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겨울 흙의 아름다움

이보현 '귀촌하는 법' 저자 2022. 1.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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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웠지만 산책을 다녀왔다. 강을 따라 걷는 길은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다. 빨간 꽃이 피어 있는 계절, 황토색 갈대가 춤추는 계절, 흰 눈이 쌓인 계절, 모든 계절에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과 그 둘레 풍경을 보며 벅찬 마음으로 한참을 걷는다.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색과 빛이 덜 화려하고 흐릿하지만 쓸쓸한 풍경은 나름의 감탄을 자아냈다. 계절에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이 많은 도시와 비교하면 시골의 겨울은 한산하다. 푸르고 노랗던 들판이 얼어붙은 검은 흙으로만 가득 찬 모습은 낯설었지만 그게 다가 아닌 걸 알기에 초라해 보이진 않았다. 지난 계절에 보았던 강렬함을 그 땅속에 품고 있다고 생각하면 흙이 좀 다르게 보였다.

도시에서도 가로수나 공원의 나무들이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줬을 텐데 거리엔 그들 말고도 사람, 건물,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한눈에 알아채지 못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장 큰 변화처럼 느껴졌다. 완주로 오자마자 두 해를 살았던 집은 앞뒤로 논밭이 가득한 아파트의 8층이었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그 아파트 몇 동만 있었다. 그저 눈을 창 밖으로 돌리면 매일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풍경은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다른 빛을 띠고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검고 마른 땅에 물이 찼다 빠지고, 푸른 잎이 조금씩 차올라 전체가 완전히 선명한 녹색이 되었다가 노랗게 물들었다. 추수가 시작되면 듬성듬성 무늬가 생기고 다시 천천히 검은 땅으로 돌아갔다. 매 순간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모든 계절의 색을 풍부하게 경험하지 못했을 때는 녹음이 짙거나 단풍이 들어 화려한 색이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봄의 연두나 겨울 메마른 가지의 갈색도 매력적이지만 절정을 향해가는 과정의 일부로만 여겼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생활의 일부로 관찰한 자연은 모든 계절이 고르게 귀했다. 겨울 흙 밭도 다시 보였다. 몰랐던 아름다움을 찾아내니 조금 더 행복해졌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아름다움이 많이 남아있을 테니 여전히 설레고 든든하다.

귀촌 7년 차 이보현씨. '귀촌하는 법' 저자/이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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