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정말 저희 '탈북 멧돼지' 탓인가요?

박수혁 2022. 1.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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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파주서 첫 열병 발생 뒤
연천·김포·인천 등 들불처럼 번져
국립환경과학원 역학조사 중간 결과
'북한 멧돼지가 원인' 가능성도 언급
집돼지→멧돼지 역감염도 배제 못해
멧돼지 열병 발생 전보다 40% 줄어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발병 이후 사살되거나 폐사체로 발견된 멧돼지 모습. 강원도 제공
2020년 1월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5000명 이상이 숨졌다. ‘사람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다 보니, ‘돼지 전염병’은 사람들 관심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하지만 2019년 9월 국내에서 첫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이후 바이러스를 옮길 것을 우려해 살처분(집돼지) 당하거나 총기·포획(멧돼지)으로 죽임을 당한 집·멧돼지만 23만마리가 넘는다. 아직도 이 땅에는 1000만마리 이상의 집·멧돼지가 살아 있다. 정부는 울타리를 치고 멧돼지를 소탕하지만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 <한겨레>는 이 방법이 정말 유효한지, 혹시 말 못 하는 동물에게 누명을 씌운 것은 아닌지 멧돼지의 입을 빌려 묻는다.

저는 몸통 길이가 1.1~1.5m 정도 됩니다. 주로 12~1월에 짝짓기하고, 5월에 새끼 7~13마리를 낳습니다. 활엽수가 우거진 전국 대부분 산지에 살고 있으며, 바람이 없고 햇볕 잘 드는 따뜻한 남향을 좋아합니다. 아직 눈치채지 못한 분들을 위해 좀 더 도움말을 드리면, 저는 긴 원통형의 주둥이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잡식성 포유류’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멧돼지’입니다. 적갈색 털에 검은 무늬가 세로로 나 있는 어린 멧돼지에게는 더러 호감을 갖는 분도 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제 이름만 들어도 인상부터 찡그리지요. 생긴 것도 그렇지만, 농작물 농사를 망가뜨리는 대표적인 유해조수이기도 하거든요. 이 탓에 해마다 수만마리가 ‘유해조수 구제’라는 명목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도심까지 출현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각종 질병의 매개체로도 미운털이 박혔습니다. 발굽이 두 쪽인 우제류인 탓에 구제역이 창궐할 때마다 눈총을 받았고,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의 주요 매개체이자 일명 ‘살인진드기’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불리는 작은소피참진드기까지 저희를 통해 전파된다고 알려지면서 더욱 기피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다 공교롭게도 ‘황금돼지해’인 2019년 들어 사달이 났습니다. 그해 9월16일 경기도 파주의 한 농장에서 국내 첫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겁니다. 파주에서 시작한 열병은 연천, 김포, 인천 강화 등 4개 시·군 14개 농장으로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다행히 23일 만인 2019년 10월9일을 끝으로 농장에서는 발생하지 않다가 1년 만인 2020년 10월8~9일 이번에는 직선거리로 50㎞ 가까이 떨어진 강원도 화천의 2개 농장으로 불똥이 튀었습니다. 2021년 들어서도 5월 영월, 8월 고성·인제·홍천, 10월 인제 등 강원도내 농장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12월 말 현재 9개 시·군 21개 농장에서 열병이 확인돼 집돼지 3만6993마리가 살처분됐습니다.

모든 원망이 저희에게 쏠렸고, 정부는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수렵인뿐만 아니라 군부대 저격수까지 동원했으며, 주요 길목 곳곳에 포획 도구를 배치해 사살 작전을 펼쳤습니다. 열화상 카메라와 야간투시경 등 첨단장비도 투입됐습니다. 마리당 4만원이던 포획보상금도 37만원으로 9배 넘게 올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이후 사살되거나 폐사체로 발견된 친구들만 19만5453마리(2021년 10월 말 현재)에 이릅니다.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현황도면. 2019년 접경지역 일부에 한정됐던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2020년과 2021년을 거치면서 점차 남하해 경북과 충북을 위협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원흉?

