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구찌', 가족끼리 왜 이래?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2022. 1. 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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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하우스 오브 구찌',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구찌스럽다!(It's so Gucci!)"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를 보면 밀레니얼 세대에게 '멋있다!'로 통용되는 이 말이 떠오른다. 할리우드의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과 명품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이 모여 구찌 일가의 파란만장한 순간들을 구찌스럽게 형상화했다. 지난해 100주년을 맞이했고 밀레니얼들이 열광하는 최고의 브랜드가 된 구찌를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지금 개봉한 건 매우 시의적절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사라 게이 포든의 논픽션 '하우스 오브 구찌'(2000) 접하고 영화화를 결심한 때가 2000년대 초반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안젤리나 졸리 주연으로 처음 제작을 추진한 시기는 2008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브랜드 구찌는 매출 하락을 겪는 위기였고 영화 프로젝트는 구찌 가문의 반대와 촬영 스케줄, 판권 문제 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드디어 2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영화는 구찌, 감독, 배우 모두의 이름값에 부응한다. 

그렇다고 구찌의 브랜드 성공 스토리를 다룬 영화라고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구찌 기업이 부침을 딛고 '남들'에 의해 재건되기 전까지 '구찌 왕조'를 자청하면서 여느 영화,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구찌 일가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가족극에 가깝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떠받치던 패밀리 비즈니스가 음모, 사기, 고발, 배신, 암살로  얼룩지면서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낱낱이 목격하게 된다. 사라 게이 포든의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구찌 가문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마지막 후계자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마우리치오와 전 부인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의 만남과 사랑, 결혼 생활과 파국을 맞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그리면서 패션 재벌들의 호화로운 생활과 가족 간의 이권 다툼을 흥미롭게 전개한다. 

'하우스 오브 구찌'의 상영시간은 무려 158분에 달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 작품들의 상영시간이 보통 두 시간을 훌쩍 넘기도 하고, 구찌 2세와 3세, 2대에 거친 이야기인 데다가 국내 출간된 동명 원작이 구찌 가족과 역사를 기술한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임을 감안하면 가족 서사의 걸작' '대부'의 패션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관건은 시간 운용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비주얼리스트 리들리 스콧은 86세 노장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연출 감각을 발휘한다. 구찌 계보를 최대한 간결하게 정비해 집중도를 높이고,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의 사랑 이야기를 부각해 대중 오락 영화의 친밀감으로 접근한다. 생일파티, 결혼식, 장례식 등 가족 행사와 의례 장면을 굵직하게 배치해 강약을 조절하고 사실을 묘사한 장면을 흑백 처리해 이야기의 명암을 조절한다. 상영시간을 가로지르는 배경음악의 향연도 즐거움이다. 칸초네, 디스코, 오페라, 하우스, 보사노바 등 장면에 맞춤 의상처럼 입힌 음악이 귀에 쏙쏙 새겨진다. 

'하우스 오브 구찌', 사진제공=유니버셜픽쳐스

완전체를 이룬 배우들의 이름은 한 명씩 되새겨야 한다. 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자레드 레토, 제레미 아이언스, 알 파치노. 이 영화가 10년 전에 만들어졌다면 이 중에서 몇 명의 이름이 없었을 텐데 최종 출연진들은 운명처럼 최상의 캐스팅을 이뤘다. 구찌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낸 주역이자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알도 구찌 역의 알 파치노와 캐스팅을 인지하지 못하고 본다면 감쪽같은 분장 탓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알아볼 수 없는 파올로 구찌 역의 자레드 레토는 부자 관계로 등장해 희화한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관록의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는 형 알도 구찌와 경쟁하는 동생 로돌포 구찌 역을 맡아 가족과 아들 마우리치오에게 집착하는 아버지이면서 배우 출신에 낭만적 성격을 가진 인물을 단 몇 번의 표정으로 단숨에 납득시킨다. 비극의 주인공 마우리치오 구찌를 연기한 아담 드라이버의 역할 비중은 예상보다 막중한데, 억압적인 아버지에게 상처받고 지나친 야심을 가진 아내를 외면하는 유약한 면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으로 보여 준다. 

전 남편을 청부 살인한 희대의 악녀, 레지아니 파트리치아 역의 레이디 가가는 외모와 연기 모두 기대 이상이다. 사랑을 쟁취하고 가족주의에 맞서는 당당하고 야심만만한 모습에 경도되게 만들었다가 허세에 빠지고 불안과 배신감, 복수심에 불타올라 파멸의 길을 택하는 한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유감없이 펼친다. 캐릭터와 혼연일체된 레이디 가가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값진 영화다. 오는 3월말 열릴 예정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 자격을 거뜬히 거머쥘 실력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 사진제공=유니버셜픽쳐스

'하우스 오브 구찌'에 등장하는 구찌 가족의 일원들은 레거시(유산)를 외친다. 그것을 지키는 방법은 각자의 성격, 스타일만큼이나 달랐다. 그들이 세운 패션 왕국을 파괴하는데 일조한 파트리치아를 제외하고 구찌의 역사 속 인물이 되어 사라졌다. 영화 마지막에 밝혀지는 등장인물들의 최후와 이후 구찌 기업의 행보는 막장 드라마의 인과응보쯤으로 정리하고 잊어버리기엔 호소력이 강하다. 지금의 구찌는 레거시를 발판 삼아 전통과 혁신의 공존을 이룬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핏줄의 전쟁이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탐욕과 악행은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것. 

'하우스 오브 구찌'는 패션에 대해 문외한이어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대중 영화다. 구찌 가족의 암투와 뒷이야기를 잘 몰라도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다. 가족 누아르, 범죄 스릴러, 패션 영화로 봐도 목적한 바를 달성하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구찌 가문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면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구찌 가족과 구찌 회사의 역사를 재구성한 원작 논픽션을 일독하길 추천한다. 영화에서 각색된 부분을 비교해 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거장 감독의 노련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띤 연기가 영화 보는 맛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영화계의 명품으로 탄생한 '하우스 오브 구찌'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에서 승전보를 울릴 3월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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