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을 돌려도 다 보이는 나

한겨레 2022. 1. 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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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요즘엔 엠비티아이(MBTI·마이어스 브리그스 유형 지표) 검사로 성격 유형을 분류해볼 수는 있다.

지인 중 한 분은 평생 자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엠비티아이 결과를 보니 뜻밖에도 외향성이 70% 이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부르주아가 생애 마지막 몇년간 작업한 종이그림 '내면으로' 연작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하나의 그림 속에는 화가 한 사람의 시선뿐 아니라 화가를 역방향에서 지켜보는 다른 시선도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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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루이즈 부르주아, <내면으로 #4 (나는 너를 본다!!!)>, 2007, 종이에 에칭, 151.1×61.9㎝, ⓒThe Easton Foundation, 국제갤러리, 서울

[크리틱]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요즘엔 엠비티아이(MBTI·마이어스 브리그스 유형 지표) 검사로 성격 유형을 분류해볼 수는 있다. 과거에는 재미 삼아 혈액형에 따른 성격을 대화의 주제로 삼곤 했는데, 몇년 전부터는 엠비티아이가 강세가 되어 심지어 취업자 면접심사에서도 활용된다고 들었다. 주어진 질문지를 풀면,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 경험으로 이해하는가 아니면 직관적인가, 생각이 지배적이냐 느낌이 우선이냐, 매사 계획적인가 아니면 상황에 적응하는 편인가 등 4개의 영역에서 하나씩 추려진 성격의 조합(총 16가지)이 탄생한다.

이 중 내향성과 외향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오해하는 면이 있다. 차분하고 들뜬 기질의 차이가 아니라, 당사자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핵심이 있다. 지인 중 한 분은 평생 자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엠비티아이 결과를 보니 뜻밖에도 외향성이 70% 이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소심하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긴다고 무조건 내향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에서 삶의 진면모를 찾는 사람이라면 외향성이 클 것이고, 주로 자기탐색을 통해 일상의 해답을 구하는 편이라면 내향성 수치가 높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년기에서 노년기까지 생애의 시기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대처 방식에 따라 내향성과 외향성의 비율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인생의 특정 시기에 자기 삶을 안쪽으로 돌아보며 집중적으로 내면을 향하기도 한다.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였던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가 그랬다. 부르주아는 70년 넘게 거의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9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최고의 미술가에게 주어지는 황금사자상을 받는 등 각종 수상의 경력을 가진 영향력 있는 미술가다. 부르주아가 생애 마지막 몇년간 작업한 종이그림 ‘내면으로’ 연작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전시작 중에서 ‘나는 너를 본다!!!’가 부제로 붙은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명상에서 우러나온 그림인 듯, 심지어 종교적인 체험에도 비견될 만했다. 길쭉한 화면 가득히 진주목걸이를 걸친 여인의 뒤태가 그려져 있는데, 등을 돌리고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천만에. 머리와 몸 안에 수십개의 눈들이 번득이고 있다.

그림을 보면서 여성 감독 셀린 시아마가 만든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대사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앉은 자리로 와서 봐요. 당신이 나를 볼 때 난 누구를 보겠어요?”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선 모델이 화가에게 던지는 말이다. 그림을 그릴 때 화가만 일방적으로 모델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델도 화가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그림 속에는 화가 한 사람의 시선뿐 아니라 화가를 역방향에서 지켜보는 다른 시선도 숨어 있다. 그것은 모델의 눈일 수도 있고, 스스로를 향한 내면의 눈일 수도 있다. 그림이 종종 인생에 비유되는 이유는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들이 시선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갓 스무살이 넘었을 무렵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는 아프고 행복하지 못한 여인,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체념한 측은한 인생으로 딸의 기억을 오래도록 차지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의 작품에는 어머니 상실에 대한 슬픔과 어머니를 쓸쓸한 죽음으로 방치한 아버지를 향한 미움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아흔에 가까워서야 작가는 어둠 속을 눈먼 상태로 방황하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며 살필 수 있게 됐다. ‘나는 너를 본다!!!’에 3개 연속 붙어 있는 느낌표는 마음의 응어리를 걷어내고 드디어 온몸의 눈을 뜨게 됐다는 기쁨의 부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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