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이륙 금지'가 쏘아올린 美 대북제재.."북한이 변해야"

이정민 2022. 1. 1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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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현지 시각) 미국 국무부의 브리핑은 최근 몇 달간의 브리핑 가운데 북한과 관련된 질문과 답변이 가장 길게 오간 날이었습니다. 북한이 1,000km를 날아간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이를 극초음속미사일이라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입니다.

일주일 전 북한이 같은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사실을 밝혔을 때도 별다른 질문이 없었던 미국 기자들이 갑자기 북한에 대해 관심을 보이게 된 건 북한 때문이 아닌 미국의 움직임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당일(11일) 나왔던 미국 연방항공국(FAA)의 조치가 그것입니다.

■ 항공기 '이륙 금지'해놓고 사유 설명 없어…北 미사일, 본토 위협으로 봤나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인 1월 11일 2시 30분쯤 미국 연방항공국은 미국 서부 해안의 일부 공항에 일시적으로 '이륙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예외적인 조치이기도 하지만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갑자기 항공기를 띄우지 말라고 하니, 해당 공항들의 관제탑이 분주해졌습니다.

해당 시간의 일부 교신 내용이 이후 언론들을 통해 육성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버뱅크 공항 항공관제(ATC):
"일종의 국가 안보 위협이 진행 중으로, 지금 이 순간 이 지역에서 항공기가 기동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샌디에이고 공항 교신 내용:
조종사: 이륙 금지(ground stop)는 무엇 때문인가요?
관제탑: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전국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오레건 힐스보로 공항:
조종사: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관제탑: "우리는 그 내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방금 통지를 받았습니다."

- 미국 ABC 뉴스가 11일(현지 시각) 공개한 공항 교신록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각과 '이륙 금지' 명령 시간이 맞물리다 보니, 공항에 전달된 '국가 안보 위협'이 북한의 미사일과 연관이 있다는 의구심이 확산됐습니다. 만약 맞다면 명령을 내린 연방항공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미국 본토 혹은 인근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위협으로 평가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해온 "미국 국민이나 영토, 동맹국에 당장의 위협은 아니다"라는 말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했고, 북한이 이번에 쏜 미사일의 사거리인 1,000km보다 열 배는 더 날아야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미 연방항공국은 "예방 차원에서 서부 해안 일부 공항의 항공기 출발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고 해명을 내놨지만 무엇을 예방하려 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입장에 이어 서부 공항의 '이륙 금지' 명령의 사실 여부를 브리핑에서 질문하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5분간의 이륙 정지가 있었다.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 조치"라고 답변하면서도 조치의 이유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 정부 어느 편에서도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은 셈입니다.

■ '이륙 금지'에 높아진 北 미사일 관심…바이든 정부 첫 제재

오랜만에 대부분의 미국 매체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이륙 금지' 조치와 엮어서 보도한 다음 날(12일), 미국은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북한에 대한 신속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말 뿐 물리적 조치는 취하지 않던 바이든 정부의 첫 조치였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한 미국 재무부 홈페이지


타국에 대한 제재를 다루는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이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관여한 북한인 6명과 러시아인 1명, 러시아 단체 1곳을 제재 대상에 올렸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블링컨 국무장관이 직접 대북 성명을 내고 제재 사유를 일일이 설명하며 북한의 지속적 핵확산 활동에 대한 미국의 심각한 우려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처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문도 두드렸습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안보리에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추가 제재를 요구했다면서 북한이 2021년 9월 이후 발사한 탄도미사일 6발을 모두 문제삼았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 여부가 관건이겠지만, 북한의 향후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제재를 중심으로 대처할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유엔 대북 제재’ 제안한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 트위터


■ 대화·외교 추진한다지만…'오래 걸릴 것' 털어놓은 美 국무부 대변인

미국 국무부 브리핑에서 기자들은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개발이 위협이 되고 있는데도 기존 정책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대화와 외교'를 거듭 언급해온 미국 대북 정책이 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외교와 대화만이 이 문제를 풀 유일한 방법"이라는 기존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제약을 가할 조치를 계속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화와 제재를 병행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당장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이 달리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라고도 했습니다.

"북한은 지금 코로나19, 가난 등 여러모로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이고 "이런 문제들이 개선되려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대화와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미국의 정책은) 북한이 대화에 참여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대화의 문은 열어놓겠지만, 북한이 먼저 변하고 손 내밀어야 한다는 걸 에둘러 말한 셈입니다.

진지한 외교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진전을 위한 유일한 방법일 거라면서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사도 표했습니다. "(외교는) 진행이 더딜 수 있다"며 "어떤 정권이든 몇 달 만에 풀 수 있는 과제가 아니며, 여러 행정부에 걸쳐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축적돼 온 도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


■ '중·러 억제 방해 마라' 제재 서둘렀지만…효과는 '미지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한 연쇄 회담을 치르고 있고,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하며 중국과의 신경전도 벌이는 등 몸과 마음이 바쁜 미국으로서는 근본적인 북한 문제 해결보다는 미봉책이더라도 제재를 통해 북한을 일단 자제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일주일 새 도발에 바이든 정부가 처음으로 칼을 빼 든 이유입니다.

하지만 제재의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올해도 국방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했고, 이미 수년, 수십 년간의 제재를 견뎌온 북한이 제재로 태도를 바꿀 거라고 기대하는 전문가도 거의 없습니다. 도발과 제재가 반복되며 수위만 높아지는 상황이 될 것이 오히려 더 유력합니다.

어쨌든 대화도 추진하겠다는 미국이지만, 도발과 제재의 핑퐁 게임을 반복하다보면 대화의 동력을 찾기도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정부가 애써 추진해왔던 종전선언도 한 발짝 더 멀어지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국무부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질문도 나왔지만 명확한 답변은 이번에도 없었습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미국은 대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안정을 위한 외교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에 전념하고 있다. 동맹, 파트너와의 긴밀한 조정과 협의를 통해 외교에 기꺼이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기존에 밝혔던 원론적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그래픽: 김현수 서혜영

이정민 기자 (ma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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