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이 많으면 양을 찾을 수가 없다

한겨레 입력 2022. 1. 13. 06:06 수정 2022. 1. 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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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법인스님의 대숲바람]도(道)와 술(術)
사진 픽사베이

다기망양(多岐亡羊)이라는 고사가 있다.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찾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열자』 「설부」편에 나오는 말이다. 부국강병이 국가의 절대적 목표였던 중국 전국시대, 개인의 주체와 존엄을 주장했던 철학자 양주가 있었다.

어느 날 양주의 이웃집에서 기르던 양 한 마리가 우리를 나와 달아났다. 그 이웃 사람은 자기 식구들을 모두 동원하여 양을 찾아나서느라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양주의 하인들을 청해 그것을 따라가게 했다. 양주가 말했다.

“어허!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어찌 쫓는 사람이 이리 많은가?”

이웃 사람이 말했다.

‘갈림길이 많습니다.“

얼마 후 양을 뒤쫓아갔던 사람들이 피곤한 기색으로 돌아왔는데 시무룩했다.

“양을 찾았느냐?”

“잃어버렸습니다”

“어째서 잃어버렸느냐?”

갈림길 가운데 또 갈림길이 있으므로 양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서 되돌아왔습니다.“

양주는 이 말을 듣고는 얼굴빛을 바꾸고 말하지도 웃지도 않으며 하루를 보냈다. <중략>

(이에 대해 양주의 제자 맹손양의 선배 심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의 생각은 이렇다네. 큰 길에는 갈림길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양을 잃었고, 학자는 방법이 많음으로 그 본성을 잃는다는 것이지. 학문의 근본은 본래 하나인데 그 끝은 이렇게 달라진다네. 그러므로 근본으로 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는 뜻이지.” -김원중, 『고사성어』, 183쪽, 글항아리.-

인간사회의 문명은 시간과 함께 거듭거듭 진화한다. 진화란 곧 다양한 길을 뜻한다. 두 발로 걷고 기껏해야 말을 타고 다니던 옛 시절의 교통과 달리, 지금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문명의 다양한 생산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하룻밤 자고 나면 신제품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곤 한다. 신구의 교체시간은 하도 빨라서 ‘신’이라는 말이 금새 ‘구’가 되고 마는 세상이다. 신기술, 신제품이 대량/다량으로 쏟아져나고, 그것들의 빠른 교체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인식된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괜스레 주눅이 든다. ‘진화’와 ‘다양성’이라는 갈림길이 갈수록 가지를 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문명의 도구들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거듭거듭 다종다양해지고 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좋아서 만들었을 것이고, 편리하다고 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하지 않으면 물건이 팔리지 않고 퇴보하고 몰락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이 문명의 진화라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자. 이제 디지털과 AI 등의 문명은 주류문화가 되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이를 트랜드라고 하며 거스릴 수 없는 대세라고 말한다. 충분히 그럴 것이다. 작정하고 문명의 이기를 청산하고 혼자 숨어살지 않고서는 이런 흐름에 따라야 한다. 간혹 보자니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들도 개인전화는 거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또 생각해보자. 첨단문명의 도구가 헤아리고 예측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자칫 ‘갈림길’에서 ‘양’을 찾지 못하는 형국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 ‘양’은 우리 시대에 무엇인가? 마음의 여유와 평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간, 일도 빛나고 삶도 빛나는 일상, 어느 존재도 소외와 배제가 없이 더불어 숲을 이루고 사는 삶,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할 ‘양’이 아닌가? 그러기에 답은 분명할 것이다. 늘 해답은 단순명료하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공존의 사회이고 문화일 것이다.

가상공간의 시대가 오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일상의 문화가 될 것이다. 이럴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무수한 갈림길은 미로가 되고 길에서 길을 잃는다.

이런 말이 있다. 마술사가 술법으로 호랑이를 만들었는데, 그 호랑이에게 마술사가 잡혀먹는다는 얘기이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테크놀로지라는 술법이 눈부시게 탄생한다. 그 술법에 우리의 삶이 속박당하지 않을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도는 없고 술만 기세를 부리는 시대를 경계해야하는 오늘이다. 도가 빛나고 술도 빛나는 길! 그 길은 도를 잃지 않는 일에서 시작한다. 도를 빛나게 하기 위해 술이 있다. 명심하고 명심하자.

