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역할 떠맡았던 어머니.. 이젠 자식들 걱정 말고 쉬세요

기자 입력 2022. 1. 13. 15:10 수정 2022. 1. 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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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짧은 해가 진다.

마을 앞 언덕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10년 전 만 해도 50여 가구가 살던 작지 않은 마을이다.

교회를 지나 마을 길을 따라 어둠 속 어머니 집 근방을 더듬어본다.

마당에 서면 마을 한가운데 어머니 집 안방에 켜진 불빛부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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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김정선 (1937∼2021)

겨울 짧은 해가 진다. 만봉 씨 집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마을엔 하나둘 전등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마을 앞 언덕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10년 전 만 해도 50여 가구가 살던 작지 않은 마을이다. 해마다 빈집이 늘어나 지금은 10여 가구만 불빛이 보인다.

지난해만 해도 상혁이 할아버지와 임귀택 어른이 세상을 뜨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햇볕 좋은 가을날 아침. 마당에 호박 썰어 널어놓고 일상처럼 조용히 떠나셨다. 어디쯤일까? 벌써 아마득하다.

교회를 지나 마을 길을 따라 어둠 속 어머니 집 근방을 더듬어본다. 마당에 서면 마을 한가운데 어머니 집 안방에 켜진 불빛부터 찾았다. 빛이 보이지 않으면 가슴이 덜컹했다. 마음 졸이며 전화하고, 달려 내려가 얼굴을 봐야 했다. 아버지가 먼저 가신 지난 2년간 그랬다.

위아래 집 처녀·총각이 정분 났다. 보는 눈도 많고 양 집안에서도 반대할 것이 뻔했다. 둘은 이십 리를 걸어 황등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도망쳤다. 철없고 무모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배가 더 부르기 전에 서둘러 결혼식을 올려줬다. 어머니 나이 스물셋이었다.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막내 당숙, 시동생 8명과 함께 한집에 살았다. 딸은 막내 시동생과 젖을 나눠 먹여야 했다.

구루마(달구지)에 솥단지 하나, 밥그릇 두 개, 이불 한 채, 보리쌀 두 말 싣고 먼지 폴폴 나던 신작로를 따라 군산 궁멀로 재금나던(분가하던) 장면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가장 선명하고 신나는 기억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진짜 고생은 그때부터였다. 사 남매 굶기지 않고 공부시키기 위해 가리지 않고 일했다.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한 남편 대신 남정네의 일도 해내야 했다. 억척스럽고 욕심 많다는 애먼 소리도 들어야 했다.

아버지는 집안일에는 대체로 무관심했다. 아니 책임질 능력이 부족했다. 시집 식구들로부터 바람막이가 돼 주지도 못했다. 여윳돈이 조금만 생겨도 낭만적 소비를 해버려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 그 덕분에 자식들은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어린이신문도 정기구독했고 피아노며 바이올린도 배워봤다.

이제 어머니 집 창에는 다시 불이 켜지지 않는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커다란 짐을 내려놓고 자식들 걱정 안 해도 되는 곳으로 훌훌 떠나셨다. 삼베옷을 입고 누워계신 어머니가 너무 작아서 더 슬펐다. 마당 끝 어머니 아버지 계신 자리 잔설이 소복하다. 다시 봄이 오면 어머니가 엎드려 풀을 매던 마당에는 패랭이, 채송화, 봉숭아, 으아리, 수국, 철쭉 가득히 피어나겠다.

아들 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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