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원도 실패 경험하고도..정책 수정 없이는 전국 확산 뻔해"

박수혁 2022. 1.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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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전문가 조영석 대구대 교수
강원도, 광역수렵장 이후 감염 확산
차량·수렵견 등서도 바이러스 확인
포획틀에 잡힌 멧돼지. 환경부 제공
조영석 대구대 교수

“정부가 강원도의 실패를 경험하고도 잘못된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리는 ‘끓는 기름에 불이 붙었는데 물을 끼얹어 끄겠다’는 것과 같다. 이대로 가면 전국 확대도 불 보듯 뻔하다.”

2007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야생동물 실태조사와 멧돼지·고라니 등 유해조수 관리 등을 담당해온 조영석(46·사진) 대구대 생물교육과 교수의 말이다. 2019년 9월 경기도 파주 한 농가에서 처음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2년 만에 강원도를 휘젓고 충북지역으로까지 남하한 배경에는 광역울타리 설치에 이은 무차별 포획이라는 정부의 잘못된 방역조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야생동물 전문가인 조 교수는 “멧돼지는 많이 잡히면 그만큼 새끼를 더 많이 낳는다. 보통 1년에 한번 번식하지만 밀도가 낮아지면 두번 한다. 섬처럼 막힌 지역에서는 전멸시키는 게 가능하지만, (내륙에서는) 일시적으로 밀도를 감소시켜도 번식기만 지나면 금방 숫자를 회복한다”며 “총기 포획을 통한 밀도 조절은 멧돼지에게 큰 교란이 된다. 그래도 잡아야 한다면 교란 없는 포획틀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염된 멧돼지가 총에 맞아 피를 흩뿌리고 산을 돌아다닌다면 산 전체가 오염되기 때문이다. 냉동 상태에선 1000일까지도 바이러스가 살아 있는 만큼 총기 포획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강원도에서 급격히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진 배경에는 ‘2020년 겨울 광역수렵장 운영이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조 교수는 “광역수렵장 이후 영월과 동해안으로 감염이 확산했다. 전염병 확산은 휴지에 물이 번지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번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강원도에선 수십㎞를 점프하면서 확산했다. 철원에서 화천으로, 고성, 영월, 양양을 넘어 최근 충북으로 퍼진 것은 인위적인 확산의 예다. 오염지역을 출입한 사람이나 차량 등이 얼마든지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차량과 수렵견 등에서도 바이러스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정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정책의 또 다른 핵심인 광역울타리 정책과 관련해서도 “전세계 어디에도 우리나라와 같이 길게 늘어진 울타리를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이동을 막은 사례는 없다. 독일도 폴란드와 국경에 우리처럼 울타리를 설치했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이를 넘어 유입됐고, 우리도 막대한 비용을 들였지만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울타리를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사례로는 체코가 제시됐다. 체코는 우리나라처럼 철로 만든 울타리가 아니라 단순히 띠를 두르고 자주 출몰하는 일부 구간에만 전기 철책을 설치하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멧돼지 이동을 막는 울타리가 아니라 오염지역과 비오염지역을 나누는 목적에서다. 체코 정부는 오염지역에 일부러 농작물을 남겨둬 멧돼지가 먹이가 없어 그 지역을 떠나는 것을 막았고, 치사율 100%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가 일주일 안에 대부분 죽는 점을 이용해 일단 기다린 뒤 살아남은 멧돼지는 포획틀 등을 이용하거나 경찰 저격수가 조용하게 제거하도록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울타리가 완성된 뒤 멧돼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며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집중수색에 나서 제거를 시도했고, 결국 감염 지역 멧돼지가 외부로 퍼져나가는 원인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 교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밀도 감소와 울타리를 이용한 바이러스 격리, 빠른 사체 제거가 중요한데, 정부도 이 세가지 전략을 다 사용하고 있지만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텍사스공과대학교(Texas Tech University)에서 야생동물관리학을 전공한 조 교수는 환경부의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 매뉴얼 작성에도 참여하는 등 2018년부터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정책·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2019년 국내 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했을 때도 현장대응반으로 발생 현장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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