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 물류센터의 비밀.. 사람이 200개 꺼낼 때, 로봇은 700개 꺼낸다

김지섭 기자 2022. 1. 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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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英 최대 온라인 식료품업체 오카도 CEO 루크 젠슨

코로나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으로 대면 활동이 위축되면서 ‘온라인 쇼핑’은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식료품은 ‘팬데믹 수혜’를 가장 많이 본 업종으로 꼽힌다. 본래 식료품은 “마트나 시장에서 직접 골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온라인화가 더딘 품목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식료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크게 낮아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 영국 최대 온라인 식료품 업체 오카도(Ocado)가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리테일 테크(Retail tech)’ 기업으로 떠올랐다. 오카도는 로봇과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머신러닝(기계학습) 등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온라인 식료품 주문을 빠르게 처리하면서도 신선도를 유지하고, 폐기율은 낮추는 혁신을 선도하는 업체다. 이런 기술력을 앞세워 다른 유통업체에 온라인 식료품 배송 전반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설루션(OSP)을 구축해주는 사업도 확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 최대 식료품 체인 크로거를 비롯해 캐나다 소베이, 일본 이온 등 8국의 9개 대형 유통업체가 오카도 설루션을 도입했다. 오카도의 IT 설루션 부문을 이끄는 루크 젠슨(Luke Jensen) 최고경영자(CEO)는 WEEKLY BIZ와 화상 인터뷰에서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식료품 시장이 급속도로 온라인화하고 있다”며 “식료품 매출이 여전히 매장에서 훨씬 많이 나온다는 생각에 온라인화를 소홀히 하는 유통 업체는 곧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최대 온라인 전문 식료품 업체 오카도가 자랑하는 자동화 물류센터 ‘CFC(Customer Fulfilment Center)’ 전경. AI(인공지능) 기반의 CFC에서는 면적에 따라 수백~수천 대의 로봇이 분주히 움직이며 주문 들어온 식료품을 자동으로 꺼낸다. /오카도

◇로봇·AI 기반 물류 자동화로 급성장

오카도는 2000년 영국에서 매장 없는 온라인 수퍼마켓으로 출발했다. 당시는 영국의 전체 식료품 매출에서 온라인의 비율이 0.5%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절이다. 팀 스타이너를 비롯해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던 창업자 3명은 식료품 시장이 가장 지출이 많은 영역인데도 온라인화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현실에서 기회를 봤다. 컨설팅업체 BCG 등을 거쳐 2017년 오카도에 합류한 젠슨 CEO는 “온라인 식료품 배송을 자동화할 수 있다면 엄청난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고 오카도는 유능한 기술 인력을 모아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매진했다”고 했다. 덕분에 오카도는 설립 10여년 만에 100년 역사의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 아스다에 이어 온라인 식료품 분야 매출이 세번째로 많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오카도의 작년 직원 수(1만8600명)는 온·오프라인 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테스코(영국 기준·31만9300명)와 아스다(16만5000명)와 비교하면 17분의 1, 9분의 1에 불과하다. 작년 기준 170억파운드(약 28조원)인 영국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오카도의 점유율은 13.3%에 달한다.

오카도 기술의 핵심은 넓은 부지에 바둑판 모양으로 상자들을 층층이 쌓아 올린 CFC(Customer Fulfilment Centre)라는 물류센터에 있다. 거대한 ‘벌집’과도 같은 CFC 꼭대기에서는 캐비닛 모양의 바퀴 달린 로봇 수백~수천대가 초속 4m로 격자 레일 위를 오가며 벌집 속 상자에서 분주하게 물건을 집어 올린다. 로봇 간 간격은 5㎜에 불과하고, 제어 시스템은 각 로봇과 초당 10회 통신하며 로봇이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 물품을 가져오도록 명령을 내린다. 젠슨 CEO는 “CFC는 21층까지 쌓을 수 있고, 로봇이 꺼내는 물품은 평균 (위에서) 1.3층에 있다”며 “아래에 있는 상자에서 꺼내야 할 때는 여러 대의 로봇이 협업한다”고 했다. 머신러닝으로 여러 상황을 학습한 로봇들은 박스를 한쪽으로 기울여 수월하게 물품을 집는 수준에 이르렀다. 젠슨 CEO는 “사람이 물건을 집어오는 물류센터는 AI 도움을 받더라도 1명이 시간당 최대 200품목을 꺼낼 수 있는데, CFC에선 700개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로봇의 생산성을 따라잡으려면 3.5명의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영국 온라인 식료품 시장 내 오카도 점유율

◇수요예측으로 폐기율 낮추고 작업 효율 향상

로봇이 집는 물품이 대부분 맨 위에 있는 이유는 철저한 수요예측으로 상자가 정확히 계산된 위치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젠슨 CEO는 “과거 판매 데이터, 계절·날씨와 같은 각종 변수 등을 고려해 AI가 특정 날짜에 딸기나 오렌지가 얼마나 팔릴지 최소 오차로 예측한다”며 “이에 맞춰 로봇은 입고 물품을 어느 위치에 넣을지 정하기 때문에 효율이 극대화되고,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상해서 버려야 하는 제품 비율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오카도의 폐기율은 0.4%(판매액 기준) 이하로 대형마트(3%), 편의점(12%)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오카도는 제품 포장 이후 트럭 짐칸의 어느 위치에 물품을 넣고, 어떤 경로로 이동해야 최단 시간 배송을 할 수 있는지 실시간 예측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오카도는 ‘수요예측→자동화 물류센터 구축→스마트 배송·배차 관리’로 이어지는 통합 설루션 사업을 2015년 출시했다. 2020년 매출(약 3조8000억원)의 4분의 1 정도가 IT 설루션 부문에서 나왔을 만큼 비율이 커졌다. 젠슨 CEO는 “현재 오카도가 만든 CFC가 12곳인데 수년 내 56곳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식료품 부문의 온라인화가 가장 빠른 나라로 꼽힌다. 지난 2019년 기준 미국과 영국의 식료품 부문 온라인화 비율은 각각 5%, 8%에 그치지만 한국은 15%에 달한다. 젠슨 CEO는 “한국의 온라인 배송 서비스 수준은 굉장히 높고, 한국 소비자들은 가공식품뿐 아니라 육류⋅어류⋅청과류 등 신선 식품도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는 데 익숙하다”며 3년 내에 식료품 30~40%가 온라인을 통해 판매될 것으로 전망했다.

오카도 IT 설루션 부문의 루크 젠슨 CEO가 WEEKLY BIZ와 화상 인터뷰하고 있다. /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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