그런데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이 정말 저희 탓인가요? 궁금해서 국립환경과학원이 2020년 5월 내놓은 ‘아프리카돼지열병 역학조사 중간결과’를 찾아봤습니다. 국내 유입 경로에 대해 “러시아·중국에서 유행 중인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비무장지대 인근 접경지역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생지점 등 최초 유입·확산 양상을 분석해보면 철원과 연천, 파주는 모두 남방한계선 1㎞ 안에서 발생이 시작됐다. 또 비무장지대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국내 유입 경로는 하천·매개동물·사람·차량 등의 가능성이 있으나 정확한 규명을 위해선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만 언급돼 있습니다.

발생 원인이 궁금해서 찾아본 것인데, 더 헷갈려 직접 물어봤습니다. 당시 국립환경과학원의 정원화 생물안전연구팀장(현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질병대응팀장)은 “북한은 2019년 5월 압록강 인근 농장에서 열병이 발생했다고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보고했지만 이후에는 없어 얼마나 퍼졌는지 공식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비공식 경로를 통해 상당히 확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국내 발병 초기에 바이러스가 확인된 곳들도 비무장지대 인근이다. (이에 근거해) 북한을 통해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리적인 추정을 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설명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고, 북한과의 민감한 관계 등을 고려해 보고서에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비무장지대 인근 북한 멧돼지까지 퍼진 바이러스가 접경지역 하천·매개동물·사람·차량 등을 통해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판단한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철책이 설치돼 있고, 수문 등에도 철조망이 촘촘하게 설치돼 있어 ‘탈북 멧돼지’는 있을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식량난 탓에 북한의 멧돼지 밀도가 매우 낮고, 땅을 파헤치는 멧돼지의 습성상 지뢰가 많은 비무장지대 안에는 제대로 서식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동물행동생태학 박사)은 “북한 멧돼지의 남하를 원인으로 돌리는 것은 과거 선거 때나 등장하던 ‘정치적 북풍의 생태적 오용’이다. 한 종을 아예 없애겠다는 정책이 비판과 반성도 없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설령 ‘북한 멧돼지 유입설’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농장 집돼지에서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때는 2019년 9월17일, 멧돼지에서 처음 바이러스가 확인된 때는 보름 뒤인 10월2일입니다. 당시 역학조사를 담당했던 정원화 팀장도 ‘반대로 농가에서 국내 멧돼지로 바이러스가 퍼졌을 가능성은 없나?’라는 질문에 “북한에서 감염된 멧돼지 폐사체 등 오염원의 일부 조각이 태풍 등의 영향으로 하천 등을 통해 국내에 유입됐고 이와 접촉한 사람에 의해 농가에 먼저 퍼졌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후 감염된 집돼지의 분변이나 쓰레기 등을 함부로 버렸다면 멧돼지가 접촉해 역감염될 수도 있다. 집돼지와 멧돼지의 감염이 확인된 시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먼저라고 단언해서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추정일 뿐이란 얘기입니다.

오히려 국립환경과학원 역학조사 중간결과에서는 “기존 발생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7~33㎞)에서 새로 발생한 화천·연천·양구 등 일부 사례는 수렵활동이나 사람·차량 이동 등 인위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힙니다. 인간에 의한 감염 확산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죠.

해외에서도 멧돼지가 집돼지를 감염시킨 것으로 확인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축산물 이동이나 잔반, 오염된 사료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헝가리에서도 2017년 이후 멧돼지에서 5천건 이상 바이러스가 확인됐지만 농가에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저희가 집돼지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고 해도 그게 저희 잘못인가요? 저희는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한 채 이 땅에서만 살아왔습니다. 코로나19 탓에 고통받는 국민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 생겨난 외래 질병에 고통받는 피해자일 뿐입니다. 사람은 코로나19를 옮긴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이유로 인간 눈에 발견되면 무조건 사살됩니다.

포획틀에 잡힌 멧돼지. 환경부 제공

 멧돼지 다 죽이면 걱정 끝?

지난 11월부터 경기·강원에 이어 충북 단양과 제천에 사는 친구들한테도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연도별로는 2019년 3개 시·군→2020년 11개 시·군→2021년 21개 시·군으로 발생지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접경지역 멧돼지 전면 제거’라는 초강수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는 점차 남하하고 있습니다. 환경부가 무려 819억원을 들여 경기도 파주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1418.3㎞에 걸쳐 촘촘하게 광역울타리를 설치했다는데, 별 소용이 없는 모양입니다.

