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을 만나러 가는 길 [그린피스 연속기고-류한범 항해사의 조금 특별한 남극 항해 ①]

강한들 기자 2022. 1. 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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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남극은 ‘펭귄의 땅’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날로 심각해지고, 남극의 얼음은 지구 온난화로 녹아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얼음이 녹고 있는 남극도 여전히 ‘펭귄의 땅’일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소속 류한범 항해사는 지난 6일 쇄빙선을 타고 남극으로 향했다. 남극에서 펭귄 개체 수, 취약한 해양 생태계를 조사할 예정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갈 수 없는 곳, 남극에서 전하는 류 항해사의 ‘조금 특별한 남극 항해’는 2주마다 한 차례씩 총 4회 시리즈로 연재된다.

①펭귄을 만나러 가는 길

유난히 흔들리는 비행기 창문 사이로 눈덮인 파타고니아 산맥이 보입니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풍경이 시야에 가까워질 때쯤, 스페인어로 유쾌하게 말하는 기장의 도착 방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아르헨티나 가장 남쪽의 작은 마을, 우수아이아에 착륙한 겁니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외부인의 이목을 끌기 위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듭니다. ‘I♥NY’ ‘I Amstradam’ ‘I Seoul you’ 등이 대표적이죠. 우수아이아에서는 ‘Fin del Mundo(핀델문도, 세상의 끝)’라는 문구가 저를 반깁니다. 남극 탐험가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 저도 남극으로 가기 전 마지막 육지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의 땅을 밟았습니다.

‘세상의 끝’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그린피스 제공


코로나19 팬데믹은 세상을 오가는 비행기와 배의 운항을 대폭 줄였습니다. 그린피스 역시 계획하고 있던 많은 항해들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2022년 새해를 시작으로 그린피스 쇄빙선 아틱선라이즈호는 다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속에서 남극을 서직지로 살아가는 펭귄과 해양 생태계 조사를 마냥 뒤로 미룰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3개월 만에 다시 승선한 아틱선라이즈호에는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선원들도 있었고, 새로운 얼굴들도 보였습니다. “헬로, 올라, 봉주르, 슬라맛, 불라, 안녕….” 배에는 15개국이 넘는 국적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붐빕니다. 2017년부터 그린피스 항해사로 일하며 선박의 독특한 문화와 다양성에 적응해 온 저는 자연스럽게 각 나라의 인사말로 안부를 주고 받았습니다.

비록 그린피스 쇄빙선에 모인 사람들의 국적과 인종은 다르지만, 마음 안에는 공통된 가치가 살아 숨쉽니다. 바로 ‘환경’과 ‘평화’죠. 사용하는 언어와 생김새는 달라도, 기후위기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막아내겠다는 의지만은 한 마음 한 뜻입니다.

남극으로 가는 길. 그린피스 제공


남극 대륙은 대한민국 영토의 142배에 달하는, 눈으로 덮인 땅덩어리입니다. 빙하가 끊임없이 깨지고 만들어지기를 반복하기에, 남극 항해는 멈춰있는 대륙 주위을 항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눈 덮인 남극대륙을 잘 살피며 시시각각 변하는 얼음에 관한 정보를 쉬지 않고 항로에 적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항로를 계획하며 과학자들이 원하는 지역을 찾기란 마치 ‘사막에서 바늘찾아 실로 꿰기’처럼 어렵습니다.

때로는 열심히 계획한 항로가 ‘블리자드’라 불리는 강력한 눈보라 한방으로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기도 합니다.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모래성 쌓기’ 같은 남극 항해. 언제 어떤 비상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니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수입니다.

출항 전, 배에 오른 모든 이들은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가 되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준비합니다. 제가 열심히 항로를 계획하는 사이, 기관사는 엔진을, 통신장은 위성통신과 컴퓨터를 점검합니다. 약 두 달간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냉장고를 가득 채우는 주방장, 잠수함 등 장비를 점검하는 과학자들, 각종 전략을 짜는 해양 캠페이너들까지 모두 긴장 반, 설렘 반으로 각자의 준비를 마칩니다.

2022년 1월 6일, “펭귄이 있는 남극으로 출항합니다.”라는 선장의 선언을 시작으로 마침내 작지만 강한 아틱선라이즈호의 힘찬 뱃고동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부두에 연결된 마지막 줄을 걷어 올리자, 기다리던 남극 항해가 시작됐습니다.

그린피스 쇄빙선 아틱 선라이즈호. 그린피스 제공


남극으로 가는 길은 예상대로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항로 길목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날씨가 나쁘기로 손꼽히는 드레이크 해협(Drake passage)을 통과하며 승선한 사람들 절반 이상이 며칠간 배 멀미를 심하게 겪었습니다. 하지만 남극에 닿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시간을 견뎌야 하죠. 며칠째 남쪽으로의 항해를 계속하자 배 주변으로 작은 얼음들이 떠다니기 시작했고 펭귄들이 뒤뚱거리며 수영하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드디어 저 멀리서 남극 대륙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해가 갈수록 남극 항해는 더 깊은 곳으로까지 항로가 열리고 있습니다. 물론 기술 진보의 영향도 있지만, 선배 항해사들이 쓴 항해록을 읽어보면 바닷길이 넓어지는 이유는 확실히 남극 얼음이 녹는 것과 관계가 깊습니다. 얼음이 녹으니 바닷길이 더 열리고 넓어지는 것이죠.

지구 온도를 버티지 못하고 녹은 남극 얼음은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 매년 3mm씩 해수면을 상승시킵니다. 해수면 상승은 곧 지구 생태계의 위협을 뜻하죠. 남극에 가까워질수록 설렘보다 걱정이 앞섭니다.‘현재 진행형’인 기후위기 속에서, 남극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류한범 그린피스 항해사. 2017년부터 그린피스 이등항해사로 활동하고 있다. 북극해, 대서양, 카리브해 등을 항해했으며 남극 항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구가 더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린피스 항해사가 됐다. 세계를 누비며 경험하는 항해 스토리를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fbgksqja)에 연재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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