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재즈 실력파 뮤지션의 만남, 몰토 콰르텟 "완전히 새로운 바흐 선보입니다"
[경향신문]
현악기 중 가장 낮은 음역대를 담당하는 악기, 바로 더블베이스다. 오케스트라 맨 뒷줄에서 저음부를 담당해 한 때 무대의 ‘조연’이란 인식이 강했던 악기다.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는 높이만 2m에 달하는 이 커다란 악기를 무대 한가운데 오롯이 세운 연주자다. 그의 등장 자체가 더블베이스 솔로 연주자가 드문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파란’이었다. 16세에 세계 3대 더블베이스 콩쿠르를 모두 석권했고, ‘뒷줄 악기’였던 더블베이스는 이 젊은 연주자와 함께 서서히 무대의 주인공으로 나왔다.
스포츠로 따지면 이른바 ‘비인기 종목’이었던 더블베이스를 대중에 알리고, 클래식·재즈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더블베이스 레퍼토리를 발굴해온 성민제가 새로운 앙상블 ‘몰토 콰르텟’을 결성했다. 두 대의 베이스(성민제·최진배)와 클라리넷(장종선), 피아노(이한얼)로 이뤄진 독특한 구성이다. 재즈와 클래식계의 쟁쟁한 실력파 뮤지션들이 합을 맞췄다. 이들이 내건 새 프로젝트의 이름은 ‘Recomposed(리컴포즈드)’. 클래식 음악의 ‘재해석’을 넘어 ‘재창조’하겠다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이들의 첫 번째 도전은, 바로크의 거장 바흐다.
“더블베이스와 클라리넷으로 바흐를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죠.”(최진배) 지난 7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몰토 콰르텟’ 멤버들은 오는 2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 ‘저스트 바흐’를 앞두고 설렘과 기대감을 드러냈다. 콘서트는 바흐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즈빈덴의 ‘바흐를 위한 오마주’ 베이스 무반주로 문을 연다. G선상의 아리아, 토카타,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 등 “1부는 바흐의 애피타이저 느낌의 음악으로 구성”(성민제)했다면, “메인 디시”는 2부 프로그램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바흐의 모든 예술성이 집대성된 이 대작을 더블베이스가 중심이 된 구성으로 탈바꿈했다.
전자음악도 차용했다. 이번 콘서트의 편곡을 맡은 재즈 베이시스트 최진배는 “바흐 음악은 베이스 라인이 정말 중요한데, 일렉 베이스로 전자 사운드를 가미해 베이스 라인이 좀 더 돋보이도록 했다”고 말했다. 일렉 베이스와 클래식 베이스의 사운드를 결합해 저음악기만 보여줄 수 있는 묵직한 특유의 음색을 담아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바흐 음악을 들을 때 와, 이건 재즈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화성이나 구조 면에서도 바흐는 모던 음악의 시작인 것 같아요. 곡 자체가 완벽하고 하나하나 버릴 수 없는 음표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리컴포즈드’하기 가장 어려움 음악이기도 하지만, 악상 기호가 없다는 점에선 뮤지션들이 각자의 해석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여지가 많은 음악가죠.”
바흐는 클래식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이지만, 더블베이스나 클라리넷을 위해 작곡된 곡이 없다는 일종의 ‘갈증’이 이번 작업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성민제는 “바흐의 첼로 모음곡은 저도 연주를 많이 했지만 원곡이 첼로 곡이다 보니 늘 아쉬움과 갈증이 있었다”며 “그런 갈증이 아예 바흐 음악을 재해석해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혼자보다 훌륭한 멤버들과 함께하면 더 시너지가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로크 음악의 특징에 현대적 요소를 융합하는 시도는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모토로 하는 독일의 음반사 ECM의 사운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2020년 ECM의 대표곡들을 연주하는 콘서트를 열기도 했던 재즈 피아니스트 이한얼은 “ECM은 클래시컬한 재즈, 현대음악도 다수 발표했던 레이블인데 여백이 많고 잔향이 많은 사운드가 우리의 음악 지향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즈 연주자 두 명,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걸어온 두 명이 뭉친 것도 이색적이다. 그간 여러 무대를 통해 호흡을 맞추며 음악적 견해가 잘 맞는 연주자들이 모였다고 한다. 성민제는 클라리네티스트 장종선과 독일 뮌헨에서 앙상블 ‘MUNIQUE’ 활동을 함께 했고, 재즈 피아니스트 이한얼과는 ‘클라츠밴드’로 연을 맺어 지난해 피아졸라 탄생 100주년 공연에 함께 했다. 역시 ‘클라츠밴드’에서 활동한 재즈 베이시스트 최진배와는 2인조 베이스 ‘KONTRAS2’를 통해서도 호흡을 맞춰왔다.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클라리네티스트 장종선은 “개인적으로도 음악적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흔쾌히 제안에 응했다”며 “서로의 음악적 색깔이 잘 드러나면서도 융합될 수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클래식을 바탕으로 재즈와 현대음악을 넘나들며 새로운 레퍼토리를 발굴해온 연주자답게 성민제는 “아주 새로운 바흐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서로 음악으로 치유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기존의 클래식 콰르텟에서 보기 힘든 밸런스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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