이 하나하나 생긴다. 배우로서 동기 부여가 된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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