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체인 선제타격', 김정은이 웃는다

한겨레 2022. 1. 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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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11일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하셨다”고 12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우리나라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을 제압하는 킬체인 개념이 처음 출현한 것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던 이명박 정부에서였다. 새로 부임한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서둘러 북한 핵 대응 개념을 만들라고 지시하여 국방부 실무진이 급조해 만든 개념이다. 통상 적의 미사일 공격은 ‘준비→발사→상승→하강’ 단계로 이어지는데 발사보다 왼편에 있는 준비 단계의 징후를 파악하고 미리 제압해버리는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 능력이 킬체인의 핵심이다. 탐지해서 제압하기까지 30분 안에 끝내는 걸 목표로 하는 선제타격 개념이다.

당시 합동참모본부는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아 실현 불가능한 개념을 채택하면 군 전력이 크게 왜곡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국민에게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에 밀려 국방부는 킬체인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해버렸다. 이후 한국군은 정찰위성과 미사일을 확보하여 그 능력을 보유하겠다는 계획을 계속 발전시켜오고 있지만 아직도 완성되려면 멀었다. 지난 5일 북한이 발사한 원뿔형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해서도 우리 군은 속도와 비행궤적, 탄두 종류 등 어느 것도 분석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가 기술 자료도 없는 상황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이 아니라 탄도미사일”이라며 북한의 발사체를 폄하하자, 이에 발끈한 북한은 11일 진짜 극초음속 발사체와 비슷한 또 다른 미사일을 발사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 기술의 한계다.

킬체인 개념을 근거로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북한이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미사일을 발사하면 공중 방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제타격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 후보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2010년에 나온 킬체인 개념은 북한의 주력 미사일이 ‘액체연료’와 ‘고정식 발사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미사일은 ‘이동식 발사대’에서도 쏠 수 있는 ‘고체연료’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이미 노출된 군사기지에서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액체연료를 주입해서 미사일을 쏘는 재래식 공격 방식을 폐기한 지 오래다. 남쪽 정보자산으로 북한 미사일이 어디서 발사될지 파악하기 어렵고, 연료 주입이라는 준비 단계를 필요로 하는 액체연료 방식의 미사일이 아니라면 킬체인은 소용이 없다. 액체연료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5일 새로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앰풀화된 연료”를 실험했다고 발표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북한의 미사일을 ‘발사의 왼편’에서 탐지한다는 사고방식은 참으로 낭만적이고 순진하다고 할 것이다.

최근 합참의 소장파 장군들과 대화해보면, 북한 미사일의 준비 단계가 생략되고 있는 만큼 킬체인은 한물간 개념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미국도 기존의 킬체인이 아니라 ‘킬웹(Kill-Web)’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수백개의 저궤도 군집 위성과 대용량의 데이터 통신, 적의 미사일 발사대를 추적하여 격파하는 자율 무기 등으로 구성된 미래의 전쟁 수행 능력이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인물이라면 북한 선제타격을 언급하기에 앞서 무슨 수단과 방법으로 어떤 표적을 타격하겠다는 것인지, 군이 준비를 갖출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효과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정도는 사전에 검토하는 성실성은 갖추어야 할 것 아닌가.

말만 앞세우는 대북 강경 발언은 듣기에 시원하고 표를 모으는 데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 어떤 진정성도 확인할 수 없고 실체도 없는 안보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런 말이 남한 정치 지도자의 민낯과 수준을 드러냄으로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미소 짓게 할 것이다. 예전의 한반도는 남과 북이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 두는 고정된 바둑판이었다면 지금은 바둑판 자체가 움직이는 모바일 전장이다. 북한의 군사기지와 비행장을 아무리 폭격해도 무고한 사람만 살상할 뿐이지 전쟁의 양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전직 군 장성과 안보 전문가들이 즐비한 윤석열 캠프에서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 아닌가. 구닥다리 군사 개념을 소환해 그것이 마치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것처럼 호도한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행태가 아닌지, 윤 후보와 국민의힘은 제대로 성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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