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의 연극'..현대인의 우울 고독 초현실적으로 표현

이한나 2022. 1. 1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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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회화 전통 계승한
대표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
폐기종에도 코로나시대 맹활약
설치까지 총망라 아시아 최대 전시
대자연 속 인간의 어리석음
꾸짖는 신작 시리즈 첫선 보여
세밀한 연출로 직관적 공감 끌어내
3부 고전 현대적 초원전경
단 한 컷으로 연출된 연극

원시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거대한 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인간이라는 낯선 존재들이 눈에 거슬린다. 보트에는 검은 차도르로 얼굴만 드러낸 딸과 니캅으로 눈만 보이는 엄마가 명품 브랜드의 가죽 가방과 트렁크를 들고 있다. 온몸이 문신으로 가득한 뱃사공이 그들을 어딘가로 나르고 있다.

Im-Wald_Auf-dem-See_2020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 어윈 올라프(62)의 2020년 사진 작품 'Auf dem See(호수에서)'이다. 코로나19이후 시작한 'Im Wald(숲속에서)'연작이다. 기후변화와 생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본격 펼치면서 대자연 속에서 가장 부자연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대비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어윈 올라프 개인전이 수원 행궁 옆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전관에서 3월 20일까지 열린다. 한국-네덜란드 수교 60주년 기념전 '어윈 올라프: 완전한 순간-불완전한 세계'에서 올라프 작품 110여점을 선보인다.

미디어룸 전경
올라프는 2011년 네덜란드 정부의 예술상인 요하네스 베르메르상을 받으며 국가대표급 작가 반열에 올랐다. 실제 회화같은 사진으로 유명한 올라프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작가 베르메르처럼 빛을 탐구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평가받는다.
베를린
전시는 초반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인 라익스뮤지엄이 2019년 기획 전시한 '12인의 거장과 어윈 올라프'전을 재연한 특별섹션이 안내 역할을 한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영감을 준 이 미술관에 감사하며 지난 2018년 사진과 영상작품 500점을 기증했다. 라익스는 렘브란트와 한스 블론기르 등 소장 회화를 올라프의 사진과 나란히 걸어 작가들이 생각이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을 비교하며 보게끔 했다.
키홀(2012)
올라프는 저널리즘을 전공했지만 사진작가 커리어에 들어서면서 철저하게 계산된 장면을 설정하고 모델을 고용해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 본인도 스스로를 사진작가라기보다는 정지된 연극을 만드는 감독 같은 존재라고 인식한다고 밝힌 적 있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시대의 담론을 담는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 어윈 올라프의 대표작을 통해 그가 평생 추구해 온 완전한 순간과 불완전한 세계가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만우절(2020)
최근작 '만우절'연작은 본인이 삐에로같은 분장으로 직접 모델이 돼 코로나19이후 적막한 거리와 텅 빈 마트 등을 배경으로 연출했다.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현실을 초현실적 세계처럼 표현했다. 실제로 작가는 폐기종을 앓고 있어 코로나에 더욱 취약하다. 산소콧줄(nasal cannula)로 산소통과 함께 대자연 속을 이동하면서 작업을 했고 본인 자화상도 찍었다.

올라프는 "나는 작품의 심미적 측면에서 관람객을 매혹하는 것을 좋아한다. 관람객이 여기에 걸려들어 그 매력에 빠져들면, 그때 작품의 진짜 메시지로 그들을 단번에 사로잡아버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희망 5 (2005)
2007년작 '비탄(Grief)'연작 중 'Grace(그레이스)'는 성장한 여인 뒷모습에 꼭 쥔 손가락에서 슬픔을 참는 듯한 인물의 속마음이 전달되는 느낌이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본것과 비슷한 심상에 젖어든다.
팜스프링스전경
층간소음에 괴로워하는 이웃 3인3색을 담은 2005년작 '짜증나는(Annoyed)' 영상도 공감을 자아낸다. 고립된 개인들이 서로를 가해자로 의심하는듯한 시선이 흥미롭다.
Im-Wald_Portr_t-XI-A_2020
2012년 설치작품 'Keyhole(열쇠구멍)'도 관객 참여형이라 흥미롭다. 올라프의 사진들이 외부에 진열된 공간인데 문에 달린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면 사진 장면이 영상으로 천천히 전개된다. 마치 남의 집을 엿보는 은밀한 쾌감을 노린 것인데 그런 관람객들 모습은 또다른 관람객들에게 다시 관찰대상이 되는 관계 구조가 흥미롭다. 인간의 감정에 대해 집중하던 시절 작품을 발전시켰다.

도시 연작의 출발점이 된 '베를린'편은 적응 잘하는 어른같이 거만한 어린이와 무력화된 어른을 대비해 보여주는 장면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 관련 설치작업과 영상 작업물도 함께 소개됐고, 마지막에 작품 메이킹 영상을 통해 그의 섬세한 연출 과정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만 도시연작 중 상하이편 작품들이 서구인의 고정관념에 갇힌 시선으로 다뤄진 점은 아쉽다. 산소통을 안고서라도 서울에 오려 했었던 작가가 서울 연작을 작업할 날도 오길 기대해 본다. 미술관은 사전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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