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두번의 베이징올림픽이 바꾼 세계

박민희 2022. 1. 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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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2008년 8월8일 베이징 국가티위창(냐오차오)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개막 공연이 펼쳐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민희 | 논설위원

2008년 8월8일 오후 8시8분, 베이징올림픽의 막이 오르는 현장에 있었다. 한여름 밤,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지도자들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와 나란히 앉았다. 미-중이 ‘테러와의 전쟁’과 경제적 이익으로 긴밀하게 공조하는 ‘차이메리카’ 체제의 절정기였다.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개막 공연이 펼쳐졌다. <논어> 구절과 2008명이 함께 연주하는 웅장한 북소리로 시작한 공연은 중국 전통과 첨단기술을 결합해 ‘중국이 위대해졌다’고 선언하는 듯했다.

올림픽이 폐막하자마자, 미국 월가의 금융회사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고 미국과 전세계가 금융위기의 수렁에 빠졌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부양책으로 위기에서 가장 먼저 회복했다. 중국에선 ‘중국 모델이 미국 모델보다 우월하다’ ‘더 이상 미국에 배울 게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국주의의 침략을 겪은 아시아 국가 중국이 미국의 패권과는 다른 대안적 질서를 제시할 것으로 많은 이들이 기대했다.

금융위기 직후 집권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피벗 투 아시아’(아시아 회귀) 전략을 내놓고 중국 견제에 나섰다. 2009년 중국은 대만, 남중국해, 티베트, 신장 등을 외부에서 절대 개입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2010년 7월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국가들을 향해 “중국은 대국이고, 당신들은 소국이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호통쳤다.

중국 사회 내부에선 노동운동과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있었다. 극심한 불평등, 토지 몰수, 환경 오염에 항의하면서 약자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동안 ‘아래로부터 변화 요구’를 수용하고 타협하기도 하던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통치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점진적 정치 개혁’에 대한 암묵적 약속은 사라지고,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민간의 역할을 확대해가던 경제 분야에서도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하려는 세력이 주도권을 잡았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았다. 2009년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후진타오 주석의 소매를 잡아끌며 “중국에서 엔지오(비정부기구)들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당신네들한테 혁명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데이비드 샴보 <중국의 미래>)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합병하자 중국은 남중국해에 인공섬과 군사시설을 건설했다. 이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며 미국에 러시아의 ‘영향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 가능성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안보 위협이 되고, 국내 시민사회가 정권에 위협이 된다’는 불안을 공유하는 중-러의 ‘제국몽’이 세계 질서를 흔들고 있다.

2019년 6월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연 푸틴 대통령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첫번째 베이징올림픽이 거대한 격변의 출발점이 된 지 14년 만에, 다음달 4일 베이징겨울올림픽이 개막한다. 지난해 말, 중국공산당 역사상 3번째 ‘역사 결의’를 통과시켜 권력을 강화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강력한 중국’의 위상을 과시하고 올가을 20차 당대회에서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정통성 확보의 무대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올 한해 중국 지도부의 애국주의 동원과 사회 통제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주요 업적으로 선언한 ‘제로 코로나’(淸零)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도시 봉쇄와 관리들에 대한 ‘반부패’ 숙청이 계속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올 한해 내내 중국 견제의 강도를 높이면서 미-중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포위망은 안보, 첨단기술, 공급망 재편, 원자재 등 다양한 전선에서 점점 촘촘해지고 중국의 반격도 거세질 것이다.

올해 대선과 한-중 수교 30주년은 세계 질서의 격변 속에서 한국이 외교 전략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선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협력을 얻는 데 외교력을 과도하게 집중해온 대중국 외교의 변화가 필요하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안정을 우선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한국이 남북관계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얻는 데 매달릴수록 외교적 입지만 약화된다. 중국이 ‘내순환 전략’으로 경제 자력갱생의 요소를 강화해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지나친 중국 의존도를 줄일 대안 마련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 ‘한한령’이 풀리고 다시 중국에서 한류가 꽃피는 시기는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들과 연대해 격랑의 시대를 헤쳐가야 한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평화, 첨단기술과 공급망 재편, 인권과 민주주주의 향상을 위해 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책임하고 퇴행적인 ‘멸공’ ‘혐중’을 선동하는 이들에게 단호히 맞서면서도, 한국의 진보적 시민들이 강대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연대하고,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초심으로 중국을 다시 만나기를 희망한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고 대표단 구성은 계속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한국이 중국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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