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긴축 태풍’ 닥치는데 돈 푸나

손진석 경제부 차장 2022. 1.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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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미 의회 청문회에 나온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AFP 연합뉴스

전직 고위 경제 관료를 만났더니 “요즘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그리스신화의 다이달로스 같다”고 했다. 다이달로스는 자신이 만든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해 갇힌 인물이다. 코로나 사태라는 미증유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막대한 돈을 풀어젖힌 중앙은행들이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필두로 중앙은행들은 막대한 돈을 뿌렸다. 연준이 2020년 3월부터 작년 연말까지 퍼부은 달러는 줄잡아 3000조원에 이른다. 흘러넘치는 유동자금이 글로벌 공급망 병목 위기와 만나 30~40년에 한 번 찾아올 만한 초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가파른 물가 상승은 곧 집권 세력의 위기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준은 ‘독한 인플레 파이터’가 되겠다고 벼르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너무 급하게 가속페달을 밟았으니 브레이크도 그만큼 깊게 밟아야 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이겨내려 연준이 양적 완화(유동자금을 푸는 정책)에 돌입한 이후 금리를 올리기까지 7년이 소요됐다. 양적 긴축(유동자금을 흡수하는 정책)까지 가는 건 추가로 2년이 더 걸렸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는 양적 완화에서 금리 인상까지 불과 2년만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3월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70% 이상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 추가로 양적 긴축이 올해 안에 시작될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돈의 밀물과 썰물이 한 바퀴 도는 흐름이 글로벌 금융 위기로 9년이 걸렸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T(긴축)의 공포’가 3배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이미 새해 벽두부터 환율이 급등해 원화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주식시장도 휘청거리고 있다. 대출 금리가 무섭게 올라 밤잠 설치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발작 증세는 서막에 불과하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강(强)달러발’ 태풍이 본격적으로 우리 삶을 강타하게 된다. 미국은 강달러 펀치에 다른 나라들이 쓰러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계 주요국이 유동성 잔치에서 철수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 땅에서는 반대로 돈을 더 쥐여주겠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태평성대인 양 표 몰이용 돈 풀기 약속에 바쁘다. 정부도 대선을 앞두고 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돈을 뿌리려 국채를 더 찍으면 국채 값 하락(금리 상승), 환율 상승(원화 값 하락), 물가 상승, 경기 후퇴가 도미노처럼 벌어져 다중 위기가 급습할 개연성이 커진다.

그러나 대선 주자들 중에는 위기의식을 가진 이가 없다. 국제경제의 흐름을 이해하는 이도 없어 보인다. 외풍을 차단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선거용 사탕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급조한 사탕을 덥석 물었다가 치르게 될 고통은 국민들이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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