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여자가 무슨 축구냐' 라더니, 이젠 은퇴하지 말래요" [인터뷰]

이진주 기자 2022. 1. 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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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송파구여성축구단 주은정 주장, 김두선 감독, 임아현 선수(오른쪽부터)가 10일 서울 송파구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서 정기 연습에 앞서 축구공을 들어보이며 화이팅하고 있다. 송파구여성축구단은 2021년 열린 ‘생활체육 서울시민리그’와 ‘서울특별시 자치구 여성축구교실 왕중왕전’에서 우승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해 서울시민리그·자치구 여성축구 왕중왕전 2관왕…송파구여성축구단의 ‘뜨거운 겨울’

지난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구여성축구장에는 25명의 여성 선수들이 추운 날씨에도 힘찬 기합소리를 내며 날렵하게 그라운드를 뛰고 있었다. 이들은 송파구여성축구단 소속이다. 지난해 11월과 12월 각각 열린 ‘2021 생활체육 서울시민리그’와 ‘2021 서울특별시 자치구 여성축구교실 왕중왕전’에서 우승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 올해 개최되는 ‘전국 생활체육대축전’을 앞두고 축구단은 이날도 맹렬한 기세로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축구단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송파구에서 생활축구 활성화를 위해 1998년 창단했다.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여성 동호인축구팀의 탄생이다. 여성 축구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창단 초기에는 주로 운동에 관심이 있거나 운동선수 출신의 전업주부가 입단했지만 축구 경험은 전무했다.

창단 멤버이자 골키퍼를 맡고있는 주장 주은정씨(51) 역시 학창시절 유도선수로 활동했지만 축구에 대해선 잘 몰랐다. 모집공고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입단했다는 주씨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축구를 하겠다고 말하자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군대와 축구가 남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때였다.

“축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임신 8개월까지도 축구장으로 출근을 했죠. 출산 후엔 훈련시간마다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갈 정도로 푹 빠졌고요.”

축구단은 단장과 감독, 코치, 선수 등 총 30여명으로 꾸려져 있다. 매주 월·수·금 오전 10시에 축구장에 모여 약 2시간 동안 기본기 훈련과 전술훈련, 경기 등을 한다. 여성축구단으로는 유일하게 구에서 전용 축구장을 제공하고 있어 다른 축구단에 비해 안정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다. 유니폼과 운동용품 등 축구단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구에서 지원받고, 축구화나 전지훈련 비용은 개인이 일부 부담한다.

단원은 결원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모집하는데 학생 신분이 아닌 20세 이상 35세 이하의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기초체력이나 볼 컨트롤 등 기본적인 테스트를 거쳐 선발한다. 단원들은 평일 오전 훈련에 참석 가능한 전업주부나 파트타임,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5년 입단해 센터 포워드로 뛰고 있는 임아현씨(30)는 축구 심판으로 일하며 단원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한국체육대 재학시절 축구동아리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언니들처럼 나이 들어서도 축구를 하고싶어 입단을 결심했다”고 했다.

선수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돼 있다. 나이 차이가 스무살 이상 나는 경우도 흔하지만 서로를 언니 동생으로 부르며 격없이 지낸다.

임씨는 “운동할 때는 동료로서 언니들에게 많이 배우지만 운동이 끝난 뒤에는 자녀나 엄마의 입장에서 서로 고민을 나누고 의견을 구할 수 있는 점도 축구단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축구단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훈련을 이어갔다. 지난해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축구장 사용이 불가능했을 때는 코칭 스태프가 공유한 훈련 영상을 보며 개인적으로 훈련을 이어갈 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축구에 대한 애정과 노력으로 축구단은 창단 이래 우승 51회, 준우승 17회의 성적을 거두면서 여성축구팀으로선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999년부터 축구단을 맡아온 김두선 감독(51)은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를 잘 따라주고 감독은 선수들의 입장에서 훈련이나 모든 생활을 같이 하고 있다”며 “선수들끼리 서로 잘 챙겨주는 게 우리팀의 장점”이라고 했다.

올해로 창단 24주년을 맞는 축구단은 젊은 단원들이 늘면서 세대교체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뛰는 데 나이제한은 없지만 체력적인 한계와 함께 젊은 선수들이 좀 더 많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주씨는 “나이가 있으니까 은퇴를 하고 그만 쉴까 생각도 했는데 아이들이 ‘엄마는 (은퇴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응원을 하니 좀 더 뛰어야겠다”며 “60대에도 나갈 수 있는 여성 실버축구대회가 생겨서 더 나이 들어서도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축구 협회에 따르면 현재 협회에 등록된 여성 동호인축구팀은 전국 126개가 있다. 남성 동호인축구팀(2850개)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또 남성 축구팀의 경우 연령대에 따라 황금부(70대), 실버부(60대), 장년부(40~50대) 등으로 다양한 대회가 운영되지만 여성 축구팀은 실버대회가 아직까지 없다.

김 감독은 “여성축구는 남성축구보다 선수 수급이 어렵지만, 지금처럼 여성 축구선수들이 계속 배출되고 활성화된다면 실버축구대회도 먼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축구단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외쳤다.

김 감독은 “노련한 선배들과 젊은 선수들이 어우러져 기량 면에서는 지금이 최고”라며 “그동안 코로나로 대회가 많이 취소됐다. 올해 예정된 대회가 무사히 개최돼 선수들이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2021서울시여성축구교실왕중왕전’에서 송파구여성축구단이 우승해 2019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송파구 제공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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