총기 포획이 확산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희 가족도 총을 이용한 무차별 사냥에 놀라 멀리 달아나면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대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치사율이 높아 멧돼지를 통한 확산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추가 유입이 없으면 해당 지역에서 자연 소멸할 가능성이 크다. 무차별 사냥은 오히려 멧돼지가 멀리 이동하도록 압박해 감염을 확산시키는 등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경고합니다.

지난 11월에는 강원도 태백에서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이 야생 멧돼지를 포획한 뒤 사체를 처리하기 위해 이송하는 과정에서 쓸개를 적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적출한 쓸개의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이전에는 한방 등에서 약재로 사용돼 은밀하게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방지를 위해 시료채취 목적 외에는 사체를 훼손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저희를 막으려고 설치한 광역울타리 탓에 산양과 노루 등 애먼 야생동물 친구들이 생존 위협에 내몰렸다는 겁니다. 물과 먹이를 찾아 숲속을 이동하는 길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양구에 있는 산양증식복원센터에 문의해보니, 울타리 근처에서 폐사한 산양이 2020년 16마리, 2021년 3마리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센터 안재용 사무국장은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대부분 울타리에 길이 막혀 굶거나 탈진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5월에는 숲속에서 포획용 발목덫에 걸린 산양까지 발견됐다”고 말했습니다. 폭설이 내리면 먹이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을 텐데 이 땅의 야생동물은 어떻게 고난의 시간을 버텨낼지 걱정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물론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밀집된 공간에서 가축을 대량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을 개선하고 과도한 육식주의를 조장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돼지를 집단 사육, 도살하는 현대 축산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상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 발병 사태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무분별한 살처분의 악순환도 계속된다. 모든 것을 멧돼지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농가 방역에 집중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2월 발간한 ‘2020년 야생동물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전국적으로 5만8968마리(최대 12만9140마리)의 멧돼지가 남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전인 2018년 9만9420마리(최대 17만7451마리)에 견줘 40%가량 개체수가 줄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이 해마다 실태조사를 하는데 해당 연도에 조사한 보고서는 다음해 2~3월 발간돼 2020년 보고서가 가장 최근 자료라고 합니다.)

그리고 국립생물자원관의 ‘자생 멧돼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연구(2019)’ 자료를 보면, “이전 제주도의 멧돼지 절멸과 같이 고립된 지역에서의 과도한 포획은 지역적 절멸을 이끌 수도 있다. 최소생존 개체군을 목표로 설정해 현실적인 포획 목표를 달성하고 지역 절멸을 피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멧돼지 포획을 주도하는 환경부 안에서도 ‘멧돼지 절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1978년 10월15일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는 세계동물권선언 제1조가 선포됐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를 반영한 내용으로, 인간은 동물의 한 종으로 다른 동물을 멸종시키거나 비윤리적으로 착취하는 등 다른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일제강점기 호랑이와 표범 같은 대형 포식동물을 모조리 잡아 죽인 탓에 천적이 없는 저희는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 유해동물로까지 지정됐습니다. 저희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또 어떤 동물이 유해동물이 될까요? 다 죽어도 인간만 생존하면 되나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어둠 속에서 끝 모를 살육전이 벌어질 때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제발 그만해. 나 무서워. 이러다 다 죽어.” 깐부 할아버지 오일남씨의 말입니다. 정녕 이 땅에서 저희를 다 죽여야 ‘살육의 축제’를 끝낼 건가요? 잡으러 와 보십시오. 저는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있는 힘껏 도망쳐 보겠습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출혈성 돼지전염병으로 이병률(병에 걸리는 비율)이 높고 급성 감염되면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른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고, 냉동육에선 바이러스가 1000일 이상 생존할 정도로 저항성이 강해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선 예방적 살처분이 유일한 해법으로 알려져 있다. 양돈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만큼 가축전염병예방법의 제1종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아프리카에서 1920년대부터 발생해왔으며, 2007년 조지아공화국을 통해 유럽으로 흘러들어가 널리 전파됐다. 현재 동유럽 국가들과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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