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시간과의 대화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 2022. 1. 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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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얼마 전 믹서를 씻다가 뚜껑 안쪽에 희뿌연 때가 잔뜩 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최근 눈이 더 침침해진 탓이다. 순간 아버지 집에 갈 때마다 그릇 좀 깨끗하게 닦으시라고 잔소리했던 게 떠올라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니 팔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 눈에는 그 찌꺼기들이 잘 안 보인 거였다. 울컥했다. 백세시대라지만 노안, 난청, 흰머리 등 노화 증상까지 늦춰진 건 아니다. 어찌 보면 노화된 몸으로 길게 살아야 하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

인구 변화를 예측할 때, 203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65세 이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늙는다는 것, ‘노화(Aging)’라는 말은 왠지 노인 문제, 고령화 문제와 동격으로 인식되고, 무언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만 여겨진다. ‘노화’의 부정적 느낌과 왜곡된 이미지에 대한 편견을 거부하고,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있다. 독일 안드레아스 하이네케의 전시 ‘시간과의 대화(Dialogue with time)’가 바로 그것이다.

안드레아스 하이네케는 시각장애 전시 ‘어둠 속의 대화’로 국내외의 많은 호응을 얻었고, 이후 청각장애 전시 ‘침묵 속의 대화’, 나이듦 체험 전시 ‘시간과의 대화’까지 내용을 확장했다. 총 6개의 방으로 구성된 ‘시간과의 대화’는 노화로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변화의 과정을 입체적인 체험과 영상, 퀴즈, 워크숍 방식으로 구성,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관점 전환을 제공했다. 또 단순 노화 체험을 넘어 세대 간 이해하기, 노인 일자리 창출의 효과를 낳았다.

‘노화’란 주제가 젊은 세대와 무슨 상관성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김영옥(옥희살롱) 대표는 “왜 노년이라고 하는 것을 특정 연령이 시작돼야 상상하게 되는가. 늙어감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는 거다. 오히려 30대부터 노년에 대해 생각하면 생의 유한성을 깨닫게 돼 삶이 달라지고, 주변의 노인들도 다시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또 <나이듦에 관하여> 작가 루이즈 에런슨은 노년들이 일상에서 보이는 ‘무능’은 단순히 생물학적 이유만은 아니며, 세상이 청년기와 중년기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사회 다양성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위해 임산부, 장애, 나이듦과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비록 일회성, 전시성 체험일지라도 안 해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리고 고령친화도시, 노인복지 정책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에이징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당장 젊은 몸, 정상 몸에 맞춰 설계된 생활 곳곳의 시설, 공간, 물건 등을 찾아내어 하나씩 개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 신호등 시간은 조금 더 길게, 거리 곳곳 벤치는 조금 더 많이, 무거운 철문은 조금 더 부드럽게, 높은 선반은 조금 아래로, 병뚜껑은 조금 더 손쉽게 열 수 있게 바꾸는 것 등이다.

삶은 유한하지만 시간은 연속적이다.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늙어간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는 유행가 가사의 엔딩처럼 새로운 출발을 위해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오늘, 내일을 상상하는 오늘의 시간을 더욱 충만하게 채우길 바란다.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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