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乙을 위한 정책은 왜 만들기 어려운가

조용석 2022. 1. 1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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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작동 미진한 '원가변동 대금 조정' 하도급법
협상력 약한 中企, 대기업 선의 기대야..공정위 실책도 한몫
중기중앙회도 협상할 수 있게 법 개정..중소기업 우려는 여전
쉽지 않은 납품단가 연동제..공정위, 1년 내 명답 찾을수 있나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대표적 갑을관계법으로 꼽히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16조의2는 ‘공급원가의 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의 조정’에 관한 내용이다. 하도급업체(하청업체)는 원자재 등 공급원가 인상 시 대기업이 대부분인 원사업자와 협의해 대금을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조정 요청을 받은 원사업자는 10일 안에 개시해야 한다는 부분도 있다.

언뜻 보기에는 중소기업 대부분을 차지할 하청업체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해결해 줄 법안으로 보인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왼쪽)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2019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지난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범부처 합동 `공정경제 성과보고 대회`에 참석한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공개 발언에서 이 제도에 대해 “거래 단절 또는 보복 우려 등으로 활용이 미미하다”고 했다. 직전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중소기업 관련 문재인 정부 공정경제 추진성과로 `납품단가 조정의 실효성 강화`를 언급했던 뒤라 중기중앙회 지적은 더욱 아프게 들렸다.

중소기업이 하도급법 16조의2에 대해 `미미하다`라고 평가절하한 가장 큰 이유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원사업자는 요청을 받은 후 10일 내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조항 외에 디테일이 없다. 선의가 없는 원사업자라면 요청 받은 뒤 기간 내 협의를 한 번 하고 거절하면 끝이다. 대기업인 원사업자가 중소기업인 하청업체보다 정보력이나 협상력이 뛰어날 것은 자명하다. 또 대기업과 지속적인 거래가 필요한 중소기업이 계약 하나 제 값 받겠다고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 만큼 싸우기도 어렵다.

이 제도가 여전히 미미한 데는 소관 부처인 공정위 실책도 있다. 공정위는 중소기업 협상력을 강화하겠다며 2018년 하도급법을 개정, 조정 협상권자에 당사자인 하청업체뿐 아니라 중소기업협동조합도 할 수 있도록 했으나 작동하지 못했다. 협동조합 평균 직원 수가 3.2명에 불과해 영세한 탓이다. 심지어 2018년 7월 제도 도입 이후 한 번도 협동조합이 업체 대신 조정 협상에 나선 사례가 없다. 전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중소기업의 권익 보호 장치`로 이를 언급했던 점을 고려하면 초라한 정책이다.

공정위는 결국 지난해 말 하도급법을 재개정, 하도급대금 조정 협상권자에 중소기업 최대 단체인 중기중앙회도 포함하도록 했다. 중소기업 관련 연구 및 조사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표준원가센터를 운영하는 등 조정 협상에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바뀐 하도급법은 내년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하도급법 16조의2를 보는 중소기업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중기중앙회를 업었다고 한들 을(乙)인 자신들이 그 다음 거래가 끊길 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대기업과 함부로 싸울 수 있겠느냐는 푸념이다. 또 중기중앙회 또는 협회가 협상권자로 나설 수 있는 조건(원재료 소요 재료비 10% 이상 차지, 가격변동 10% 이상)도 너무 까다롭다는 불만도 있다.

중기중앙회가 요구하는 것은 납품단가 연동제다. 하지만 시장원리 훼손, 중소기업 혁신의지 약화 등 단점도 크다. 또 대기업이 국내보다 해외 하청업체와 더 많은 거래를 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2008년을 시작으로 선거철마다 등장하나 실현한 정부는 없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 이를 언급하고 있으나 실제 입법화 될 지는 또 두고 볼 일이다.

공정위는 하도급대금 조정 활성화를 위해 중기중앙회 등과 논의를 시작했다. 표준계약서에 관련 내용을 담고 대기업의 적극 참여 유도를 위해 공정거래협약평가 평가요소로 넣는 등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대금 조정협상에 과한 강제력을 부여하면 시장경제가 망가지고, 너무 놓으면 중소기업이 무너진다.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을을 위한 정책은 항상 어렵다. 공정위는 새 하도급법이 시행되는 내년 1월 전에 명답을 찾을 수 있을까.

조용석 (chojur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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