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이란 무엇인가

한겨레 2022. 1. 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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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씨가 지난해 11월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기고] 윤지영 | 변호사

고백하자면, 저는 김수억이라는 사람을 경계했습니다. 지인들의 입에 김수억이라는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는데, 이야기 속의 그는 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 현장에 있었습니다. 단식을 했고, 연행되었고, 고난의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격할 거라 생각했던 그는 반듯하고 예의가 발랐습니다. 투사의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든, 순수하고 선량한 청년이 제 앞에 있었습니다.

그런 김수억이 형사사건에서 5년을 구형받고(지난해 11월30일) 현재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대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농성을 하고 청와대 행진 도중 길을 막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17명도 김수억과 같이 기소되었습니다. 그 17명 중 아는 사람이 여럿인데 모두 김수억처럼 선량한 사람들입니다. 직업병이 발동한 저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형벌이란 무엇인가. 이런 사람을 벌하여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응보형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범죄는 악행이므로 범죄를 행한 자에게 그 범죄 행위에 상응하는 고통을 가하는 것이 바로 형벌이다. 목적형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본보기를 보여 혼내줌으로써 일반인의 규범의식을 강화하고, 장래의 범죄를 예방하는 것, 동시에 범죄인을 교육하여 다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는 것이 형벌이다. 다수의 형법학자들은 응보형과 목적형 둘 다의 성격을 가진 것이 형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현대·기아차는 파견법을 위반하였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둔갑시켰습니다. 대법원 판결로 현대·기아차의 범죄 사실이 드러났지만 고용노동부도, 검찰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역할을 방기한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낸 것이 악행인가요? 김수억은 도대체 누구에게, 무엇에 해를 끼친 것일까요. 농성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불편을 입었더라도 이것이 5년의 징역형을 구형할 이유가 될까요.

그를 감옥에 보내고 교화를 하면 달라질까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싸운 일을 후회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반성할까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정반대겠지요. 감옥에서 돌아온 뒤에도 김수억은 계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곁에 있을 겁니다. 그는 내내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기아차처럼 범죄를 저질러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구나. 법을 어겨도 되는 것이구나. 이 정부는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아이러니하게도 김수억을 감옥에 보내면, 형벌이 추구하는 목적과 정반대의 효과만 생기는 셈입니다.

사실 김수억은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게 해달라고, 규칙을 어겨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외침을 들여다보면, 결국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현대·기아차는 죗값을 받아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불법적인 상태를 비호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헌법 7조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싸운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멈추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이 정부가 현대·기아차로 하여금 법을 지키도록 하고 힘없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헌법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법관은 법률뿐만 아니라 헌법도 판단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무집행방해죄, 일반교통방해죄 이런 법률 규정도 중요하지만 노동의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공무원의 의무와 책임을 정한 헌법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법원이 권력 대신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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