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경수]통신비밀보호법 상식과 인권에 맞게 개정돼야

김경수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입력 2022. 1.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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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 한 해 500만 건 개인정보 수집
국민 상식 반하는 과도하고 부당한 수사
법 개정 통해 통신자료 엄격히 관리돼야
김경수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헌법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통신의 비밀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이자, 개인 간의 소통을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 누군가 사생활을 엿보고, 사적 대화나 통신을 엿듣는다고 생각해 보자. 행복의 최소 요건인 개인의 사적 영역은 파괴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개인 간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어려워지면 자유민주주의에 불가결한 올바른 공론 형성도 불가능할 것이다. 사생활을 엿보고, 통신을 엿듣는 주체가 수사기관이라면 해악은 더 커진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러더’가 그 예이다.

하지만 통신 비밀은 상대적 기본권으로 법률에 의한 제한이 가능하다.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되, 범죄 수사나 국가 안보를 위해 이를 제한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와 절차를 규정한 것이 통신비밀보호법이다. 1993년 제정된 이 법은 통신의 비밀에 큰 획을 그었다. 당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도청의 공포를 상당 부분 불식시켰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통신의 비밀은 헌법상 권리로 선언됐을 뿐, 위반자를 처벌하는 실효적인 강제 수단을 갖지 못했다. 당시 유선전화 감청이 가능한 ‘전화국 실험실’은 국가안전기획부가 장악했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국민은 알 수 없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3가지 방식으로 통신 비밀에 대한 예외, 즉 수사기관에 의한 비밀 침해를 허용하고 있다. 첫째, ‘통신제한조치’로 대화 및 통신을 감청하는 것이다. 대화 내용을 듣는 것으로 가장 강도 높은 침해다. 처음부터 법원 허가사항이었다. 둘째, ‘통신사실 확인자료’로 수사 대상자의 전화번호를 기준으로 대상자와 통화한 수발신 번호, 통화 시간 및 장소 등이 나타난다. 통화내역을 분석하면 대상자의 동선과 친소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2005년 법 개정 때 법원 허가사항이 됐고, 전에는 수사기관 공문으로 자료 수집이 가능했다. 셋째, ‘통신자료’로 실무상 ‘가입자 조회’라고 부른다. 어떤 전화번호를 알게 됐을 때 그 번호의 가입자가 누군지를 조회하는 것이다. 가입자의 성명, 주소,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가 수집된다. 법원 허가는 필요 없고, 전기통신사업법에 근거해 수사기관이 공문으로 통신사업자에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수사 실무에서 첫 번째 ‘통신제한조치(감청)’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용된다. 두 번째 ‘통신사실 확인자료(통화내역)’는 수사 대상자의 활동 반경을 들여다볼 수 있고, 범인 검거나 증거 수집에 유용하여 활용이 선호된다. 다만, 법원 허가(영장)를 받아야 하므로 실제 이용은 제한적이다. 세 번째 ‘통신자료(가입자 조회)’는 수사 대상자의 통화내역이 나오면 상대 전화번호 가입자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거의 기계적으로 조회를 의뢰한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숨겨진 단서를 찾아야 하므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한 번호당 한 건 조회로 계산돼 조회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게 된다.

해가 바뀌어도 ‘통신사찰’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발단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 야당 정치인, 교수, 법조인 등 수백 명에 대해 무차별 통신조회를 했다는 것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닌 기자들에 대해 통신영장을 청구한 위법수사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시장, 외신기자, 가정주부, 공수처 관계자까지 대상과 수가 늘어났고, 검경의 조회 사실도 알려지면서 ‘통신사찰’은 수사기관 전체의 문제로 확대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수집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인권위가 밝힌 통신자료 수집 건수는 2020년 548만 건, 2021년 상반기 256만 건이다.

국민의 높은 인권 의식과 개인정보의 민감성, 수사의 적법성을 고려할 때 ‘통신사찰’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수사기밀을 핑계로 어물쩍 넘길 수 없다. 사찰 여부를 떠나 한 해 500만 건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넘겨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통신조회로 수집된 개인정보의 대부분은 범죄 관련성이 없는 것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미숙하고 세련되지 못한 공수처 수사가 변화의 좋은 계기를 만들었다. 이 기회에 통신비밀보호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은 국민의 상식과 인권 의식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 문제는 통신 비밀과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되 수사 기능을 위축시키지 않는 맞춤형 개정의 지혜이다. 범죄를 진압해 선량한 다수의 국민을 보호하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김경수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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