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수장고형 실험 미술관'..화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이한나 2022. 1. 1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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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올해의 작가
설치미술가 이주요
'러브유어 디포' 실현
미술작가들 열정 담긴
작품도 보관료 등 경제논리로
폐기되는 현실 풍자
'미술품 구하기' 프로젝트
서울 강남구 수서동 궁마을 공원에 설치된 이주요 작가의 `러브유어디포`프로젝트 수장고형 미술관 `턴 디포`뒤로 영상박스 겸 작업실 `언더 디포`가 보인다 [사진 제공 = 팀디포]
서울 강남구 수서동 궁마을 공원에 설치된 이주요 작가의 `러브유어디포`프로젝트 수장고형 미술관 `턴 디포`뒤로 영상박스 겸 작업실 `언더 디포`가 보인다 [사진 제공 = 팀디포]
동네 공원에 UFO(미확인 비행물체)가 상륙했다.

서울 강남구 수서역에서 1㎞남짓 걸으면 나오는 궁마을공원. 넓은 녹지 공간 속에 주변 풍경을 흡수하며 거울처럼 빛나는, 알루미늄 박스가 한쌍 나타난다.

미끈한 철재 가건물 '턴 디포'에는 아이와 어른의 키 높이에 딱 맞게 유리창이 2개 뚫려 있다. 액자같은 창을 통해 내부를 둘러보니 거대한 3층 철재 선반에 흙으로 빚은 거대한 귀와 손,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해괴한 조형물, 검은 낙서가 쓰여진 배구공 등이 거대한 추상화와 함께 진열돼 있다.

게다가 이 선반이 안에서 아주 서서히 바닥이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5분쯤 지나면 처음 위치로 되돌아온다. 창문 옆에 '러브 유어 디포'라는 제목과 함께 참여한 작가들 이름이 함께 나열돼 있다. QR코드와 함께 안내된 홈페이지로 들어가니 홍승혜·정지현·임민욱 등 개별 작가 30여명에 대한 소개 화면이 좌르륵 뜬다.

턴디포 안에 전시를 마쳤거나 혹은 전시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폐기 위기에 놓인 청년작가들의 실험작품이 진열돼 있고 관람객이 바라보면 안에서 자동 회전해 전체 작품을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팀 디포]
'턴 디포'안에 보관돼 전시되는 실험예술작품
이곳에서 열댓 걸음 남짓 걸어가면 영상작업이 틀어져 나오는 영상 박스 겸 작업실 '언더 디포'도 나온다. 이 프로젝트 컨텐츠를 관리하는 그룹 팀 디포 아티스트들이 지하 작업실 공간에 숨어서 전시와 관련된 영상 작업을 생산해 꾸준히 온라인 세상에 퍼뜨린다.

지난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설치미술작가 이주요의 작품 '러브 유어 디포'가 현실계에 등장했다. '강남 파빌리온'이란 이름을 달고서.

이 설치작품은 '전시 이후의 작품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미술 창고시스템이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동시대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설치하고 보관하는 수장고 형식의 이동형 전시를 컨테이너 없이 전시한 적이 있었다. 시장 논리로는 도저히 가치가 매겨지지 않지만 예술 창작 활동 과정에서 생산되는 예술작품을 생애주기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한 참신함이 돋보였다.

'턴 디포' 창을 통해 보관되고 전시되는 실험예술작품
이 프로젝트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재난지원금과 서울시 예산, 강남문화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게 됐다. 보관 작품은 주기적으로 교체되면서 3년간 설치될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MOMA 큐레이터들도 이 요상한 전시장과 청년작가들 전시 작품을 보기 위해 지난 11월에 코로나 방역을 뚫고 방한했을 정도다.
'턴 디포' 창을 통해 보관된 실험예술작품을 주민이 바라보고 있다.
1조원을 바라볼 정도로 국내 미술품 거래 시장이 급팽창했지만, '팔리지 않는' 혹은 '돈이 안되는' 실험적 예술을 창작하는 작가들에게는 딴 세상 얘기다. 이들이 창작의 결과물을 미술관 전시장에서 반짝 선보일 수도 있지만 불과 몇주, 길어야 몇달 전시가 끝나면 폐기물 신세다. 작가는 미술작품의 생사여탈과 가치판단을 시장 논리가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다뤄보자는 문제제기를 던지는 취지라고 전했다. 수장고형 이동식 미술관 개념이 나온 배경이다.

외관은 무엇보다 컨테이너 재질이 특수 알루미늄으로 외관이 고급스럽고 반사가 잘돼 신묘하다. 프랑스 폐광도시인 랑스에 자리잡은 루브르미술관 분관 건축물과 동일한 재질이라 한다. 건축사사무소 사이시옷이 설계와 진행을 맡았다. 특히 해질 무렵 가보면 주변 풍경을 품으면서 마치 마술처럼 사라지는 것 같은 착시 효과도 자아낸다. 주민들 관심이 없다면 곧 사라질 미술 작품을 보관하고 있다는 위급성을 상기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궁마을 공원에 설치된 이주요 작가의 `러브유어디포`프로젝트 수장고형 미술관 `턴 디포`뒤로 영상박스 겸 작업실 `언더 디포`가 보인다 [사진 제공 = 팀디포]
특이한 미술 현장을 접한 주민들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한 할머니는 턴디포 창고 안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아주 천천히 언더디포 영상을 보다가 자리를 뜨기도 한다. 또 산책 나온 주민이 어떤 공간인지 궁금해 하자, 지나가던 다른 주민이 설명해주거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들어가지도 못하는 미술관을 만들었다고 성내는 할아버지도 있다.
궁마을 공원에 설치된 이주요 작가의 `러브유어디포`프로젝트 수장고형 미술관 `턴 디포`뒤로 영상박스 겸 작업실 `언더 디포`가 보인다. [사진 제공 = 팀디포]
이주요 작가는 "작가들이 자신의 자식들과도 같은 작업들을 보관할 곳도 없어서 폐기하는 현실이 안타까와 '폐기를 유예한다'는 개념으로 구상했다"며 "비엔날레형 작가들의 새로운 예술 실험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고 일종의 유기체처럼 젖어들고 싶어서 주거단지 인근에 설치했다. 인근에 강남 최대 규모 유치원이 있어서 날이 풀이면 어린이 대상 인형극도 주요 컨텐츠로 소개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참신한 전시 아이디어는 주변 관심이 커지면서 아이디어 특허출원 과정도 밟고 있다.

현대미술 평론가 조혜옥 박사는 "미술 작가들의 고민과 미술계 핵심적인 문제를 도발적으로 던졌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있는 작업이다"라며 "공공예술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도 공간 설치 자체보다는 향후 유지·관리에 관심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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