글 법인스님/실상사 한주&실상사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전 조계종 교육부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다기망양(多岐亡羊)이라는 고사가 있다.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찾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열자』 「설부」편에 나오는 말이다. 부국강병이 국가의 절대적 목표였던 중국 전국시대, 개인의 주체와 존엄을 주장했던 철학자 양주가 있었다.

어느 날 양주의 이웃집에서 기르던 양 한 마리가 우리를 나와 달아났다. 그 이웃 사람은 자기 식구들을 모두 동원하여 양을 찾아나서느라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양주의 하인들을 청해 그것을 따라가게 했다. 양주가 말했다.

“어허!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어찌 쫓는 사람이 이리 많은가?”

이웃 사람이 말했다.

‘갈림길이 많습니다.“

얼마 후 양을 뒤쫓아갔던 사람들이 피곤한 기색으로 돌아왔는데 시무룩했다.

“양을 찾았느냐?”

“잃어버렸습니다”

“어째서 잃어버렸느냐?”

갈림길 가운데 또 갈림길이 있으므로 양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서 되돌아왔습니다.“

양주는 이 말을 듣고는 얼굴빛을 바꾸고 말하지도 웃지도 않으며 하루를 보냈다. <중략>

(이에 대해 양주의 제자 맹손양의 선배 심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의 생각은 이렇다네. 큰 길에는 갈림길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양을 잃었고, 학자는 방법이 많음으로 그 본성을 잃는다는 것이지. 학문의 근본은 본래 하나인데 그 끝은 이렇게 달라진다네. 그러므로 근본으로 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는 뜻이지.” -김원중, 『고사성어』, 183쪽, 글항아리.-

인간사회의 문명은 시간과 함께 거듭거듭 진화한다. 진화란 곧 다양한 길을 뜻한다. 두 발로 걷고 기껏해야 말을 타고 다니던 옛 시절의 교통과 달리, 지금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문명의 다양한 생산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하룻밤 자고 나면 신제품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곤 한다. 신구의 교체시간은 하도 빨라서 ‘신’이라는 말이 금새 ‘구’가 되고 마는 세상이다. 신기술, 신제품이 대량/다량으로 쏟아져나고, 그것들의 빠른 교체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인식된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괜스레 주눅이 든다. ‘진화’와 ‘다양성’이라는 갈림길이 갈수록 가지를 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문명의 도구들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거듭거듭 다종다양해지고 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좋아서 만들었을 것이고, 편리하다고 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하지 않으면 물건이 팔리지 않고 퇴보하고 몰락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이 문명의 진화라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

생각해보자. 이제 디지털과 AI 등의 문명은 주류문화가 되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이를 트랜드라고 하며 거스릴 수 없는 대세라고 말한다. 충분히 그럴 것이다. 작정하고 문명의 이기를 청산하고 혼자 숨어살지 않고서는 이런 흐름에 따라야 한다. 간혹 보자니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들도 개인전화는 거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또 생각해보자. 첨단문명의 도구가 헤아리고 예측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자칫 ‘갈림길’에서 ‘양’을 찾지 못하는 형국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 ‘양’은 우리 시대에 무엇인가? 마음의 여유와 평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간, 일도 빛나고 삶도 빛나는 일상, 어느 존재도 소외와 배제가 없이 더불어 숲을 이루고 사는 삶,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할 ‘양’이 아닌가? 그러기에 답은 분명할 것이다. 늘 해답은 단순명료하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공존의 사회이고 문화일 것이다.

가상공간의 시대가 오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일상의 문화가 될 것이다. 이럴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무수한 갈림길은 미로가 되고 길에서 길을 잃는다.

이런 말이 있다. 마술사가 술법으로 호랑이를 만들었는데, 그 호랑이에게 마술사가 잡혀먹는다는 얘기이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테크놀로지라는 술법이 눈부시게 탄생한다. 그 술법에 우리의 삶이 속박당하지 않을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도는 없고 술만 기세를 부리는 시대를 경계해야하는 오늘이다. 도가 빛나고 술도 빛나는 길! 그 길은 도를 잃지 않는 일에서 시작한다. 도를 빛나게 하기 위해 술이 있다. 명심하고 명심하자.

글 법인스님/실상사 한주&실상사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전 조계종 교육부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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